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째 며느리임에도 현재 직장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시댁으로 들어가 시어른들을 모시고 사는 이윤선 씨(가명, 33세 결혼 3년차)는 자신의 고민이 '배부른 고민'처럼 보일까봐 남들에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처지다. 남편과 맞벌이를 하는데 현재 남편이 하는 일은 정기적 수입이 보장된 일이 아니다 보니, 외국계 회사에서 안정적 급여에 보너스도 두둑히 받는 윤선 씨는 쉽사리 직장을 그만두기가 어렵다. 그래서 고민 끝에 시부모님 댁으로 들어가서 살며 아이를 시어른들께 맡기고 계속 직장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다행히 시댁 어른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시라 윤선 씨는 집안일에 대해선 거의 손을 놔도 될 수준이고, 아이도 잘 봐주셔서 주위 친구들이 참 복 받았다며 부러워한다.
어머니가 사람 좋으시고 손이 크셔서 음식도 많이 하시고 여기저기 나눠주시고 해서 이래저래 생활비가 많이 나가는 것도 맞벌이 상황이라 그렇게까지 부담을 느끼고 있진 않다. 그런데 문제는 윤선 씨가 드린 생활비로 나머지 형제들 반찬까지 해서 돌리시는데 있었다. 좋은게 좋은거라 문제삼긴 그렇지만, 윤선씨네 부부 역시 집을 사느라 대출을 받아 이래저래 돈 들어갈 곳이 많다. 나름 애써 번 돈으로 생활비를 대는 건데 온 가족 반찬을 다 부양해야 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시아버님이 요양원에 들어가셔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시면서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부모님 부양과 관련해서 시댁쪽 4남매의 오래 묵은 문제가 불거져 불협화음이 시작된 것이다.
"원래 제가 시집오기 전 시댁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며 부동산에 집에 현금까지 상당히 자산이 많으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큰 형님네가 사업을 한다, 장사를 한다 하면서 그 재산들을 대부분 날리셨대요. 시어른들 보험까지 해약해서 갖다 쓰고, 시어른 명의의 카드까지 만들어 카드론을 쓰고, 빌려간 돈은 다 날리고... 그래서 시부모님들은 현재 거주하시는 집 달랑 하나 남으신거죠."
게다가 시부모님께서 거주하시는 그 달랑 남은 집 한 채의 명의도 큰 형님으로 되어 있다. 문제는 큰 형님이 시아버님 아프시면서 자신의 명의로 된 이 집까지 넘보시더라는 것. 그래서인지 윤선씨 부부가 시댁에 들어와 살게 된 일에 대해 괜시리 마뜩찮아 하면서 '시어른 모시고 산다는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시던 일이 생각난다.
"현재는 저희 식구가 들어와서 살며 시어른들을 모시기 때문에 간섭을 못하지만 집의 명의가 큰 형님으로 되어 있으셔서 그런지 아예 자신들 재산으로 알고 있습니다. 명의만 형님네고 실상은 아버님 재산인거지요. 저희는 3년 후쯤 서울에 사놓은 집으로 입주할 예정인데요. 저희가 떠나게 되면 이 집을 팔든 담보로 대출을 받든 해서 아마 다 탕진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착하디 착하신 시어머님은 큰아들 말이라면 이래저래 말도 못하시고... 둘째 형님네는 아예 나몰라라 포기하셨습니다. 그 동안 계속 큰 형님네서 돈 갖다 쓰는 일도 관심 끄기로 하셨대요. 간섭하면 형제간 사이만 나빠진다구요. 그렇지만 이제 시어른들 거주하시는 집만큼은 지켜드리고 싶다고, 참을만큼 참았다고 하십니다."
문제는 시아버님 병수발비용이나 아직 정정하신 시어머님 모시는 비용이다. 큰형님이 재산 다 갖다 썼으니 늙으신 부모님이야 형님네가 모셔야 하는 것이 당연한거 아니겠나.
"당연한거 누가 몰라서 그러나요? 그런데 큰형님댁은 말로는 자기네가 모시겠다 하면서도 실상 부모님 모실 여력이 전혀 없어보이시는게 문제에요. 시어머니도 큰형님 댁에서는 살고 싶어하지 않으시구요. 항상 돈없다 돈없다 하면서 계속 시댁에 돈을 요구하시는데, 정작 부양해야 할 때 늙고 병드신 부모님 놓고 돈 문제로 형제들간 옥신각신하게 될까 그게 걱정입니다. 그냥 저희가 모시고 살아도 문제될건 없긴 하고, 또 결국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죠. 그렇다고 마지막 남은 집마저 큰형님이 고스란히 자기 재산 행세하시는 건 나머지 세남매는 납득하기 어려워해요. 막말로 돈은 누가 다 가져다 쓰고 누군 계속 부양만 해야 한다면 이건 불공평하잖아요. 저희가 세째라 이래라저래라 나설 수도 없고..."
