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 원 내고 연회원으로 가입했어요. 처음에는 조금 비싸다는 생각도 해봤는데, 자전거 잃어버릴 걱정도 없고 고장 나도 번거롭게 수리 센터에 찾아갈 필요도 없어 좋은 것 같아요. 제가 두 달 정도 타보고 괜찮은 것 같아서 아들 녀석도 회원으로 가입해 학교 갈 때 타고 가게끔 해줬어요. 집에 있는 자전거는 이제 거의 사용을 안 하죠."고양시 공공임대자전거 '피프틴'을 자주 이용한다는 정희숙(42)씨의 말이다. 정씨는 집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문화센터 노래교실에 다녀오기 위해 매일 두 차례씩 피프틴 자전거를 이용한다.
고양시에서 정씨처럼 피프틴 자전거 이용자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출근 시간 지하철역 주변에 설치된 피프틴파크(자전거 거치대)에는 직장인들이 타고 온 피프틴 자전거들이 빼곡하게 거치돼 있다. 낮 시간에는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주부와 학생이 주로 피프틴 자전거를 이용한다.
시민들 "관리비용이나 도난걱정 없어 피프틴 선호"
지난해 3월 고양시가 도입한 공공자전거서비스 '피프틴'은 서비스 시행 10개월 만에 회원 수 7700명을 돌파하는 등 고양시민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회원가입 없이 일회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도 1일 평균 1312명에 달해 이들 모두를 합친 연간 이용횟수는 84만 3799회에 이른다.
'피프틴'(FIFTEEN)이라는 명칭은 자전거의 평균 속도인 시속 15킬로미터를 의미한다. '친환경 교통수단 확대'라는 서비스 도입 취지를 담고 있다.
고양시는 시내 거주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현재 125개의 피프틴파크를 설치하고 약 3000대의 피프틴 자전거를 운영하고 있다. 시민들은 연간 6만 원(6개월 4만 원)을 연회비로 납부하고 1회 40분에 한해 무제한으로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다. 비회원의 경우 휴대폰 소액결제로 1000원을 납부하면 자전거를 40분간 이용할 수 있다.
피프틴 서비스 이용자인 김윤태씨(37)씨는 "일산지역에 학생들이 많다 보니 자전거 도난사고도 많은 편이다"며 "개인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도난당하느니 보관 걱정 없는 피프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 피프틴 자전거를 타는 지인들도 수리비용이나 도난 우려가 없는 피프틴 자전거를 선호하는 편이다"고 시민들의 서비스이용 이유를 설명했다.
고양시청 건설과 자전거도로팀 김주영씨는 "피프틴은 자전거를 레저나 운동용이 아닌 교통수단으로 활용해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며 서비스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사업 초기에 관리시스템 오류나 정비문제로 민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피프틴파크를 더 설치해 달라는 민원이 주를 이룬다"고 시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영세상인들 "통 큰 치킨이나 다를 게 뭡니까"
이용객들로 붐비는 피프틴파크의 분위기와 달리 아파트단지 상가에 입주해있는 자전거 판매점들은 한산했다. 기자가 돌아본 고양시 일산구 소재 10여 곳의 자전거 판매점에는 손님 없이 주인만 가게를 지키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가끔 찾아오는 손님도 간단한 부품 수리만 한 채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자전거판매는 계절을 상당히 잘 타는 업종입니다. 일 년에 잘 해봐야 5개월짜리 장사라는 말이에요. 작년에 비가 50일 동안이나 내렸는데 그때가 성수기였습니다. 한철 장사인데 그렇게 비가 왔으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피프틴 서비스까지 시행됐으니 우리 같은 영세 상인들은 먹고 살 방법이 없죠."일산서구 주엽동에서 17년째 자전거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최진섭(가명)씨의 말이다. 최씨는 "피프틴이 시작되고 나서 매출이 많이 떨어졌다"며 "판매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수리하러 오는 손님들도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저가치킨으로 논란이 됐던 대형마트를 언급하며 "영세상인들 굶겨 죽이는 그런 기업이나 시 당국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며 "피프틴 사업이 시행될 때 고양시에서는 영세업자들을 위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씨의 점포 인근에서 또 다른 자전거 판매점을 운영하는 김상진(40)씨도 고양시의 무책임을 지적했다. 김씨는 피프틴 서비스 시행 이후 점포매출에 타격이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타격이 아니라 다 굶어죽게 생겼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산서구 소재 중형쇼핑몰 1층 로비를 빌려 자전거를 판매하는 김씨는 2009년까지 연간 1500여 대의 자전거를 판매해왔다. 그러나 피프틴 서비스가 시행된 지난해부터 김씨 점포의 판매실적은 전년대비 50%에도 못 미치는 580여 대로 곤두박질쳤다.
이와 관련, 김씨는 "시민들이 피프틴 서비스를 선호하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공공서비스라면 시민들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영세업자들을 위한 대책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사정은 일산 호수공원 인근의 자전거 대여점도 다르지 않았다. 타지에서 찾아오는 나들이객들을 상대로 자전거 대여점을 운영하는 박희성(가명)씨는 "피프틴 서비스 시행 이후 매출이 20~30%가량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피프틴 서비스가 민간운영형태(BOT 방식)로 추진됐다는데 영세상인들의 수입이 사업에 참여한 민간업체에게 모두 돌아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사업수익구조에 의혹을 제기했다.
"운영안정성 확보가 우선, 영세상인 대책은 내부 논의 중"
고양시청 건설과 자전거도로팀 김주영씨는 "고양시 예산만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피프틴 서비스가 민간운영형태로 추진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운영 및 광고를 포함한 총 수익의 9.84%만을 민간 사업자인 '에코바이크(주)'에 보장해주고 그 초과분은 모두 시 예산으로 들어온다"고 해명했다.
현재 피프틴 서비스를 운영하는 민간사업체 '에코바이크(주)'는 한화S&C를 대표 주관사로 이노디자인·삼천리자전거·산업은행이 공동 구성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또한, 김주영씨는 호수공원 인근 자전거 대여업체에 불이익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기우"라며 "대여업체가 운영하는 자전거에 비해 극히 적은 수의 피프틴 자전거가 호수공원 인근에 배치돼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전거 판매업체의 피해에 대해서도 김씨는 "피프틴 서비스가 자전거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업초기에도 그 문제에 대한 별도의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현재 피프틴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운영안정성확보'를 꼽으며 "운영안정성이 확보되면 피프틴 서비스 운영에 지역 민간단체와 영세수리업체를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영세수리업체의 사업 참여는 당장 시행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 이라며 "여론 수렴이나 조사과정에 대한 내부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재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