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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밑머리 성성한 사진기자의 요술상자, 아이패드

 

3년째 모티프원을 출입하며 잡지 사진을 찍는 사진기자가 있습니다.

 

보통 사진가들은 숫기가 없고, 또한 오자마자 공간을 살피고 세팅을 하고 촬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촬영을 마치고도 펴진 장비를 챙기느라 또다시 시간을 써야 하기 때문에 말을 섞어볼 기회가 드뭅니다.

 

오늘 귀밑머리가 성성한 최수연 선생님과 말을 섞은 것은 순전히 아이패드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구도를 잡다가도 그 아이패드를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이즘, 차 앞에 붙은 내비게이션만한 상자를 귀에 대고 전화 통화하는 풍경을 보면서 참 우스꽝스럽다, 고 여겨지곤 했습니다. 그 광경도 자주 보게 되니 눈에 익고 전화가 끝나면 다시 손가락으로 그림을 밀면서 블로깅을 하는 그 풍경들이 제게도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흰머리가 활개치기 시작한 이 묵은(?) 사진기자는 이 아이패드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가 궁금했습니다.

 

그는 그것으로 촬영 기획서에 따른 촬영을 상의할 때 취재기자와 코디네이터에게 즉시 샘플구도들을 찾아 함께 상의하곤 했습니다.

 

'사진 찍는 목수' 혹은 '목수일 하는 사진가'

 

그 아이패드에 띄워진 블로그의 나무그릇 사진 하나가 저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누구의 작품이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만든 겁니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말과는 달리 그 50년 된 사과나무 그릇과 자투리 참나무, 밤나무, 감나무, 느티나무, 물푸레나무로 만든 식빵 그릇과 샐러드 볼, 앉은뱅이책상, 자투리 나무로 만들었다는 연필꽂이와 그 곳에 꽂힌 세 개의 꼬챙이 포크까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무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 사람의 거반을 드러내는 단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나이테가 확연히 드러나는 그의 단면을 본 것입니다. 일이 끝나고 그와 대좌했습니다. 황홀한 얘기들이 술술 나왔습니다.

 

이 나무 그릇들에 세련된 폼과 야무진 마무리가 느껴진다고 말을 드렸습니다. 수줍음을 감추며 답했습니다.

 

"이제 겨우 쓸 만한 나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나무 만지는 일이 좋아 몇 해 전에 한 일 년쯤 목수에게 나무 만지는 일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 솜씨로만 보면 목수가 사진을 찍는 것인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목수일을 하는 것인지 구분키 어려웠습니다. 두 가지가 모두 경지에 오른 모습이었습니다.

 

늘어나는 닭을 어찌하나

 

애초에는 마포의 한 아파트에 살다가 5년 전에 곤지암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습니다.

 

"도시인 모두가 그렇듯 저도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애초에는 파주 쪽을 염두에 두고 땅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땅값이 너무 비싸드라구요. 그 돈을 주고 땅을 사면 집 지을 돈이 남지 않겠어요. 그래서 좀 더 싼 집터를 찾아 더 밑으로 내려간 곳이 곤지암입니다. 직장까지는 1시간 반 정도의 운전이 필요한 거리이지만 시골에 사는 사치에 대한 대가라 여깁니다.

 

집은 제가 직접 지었습니다. 땅을 사고 나니 집 지을 재료 살 돈만 남드라구요. 그래서 제가 직접 집을 지을 수밖에 없었어요. 본채 옆에 제가 좋아하는 나무작업을 위한 작업실용 별채를 하나 지었습니다. 그곳에서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서울로 출근하는 처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있으니 아이들은 걱정이 없어요."

 

직접 지었다는 집 주변을 솔나무와 전나무가 둘러싸고 그 아래 누렁이와 토종닭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토종 암탉을 들였다가 유정란을 얻기 위해 수탉을 들이고 다시 부화된 닭이 늘어나서 닭을 잡지 못하는 이 부부는 그 늘어나는 객체 수에 당황하기도 합니다.

 

전원생활을 하는 거개의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은 난방비입니다. 중앙난방식의 도심 아파트와 달리, 허허벌판 외딴 건물은 열효율이 낮습니다. 그러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몇 배에 해당하는 기름값과 가스비를 지불하고도 냉방 같은 곳에서 겨울나기가 십상입니다.

 

하지만 최수연 선생님은 물을 데워서 바닥까지 난방이 가능한 화목난로로 난방비도 아끼고 집에서도 추위를 모르는 겨울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잘 만들어진 난로라 참나무 하나를 넣으면 불이 꺼지지 않고 6시간을 견딥니다. 지난해에 80만원어치의 장작을 샀는데 올해까지 이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원주택의 한 달 치 가스비도 되지 않는 비용으로 2년을 살고 있었습니다.

 

넷째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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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최수연

부인과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문제를 두고 있습니다.

 

"처는 아이들을 좋아해요. 첫째 아들과 두 딸을 두고 있지만 처는 식구를 더 늘이고 싶어 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소질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를 더 갖자는 처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어요."

 

참 행복한 고민이다, 싶습니다.

 

이 사진가이자 스스로 '서툰 목수'라고 하는 최수연 선생님은 <논-밥 한 그릇의 시원>(마고북스 발행)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공부하고 15년 가까이 사진을 찍고 있지만 사람을 낸 그 땅을 못 잊어 '한국의 논'을 주제로 사진을 찍고 서울과 대구에서 사진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10년 넘게 도회지의 고층아파트에서 살아왔고, 이제 스스로 지은 목공방이 있는 시골에 살면서도 도시에서 밥벌이를 하지만 그의 정서는 여전히 '촌놈'을 벗어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가 휴일에 목공방에서 사포질로 보낸 시간을 자궁삼아 태어난 그의 나무그릇들은 이제 도시의 아트샵 주인들의 요청에 따라 도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경복궁 옆 통의동이나 인사동의 가게들에 놓였고 그것들은 곧 새로운 주인을 만나 또 다른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나무 그릇은 도자기 그릇들과 달리 가볍고 깨질 염려가 없어서 아이들이 만지기에도 위험하지가않습니다.

 

가까이서 말을 섞으면서 최수연 선생님을 찬찬히 살펴보니 꼭 그 나무그릇들을 닮은 것 같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목수#사진가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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