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속담에 "처가 예쁘면 처가 말뚝 보고 절"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나는 결혼 36년 생활을 이어오며 두 아들 낳아 손자까지 두고 낼모레면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를 살았으면서도 솔직히 처가 예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다만, 마음 속으로 늘 아내를 믿고 신뢰한다는 신념 하나를 가지고 결혼 36년 동안 그 어느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년에(설, 여름나들이, 추석명절, 장인, 장모님 생신) 이렇게 5회는 변함없이 처가댁을 방문하여 장인 장모님 뵙고 인사드리는 것이 연례적인 행사가 되었다.
나의 장인 장모님께서는 1950년 6·25 사변으로 북에서 피난 나오신 바람에 친척들은 모두 북한에 계시고 주위에 일가친척은 안 계셔 오직 당신 두 분 슬하에 (2남 3녀)가 소중한 피붙이여서 보통 사람들과 달리 "설이나 추석명절" 때면 말은 안 하셨지만, 남달리 외로움을 타신 분들이다.
그러다 보니 당신들 슬하에 자식들만큼은 끔찍이도 애지중지 키우셨는데 어느 날 아직 시집 보낼 나이로는 어린 큰딸(23세)이 9살이나 나이가 많고 가진 것이라곤 '부랄 두 쪽'밖에 없는 짜리몽땅하고 볼품없는 녀석하고 결혼한다고 했을 때 지금 생각해보니 상당히 황당하셨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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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맞이 처가댁에서 생긴일 2011설을 맞이하여 삼 동서네 가족이 처가댁으로 장인 장모님게 세배드리러 갔다가 생긴일 이야기를 기사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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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도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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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가 결혼을 적령기에 든 두 아들을 키워 보니 '이심전심' 장인 장모님 입장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내와 결혼하여 36년 전부터 설이나 추석 때 처가댁 방문을 할 때면 장인 장모님께서 한창 젊은 50대 연세이셔 끔찍이도 사위를 잘 챙겨 주셨다.
그 바람인지 아니면 처가댁이 본가와 그리 멀지 않은 (파주시와 고양시)사이어서인지 신혼 시절에는 설 명절이나 추석 때 본가에서 차례를 지내고 나면 서둘러 아내와 함께 처가댁으로 달려가 장인 장모님께 인사드리고 하루 묵어 오는 것에 재미를 붙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둘째 동서가 생기니 마치 남자들 군대시절 바로 밑에 새로운 졸병이 들어온 것처럼 얼마나 신바람이 나던지…. 그리고 다시 셋째 동서가 생기니 언제나 설 추석이 되나 하고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만큼 동서들과 처제들과의 처가댁에서의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그런 재미도 흐르는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는지 내 나이 6학년 8반이 되다 보니 이젠 옛날처럼 설이나 추석을 맞이하여 처가댁을 방문하는 일이 흥이 나질 않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젠 "나도 늙은인데…"하는 생각이 들며 적당히 한 번 두 번 정도는 처가댁 방문을 걸러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이를 눈치챈 아내는 금세 그 옛날 우리나라 속담에 '수수팥떡 해먹다 불낸 며느리 년'처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며 '아니 두 노인네가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신다고' 그동안 잘 해오다 꾀를 부리느냐며 핀잔을 하는 일이 해를 거듭할수록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잦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결국 자의든 타의든 나의 처가댁 방문길은 36년간 한 번 거르지 않고 계속됐다.
올해만 해도 인천에서 나의 손위에 돌아가신 두 형님을 빼고 4형제 가족들이 많은 형님댁에 모여 조상님에 대한 '추도예배'를 모시고 시원하게 뻥 뚫린 자유로를 달려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마산리 선영에 있는 우리 가족 납골묘에 성묘를 드리고 모처럼 고향 친구나 만나보고 느즈막하게 처가댁에 도착하려 맘먹고 있었다.
그랬더니 오후 1시 조금 넘었는데 벌써 둘째, 막내 처제들이 형부 언제쯤 오시느냐고 확인을 하는 바람에 못 간다는 소리, 조금 늦게 간다는 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오후 7시 정도 되어 꼼짝없이 처가댁에 도착하니 두 동서도 비슷하게 시간을 맞춰 도착하였다.
다만, 강화에서 한우 농장을 하는 큰 처남 가족들이 구제역으로 옴싹달싹 못하는 바람에 두 노인네끼리 차례도 못 모시고 아들네 걱정으로 끌탕을 하고 계시다 시집간 세 딸내 가족들이 들이닥치니 그제야 사람 사는 것 같다고 하시며 화색이 돌으시는 가운데 장모님과 처제들이 차려낸 푸짐한 설 음식을 먹고 났다.
그런데 두 동서가 나더러 '형님 밖에 좀 다녀올게요'하더니 한 시간이 넘어도 '함흥차사'다 그래서 처제들이 확인하니 어럽쇼 두 동서가 오락이나 게임에 문외한인 재미없는 큰 동서만 남겨두고 둘이서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처제들 입에서 좋은 소리 나올 리 있겠는가? 당장 오라고 전화를 하고 얼마쯤 있었는데, 어랍쇼 이번엔 황급한 목소리로 막내 동서가 전화했는데 둘째 동서가 별안간 복통이 나서 고양시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에 와 있다고 한다. 그래 허겁지겁 밤 1시가 넘어 처제들과 함께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나 참 기가 막혀! 분명히 응급실에 누워 있어야 할 동서가 택시 승강장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유야 둘째치고 서둘러 동서를 차에 태우고 어찌 된 일이냐 영문을 물으니 둘째 처제 전화받고 갑자기 복통이나 화장실에 갔다 주저앉을 정도였는데, 다행히 빨리 막내 동서 도움으로 병원에 실려와 응급실 침대에 누워 의사가 여기저기 눌러 보는 사이 감쪽같이 통증이 사라져 아무렇지도 않아 그냥 접수비만 내고 나온 것이다.
팔순이 지나신 장인 장모님은 물론 잠자던 아이들까지 비상 상태가 되어 걱정하고 있는데 사위가 멀쩡하게 들어오니 이건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그 모습이 얼마나 어정쩡 하던지…. 그래서 처제들에게 동서 '생환 기념'으로 밤참 주나 한잔하자 한 것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병'이나 술병을 비웠다.
그리고 이튿날 이른 아침 그렇게 펄펄 뛰게 아파 응급실까지 갔다 왔던 동서와 처제는 집에 계신 시어머니 식사해 드린다고 일찍 달려가 1시간도 채 안 되어 벌써 안산 집에 도착했다고 전화하며 형부 엊저녁에 수선떨어 미안하다며 하하 호호한다.
그래서 처제에게 한마디 했지요. 어이 '기차 화통' 처제 그러기에 앞으로 동서 너무 기죽이지 마라. 당구장에 있던 동서가 얼마나 처제 목소리에 놀라 주눅이 들었으면 그렇게 갑자기 멀쩡하던 사람이 쓰러질 정도였느냐며 앞으론 '도자기 다루듯 동서 찬찬히 다루"라 하였더니 "형부 그럼 그 사람 기고만장 한다나" 무엇을 한다나 하면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 보니 올 2011 설 처가댁 방문길은 두 노인네(장인, 장모님)께 '긴장과 웃음' 두 가지 선물을 드린 헷갈린 세배 길이 되고 말았다. 호호호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