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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느림보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집집마다 소, 돼지가 있었지. 솥 한가득 여물을 끓이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저녁이면, 언덕에서 내려다 본 동네가 평화롭고 아늑한 풍경이라는 것을 그땐 몰랐단다.

 

동네 한복판으로 송아지가 뛰어다녀도, 주인은 애써 잡으려고 하지 않았어. 소 팔러 가는 날이면 이미 술에 취한 주인은 동네에서 우시장까지 소와 함께 걷기도 했단다. 흥정 끝에 소를 팔아도 쉽게 주인의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었지.

 

그땐 소마다 이름이 있어서 어린 자식들이 울고불고 못가게 막았다는 얘기도 있었지. 소 팔아 자식 가르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변했네. 

 

초가지붕도 없고 집집마다 있던 두엄자리도 없어져 깨끗해졌다고 하지만, '그땐 그래도 정답고 살 만했다'고 말하는 노인은 자식들을 모두들 서울로 보냈단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가치가 돈으로 통하고 생산성을 따지는 까닭에 소 한 마리 달랑 키우는 집은 이제 없어. 아주 깊은 산골이면 모를까.

 

집집마다 '가축방역상 출입금지'... 감옥이 따로 없다

 

이제는 소를 키웠다 하면 수십 마리, 수백 마리는 기본이야. 소 키우는 집도 옛날처럼 많지 않아. 나도 13년 전에 암송아지 10마리와 숫송아지 15마리를 사다가 소 키우는 일을 시작했어. 그땐 힘들어도 고생인 줄 몰랐단다. 커가는 소들을 보면 보람찬 하루가 됐으니까.

 

추운 겨울, 키우던 소가 첫 번째 송아지를 낳던 날 밤을 하얗게 지새웠지만, 너무 기뻐 피곤한 줄도 몰랐어. 그렇게 소를 키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니 남부러울 것이 없었어.

 

하지만, 지금 농촌의 모습은 참혹하기까지 하다. 동네마다 소와 돼지, 닭과 오리들을 구덩이에 묻고 있기 때문이지. 농촌은 가축들의 공동묘지가 돼 버렸단다. 구제역이 얼마나 무서운지 축산농가에는 집집마다 '가축방역상 출입금지'란 푯말이 걸려 있어. 감옥이 따로 없는 상황이지.

 

몇 년 전 영화 <워낭소리>를 봤어. 40년간 함께한 늙은 소를 파묻은 노인은 새끼를 낳은 암소 한 마리를 보며 그 소를 추억하지. 아마 영화 속 노인은 소가 울리던 워낭소리가 꿈에도 들리지 않았을까. 그렇게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소 한 마리 잊지 못하고 죽어가는 게 아닐까 한다. 모든 인간은 외로우니까 말이다.

 

너희들을 땅속에 묻은 지 이제 보름이 넘었네. '구제역 3년간 발굴 금지'라고 적어 세워놓은 표지판이 '묘비'를 대신하는구나. 기가 막혀 잠 못 이루던 주인은 이제 너희들을 잊었는지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입금된 돈에 조금은 위안을 삼고 불안한 앞날에 애써 희망을 불어 넣는다. 그래도 빈 축사에 들어서면 울음소리가 가득한 듯해서, 마음 한구석 텅빈단다. 그곳에서 지나간 날들을 반성하면서 한바탕 눈물을 쏟고, 주먹 쥐고 가슴을 쳐보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단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니, 얼마나 두려웠니...

 

ⓒ 함양군청

그곳에도 주인이 있을까. 사람의 말이 떠돌아다닐까. 너희들의 목숨 값을 흥정하며 싸우는 장사꾼과 주인의 언어가 있을까. 욕심과 탐욕으로 일그러진 인간에 의해 떼죽음 당한 원한을 풀어주는 곳이 존재할까.

 

얼마나 고통스러웠니. 얼마나 두려웠니. 모든 울음이 멈추고 젖 빨던 송아지 콧등의 온기가 없어졌을 때 어미 소는 얼마나 가슴 아팠니. 톱밥 값을 아끼려고, 한 마리라도 더 키우려고, 볏짚 값이 아까워 듬뿍 주지도 않았던 너희들을 오로지 짐승일 뿐이라고 사육했던 이 못난 주인을 얼마나 원망했겠니.

 

자식처럼 사랑했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구나. 마지막 가는 길 지켜주지도 못했다. 배 부르면 더 고통스럽다는 어머니 말에 마지막 밥도 너희들에게 주지 못했다. 이름도 없이 번호로만 불리다 죽어간 내 소들이여! 가엾은 목숨들이여!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땐 우리 꽃이나 나비가 되어 정답게 만나자꾸나. 부디 편안히 눈감고 좋은 곳으로 가길 한때나마 주인이었던 사람이 적는다.


#구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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