가족의 의무 VS 분배의 정의윤선 씨의 사례는 그나마 가족들끼리 해결점을 찾기 위한 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님 부양 문제로 그간 쌓여 온 감정적 문제가 불거져 큰 다툼이 일어나거나 심지어는 형제간에 의를 끊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가 너무 많다. 현재 재무 상담을 의뢰하는 많은 분들이 이와 같은 '가족 문제' 상황에서 명쾌한 해결점 없이 음으로 양으로 고통받고 있다. 가족 간의 문제라 뭔가 명확한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다. 가족의 의무를 앞에 두고 주고받음을 따지는 것도 좋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한 집에 함께 살 때에라야 가족이라고 생각되지, 각자 결혼해서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나면 자주 보기도 어렵고 때론 이웃사촌만도 못한 것이 형제간이 될 수도 있다. 절친하게 지내든 소원하게 지내든 부모님 부양 문제가 남아있는 한 형제자매지간은 결국 어떻게든 연루되게 되어 있다. 현재의 삶에 바빠 미뤄두었던 해야만 할 인생의 숙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거대한 불합리의 구조를 '인내와 헌신'이라는 단어로만 포장하기엔 현재의 가족 구조상 어려움이 많다. 이제 '따로 또 같이' 사는 이 시대 가족에게도 '분배의 정의'의 미덕을 원칙으로 세워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윤선 씨네 시댁처럼 큰 아들이 권리만 행세하려들고 의무는 나몰라라 하는 철딱서니 가족의 문제는 말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애초에 큰아들 위주로 모든 가족 결정이 흘러온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 큰아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할리 만무하다. 부모님 재산을 가져다 쓰는 '권리'에는 부모님 살아생전 극진히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가 따른다는 사실만 안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가 발생되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탓만 하기보다 뭔가 순리상 요구되어지는 것을 제도적 환경적 규율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이름하여 가족 돈 관리 규칙을 세우는 일이 그것이다.
윤선 씨네는 어렵게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어 시댁 어르신들의 집을 시어머니 명의로 바꿔드리고 이 집만큼은 시부모님의 간병자금과 노후생활비로 쓰여질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부모님 재산을 부모님께서 쓰시도록 한다는데 공식 석상에서 이견을 달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셋째네서 시부모님을 모시기로 하고 현재 거주하시던 집을 팔아 일부는 시아버지 병원비로 비축해두고 나머지는 모두 시어머니의 연금으로 돌리기로 했다. 누구든 시어머니를 모시는 사람이 그 받으시는 연금을 보태 모시는 비용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된다.
가족 돈 관리 규칙은 어떻게 세워야 하나1. 부모님 봉양을 위한 가족 회비를 각출하여 모은다.
시작하기에 적당한 시점은 없다. 지금 당장 시작할수록 좋다. 일찍 시작할수록, 형제가 많을수록 부담금이 줄어들어 좋을 것이다. 서로 동일한 금액을 각출하는 것이 평등은 아니다. 장남이라 더 내야 할 수도 있다. 형편이 쳐지는 형제는 사정을 봐줄 수도 있지만 면제는 안 된다. 단돈 5천원이라도 가족 일에 '기여'하도록 해야 나중에 '왕따'를 면할 수 있다. 한 사람의 관리자를 만들든 서로 돌아가면서 하든 계좌관리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지출 발생 후 결산보고를 해야 한다. 설날 같은 때 다같이 모인 김에 향후 1년간 지출에 대한 예산을 협의해도 좋다. 부모님 여행보내드려야 하는 일이라거나 병원비 들 일, 생신 때 다같이 외식을 하는 일 등을 미리 계획해서 적정 예산을 수립해두고 그에 맞는 지출을 하는 것이 돈 낭비를 막을 수 있다. 회비는 공동의 돈이라 낭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 한 사람이 맘대로 집행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지맘대로 어머니 옷사드리고 모시고 여행가 놓고 나서 가족회비로 청구하면 괜시리 돈 모아서 불편할 일만 생긴다.
기분 내라고 모으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을 대처하기 위한 것이므로 모인 돈으로 쓸 궁리만 해선 안 된다. 어떤 집은 가족회비에서 현재 60세이신 부모님 연금을 가입하기도 한다. 80세 이후 간병의 시기를 대비하여 꾸준히 얼마간 돈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남편쪽 형제자매라인 따로, 아내 쪽 형제자매라인 따로 각자의 부모님 준비를 한다. 대한민국의 가족 구조상 며느리가 시댁 일에 이러쿵 저러쿵 옳은 소리를 하기가 어렵고 불편하다.
2. 부모님 명의의 집을 부모님 생활비로 현금화시키는 계획을 세운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다는 자산은 집인 경우가 많다. 때로는 늙으신 부모님을 위해 일부러 집을 사드리는 놀라운 효자들도 있다. 거주환경을 안정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에서 생각보다 가장 기초적인 생활비에 들어가는 돈이 많다. 나이 드신 부모님은 생각보다 병원비 지출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님 재산으로 부모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자식들 버는 돈이 덜 들어가도록 만들어 놓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현명한 돈 관리다. 그런데 부모님 집 사드리고 우리도 집 사고, 돈이 부족해서 대출까지 끼고 샀다면 금쪽같은 돈들이 모두 생활비로 쓰여지지 못하고 은행으로 들어가고 만다. 늙으신 부모님 명의의 집은 결코 재테크가 되기 어렵다. 집이 넓고 비싸고 좋더라도, 생활하시는데 너무 돈이 부족하지 않으신 것이 훨씬 낫다. 만약 집에 너무 큰 돈이 묶여 현금이 없다면 나이 드신 분들의 자산 현금화를 미리 준비하고 도모해둘 필요가 있다. 급한 일이 발생되어 급처분하려면 생각보다 손실이 크다.
3. 공동 문제 해결의 범위를 넓혀나간다.
형이 알아서 하겠지, 누나가 알아서 하겠지 해 놓고 나중에 문제가 터지게 되면 결국 형제자매간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처가댁은 신랑이 알아서 챙겨주겠지 기대했다가 감정적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집안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각자 다 자기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므로 억울할 일도 많다. 부모님과 관련된 지출-부모님 생신에서부터 어버이날, 명절, 김장, 제사 등의 비용까지 공동으로 처리한다면 형제간 괜한 선물 경쟁이나 용돈 경쟁 심리 등으로 신경을 덜 쓰게 되며 낭비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