강자를 만났다. 그래서 아줌마들은 더 오기가 솟는다. 그칠 줄 모르는 강추위 속에서도 천막농성과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울산 제일고 급식아줌마들의 이야기다.
설립자의 조카에게 위탁급식을 준다는 이유로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두고 해고된 지 1년이 다되어 가는 울산 제일고 급식아줌마들. 유난히 추운 이 겨울, 여전히 투쟁 중이다. 그들은 대입을 앞둔 자녀의 어머니이자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혹은 어려운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취업일선에 나선 평범한 주부였다.
설립자 조카에 위탁급식, 급식종사자 해고
제일고 급식아줌마들에게 고난의 시작은 올해 초 찾아왔다. 지난 수년간 이 학교에서 급식일을 하던 아줌마들은 당시 비정규직법에 따라 곧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측은 느닺없이 이들 급식아줌마를 포함한 급식 종사자 전원을 해고했다. 이유는 직영급식을 위탁으로 전환하기 위한 것.
이후 울산교육위원회 의장을 지낸 지역교육계의 실력자인 제일고 설립자의 조카에게 위탁급식을 맡겼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지역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비난이 거세졌다. 지역 구성원들이 아줌마들에게 힘을 보탰다. 하지만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와 같았다. 학교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줌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급식아줌마들은 최근 농성장을 방문한 고등학생들에게 "처음에는 복직을 위해 나섰지만 이제는 싸워서 사회를 변화 시켜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학생들은 아줌마들을 만나고 난 뒤 작성한 르포 기사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복직만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실상과 문제점을 세상에 알려주는 것"이라고 적었다.
아줌마들은 현재 자신들이 일하던 제일고 앞에서 천막 농성을 진행중이다. 매주 화요일에는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등 지지자들과 학교설립자의 집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하지만 제일고 설립자는 꿈쩍도 않고 있다. 되레 아줌마들에게는 업무방해 등으로 경찰 조사를 수차례 받는 등 고초가 더해졌을 뿐이다. 제일고 설립자는 울산지역에서 가장 힘이 센 인사 중 한 명으로 통한다. 여차하면 모두가 두려워하는 <조선일보>까지 고소고발하기도 한다.
지난 2004년, 울산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울산교육연구단지 건립부지 선정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됐을 때의 일이다.
<조선일보> 울산주재 김학찬 기자는 당시 "연구단지에 김장배 울산시교육위원회 의장 본인과 장남 등 특수관계인 소유 토지가 40% 가까이 포함됐고, 관련예산 통과 표결에서 울산교육위원 7명 중 3대3으로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 그가 찬성표를 던져 부지 매입을 확정짓도록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는 등의 기사를 작성했다.
수차례의 보도가 나가자 설립자는 <조선일보>와 김학찬 기자를 상대로 각각 1억 원씩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소송을 기각하면서 오히려 원고측을 나무라는 판결을 내렸다. 2006년 7월 13일 울산지법 민사1단독 백승엽 판사는 "<조선일보>가 사실관계를 부풀린 악의적인 허위보도를 해 명예가 훼손됐다는 원고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보도내용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작성됐으며, 이를 근거로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의 정당한 취재보도 활동"이라고 판시한 것.
판사는 그러면서 "울산시교육위원회 의장은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공적인 자리로서, 본인 소유 토지 등이 포함된 부지 선정과 보상가격 책정 등에서 상식을 넘는 수준의 특혜의혹이 제기됐다면 언론 등을 통해 객관적인 검증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또한 "언론이 이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마땅한 언론의 책무"라며 "그럼에도 원고가 각종 특혜의혹에 대한 자기성찰은 도외시한 채 이를 보도한 언론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행위는 언론의 공적인 취재보도와 비판기능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었다.
설립자가 강자였다는 것은 기자의 소송 후담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에게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지만 어느 언론도 나를 도와주거나 후속보도를 하지 않더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제일고 급식아줌마들은 이런 강자에게도 전혀 꺼리낌없이 정당한 권리를 주창하고 있다. 이 싸움은 이 때문에 다위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회자된다.
아줌마들은 청소년인문학교 다다 프로젝트 글쓰기반 학생들에게 "처음 우리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 농성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비정규직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며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수많은 다른 비정규직 분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에 굳건히 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면담 후 "급식아줌마들의 눈빛에는 진심이 묻어나왔다"며 "우리 사회는 권력자의 욕심 때문에 수많은 약한 사람들이 소리 없이 희생 당하는 일이 허다하지만 그분들의 노력은 오래되고 고착돼버린 잘못된 부분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는 데 일조하는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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