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 주인공 '뫼르소'가 '태양이 강렬해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살인을 하죠. 그런데 폭력게임 때문에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XXX 기자입니다" - MBC 주말 <뉴스데스크> 최일구 앵커
지난 13일 밤, 주말 MBC <뉴스데스크>를 보다가 최일구 앵커의 흥미로운 앵커멘트에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평소 톡톡튀는 언행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최 앵커는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관심을 끄는 뉴스를 전했습니다.
최일구 앵커가 카뮈의 소설까지 언급해가며 전한 뉴스의 내용인즉슨, 일부 인터넷 게임의 폭력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게임 중독에 빠진 20대 청년의 묻지마 살인 사건이 사회의 충격을 던져주고 있는 상황에서, 시의성 있게 나온 <잔인한 게임 난폭해진 아이들> 뉴스는 흥미로웠습니다.
뉴스를 지켜보며, 요즘 세대 아이들이 많이 잔혹해 진 것 같아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초등생들이 상대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잔인한 게임 난폭해진 아이들> 뉴스 영상은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습니다. '게임의 폭력성이 문제긴 문젠가 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생뚱맞은 실험, 저런 상황에서 화 안낼 사람 있을까?
그래서일까요? 여기까지 뉴스의 구성은 아주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진 '황당 실험'에 그만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심각한 뉴스에 웃은 건, '저런 실험이 타당성이 있나?'라는 의아함 때문이었습니다.
<잔인한 게임 난폭해진 아이들> 뉴스 속에는 '게임의 폭력성'에 관해 실험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실험 내용은 PC방의 컴퓨터 전원을 순간적으로 모두 꺼버리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격한 반응을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실험이 시작되자, 뉴스 속 PC방의 전원이 나갔고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어? 뭐야! 아~ 씨X!! 이기고 있었는데! 미치겠다"라는 한 아이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또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관련 상황이 '게임의 폭력성'을 입증할만큼 이상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무엇인가에 몰두하다가 정전이 되면 나올 수 있는 흔한 반응 중 하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MBC 기자는 이 실험 결과를 게임의 폭력성과 연계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곳곳에서 욕설과 함께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옵니다.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린 겁니다." - MBC 주말 <뉴스데스크> 중
뉴스를 보며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번 실험 결론은 아전인수라는 표현이 어울려 보였습니다. 저런 특수한 상황에서 화를 참거나, 욕을 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예를 들어 MBC 보도국에서 열심히 기사쓰기 작업을 하던 중, 갑작스레 정전이 되어 파일이 날아간다면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요. 만약, 화를 내는 기자들의 모습을 담아 이것이 '기자의 폭력성이다'라는 기사를 낸다면 이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게임의 폭력성을 입증하려면, 변수없는 조건에서 게임으로 인해 폭력성이 나타나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또 그런 실험의 결과가 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실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실험결과를 '게임 폭력성'과 연관시키려는 기자의 무리수(?)에 필자는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PC방이 정전된 특수한 상황 때문에 화를 낸 사람들을, 게임의 폭력성 때문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경우가 아닐까요?
MBC 주말 <뉴스데스크>의 황당한 '게임 폭력성' 실험? 트위터 불만 폭발
최일구 앵커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앵커님이 보기에도 이 '게임 폭력성 실험'은 좀 아니지 않나요? 그럼에도 이 황당 실험을 <잔인한 게임 난폭해진 아이들> 뉴스의 근거로 집어넣은 것은 시청자를 우롱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비판은, 비단 저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뉴스가 나간 이후에, 트위터 등의 SNS 사이트를 비롯한 인터넷에서는 주말 <MBC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에 대한 비판이 많았습니다. 트위터 사용자들은 'PC방 전원을 내려서 컴퓨터가 다운되었는데, 그때 화를 냈다고 그게 게임의 폭력성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어이없다'라는 반응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트위터 사용자들과 같은 생각입니다. 관련 '실험'을 한 기자가 이런 비판을 왜 예상하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뉴스는 어린 학생들이 폭력 게임에 무방비로 노출돼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끝을 맺지만, 황당 실험을 근거로 내세운 탓에 시청자들은 뉴스 내용을 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성인 인증을 받아야만 성인용 폭력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식적인 규제일 뿐,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도를 넘어선 잔인한 폭력 게임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는 게 현실입니다." - MBC 주말 <뉴스데스크> 중
<잔인한 게임 난폭해진 아이들> 뉴스는 시의성 있는 정보를 담았음에도, 공감할 수 없는 실험 탓에 뉴스의 의미가 퇴색되어 안타까웠습니다. 앞으로 좀 더 공감가는 뉴스를 전하는, 주말 MBC <뉴스데스크>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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