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배출한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중 한명인 에릭 클랩튼의 세 번째 내한공연이 2월 20일 일요일 오후 7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열린다. 한국에서 에릭 클랩튼의 곡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Wonderful Tonight'과 'Tears In Heaven'일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팬들 역시 공연 중에 이 노래가 나오기를 가장 기대할 것 같다. 하지만 단 이 두곡으로 에릭 클랩튼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가 걸어온 길은 60~90년대 록의 산 역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60~70년대 그의 최고 전성기 시절을 떠올려보면 더 그렇다.
그는 록 음악역사상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두 그룹을 거쳐 왔다. 바로 야드버즈(Yardbirds)와 크림(Cream)이다. 이 두 밴드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 있을 만큼, 이후 록·메탈 밴드들에게 미친 영향이 크다. 결코 에릭 클랩튼이 지금처럼 듣기 좋은 음악만 한 것은 아니란 것이다.
오늘은 그가 걸어왔던 길 중, 60년대 결코 잊을 수 없는 두 밴드 야드버즈와 크림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보려고 한다.
야드버즈는 1963년 결성되었고 1968년 해체되었다. 이 5년 동안 이 그룹을 거쳐 간 기타리스트들이 바로 영국 3대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였다. 야드버즈가 처음 추구한 것은 R&B였다. 하지만 에릭 클랩튼이 기타리스트로 들어오면서 밴드는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에릭 클랩튼이 가세한 이후 야드버즈는 보다 더 공격적인 하드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릭 클랩튼의 깊이 있고 필링 넘치는 연주는 단숨에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그만의 독특한 기타연주 스타일 때문에 야드버즈에서 '미스터 슬로우핸드'란 애칭까지 얻게 된다.
특히 그는 야드버즈 공연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여준다. 요즘 록이나 메탈밴드 공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간주 중에 나오는 긴 시간의 기타솔로 등이 그것이다. 이런 혁신적인 연주를 통해서 기존 밴드에서 세션맨으로만 머물러 있었던 기타리스트의 활동영역을 확장 시켰다. 밴드에서 보컬뿐만 아니라 기타리스트도 동동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베이스와 드러머 역시 밴드에서 단순 세션맨이 아니라 뮤지션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R&B에 기반을 둔 시절과 달리 에릭 클랩튼이 들어와서 활동한 16개월은 인기 면에서 이전 같지 않았다.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이 추구하는 음악과 야드버즈 멤버들이 추구하는 음악 사이에 간격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에릭 클랩튼은 1964년 팀을 탈퇴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후임으로 들어온 것이 바로 제프 벡이었다. 제프 벡은 야드버즈 최고의 전성기를 이끈 기타리스트로 평가 받고 있다.
에릭 클랩튼이 활동한 야드버즈는 하드록과 헤비메탈, 블루스록,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기초를 만들어 놓았다. 이후 무수히 많은 밴드들이 야드버즈에서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간 것이다. 특히 일렉트릭 기타의 피드백, 디스토션, 증폭기의 사용 등은 왜 록과 헤비메탈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야드버즈를 빼놓을 수 없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70년대 이후 록과 헤비메탈 밴드들이 야드버즈의 트리뷰티 앨범을 만드는데 많이 참여한 이유가 왜인지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
크림, 세계 최초의 슈퍼밴드로 군림하다
크림은 세계 최초의 슈퍼밴드로 인정받고 있는 밴드다.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 드럼의 마왕 진저 베이커, 슈퍼베이시스트 잭 브루스 등이 참여했다. 특히 이들이 발표한 세장의 앨범은 모두 블루스록의 최고 명반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두 번째 앨범 <디즈레일리 기어스>는 록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결코 빠트릴 수 없을 정도다. 물론 1집 <프레쉬 크림>과 3집 <휠 오브 파이어> 역시 크림을 이야기하면서 빠트릴 수 없다.
크림은 슈퍼플레이어들이 모이면 많지 않은 숫자로도 충분히 무거운 사운드를 낼 수 있음을 처음으로 인식시켜주었다. 각 파트에 뛰어난 연주자들이 모여서 만들어낼 수 있는 사운드가 얼마나 다양한지 최초로 알려준 트리오밴드였다. 특히 에릭 클랩튼은 크림에서 하드록과 블루스록에 관련된 다양한 실험적인 기법을 선보이며 이후 나온 록·메탈 밴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는 공연 중 재즈 같은 애드리브 연주를 즉흥적으로 시도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크림은 에릭 클랩튼 혼자만의 밴드가 아니었다. 드러머의 진저 베이커, 베이시스트의 잭 브루스 역시 당대에 한 획을 그은 연주자들이다. 잭 브루스는 진저 베이커와 에릭 클랩튼에 비해서 대중들의 관심이 적었지만 베이스 연주자로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특히 '휠 오브 파이어'에서 그가 보여준 공격적인 베이스 연주는 단순한 밴드의 조력자가 아니라 에릭 클랩튼과 거의 맞먹는 에너지와 연주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록이나 메탈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맡은 연주자들이 훨씬 파워풀한 연주와 공격적인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드러머 진저 베이커는 드럼의 마왕이란 애칭을 가지고 있다. 그는 1960년대 가장 훌륭한 드러머인 동시에 이후 70년대 록과 메탈밴드에서 활동한 대부분의 드러머에게 교과서 같은 존재였다. 특히 크림의 1집 앨범 <프레쉬 크림>에서 보여준 긴 드럼솔로 곡 'Toad'는 이전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혁명이었다. 드럼으로 10여분의 긴 솔로곡을 편성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슈퍼밴드 크림에서 에릭 클랩튼이 빛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쟁쟁한 밴드 멤버들과 함께 빛나는 연주를 보여준 그였지만 결국 세 장의 앨범을 끝으로 크림은 해체가 되고 만다. 이유는 드러머인 진저 베이커와 베이시스트인 잭 브루스의 사이가 너무나 좋지 않았기 때문.
1960년대 에릭 클랩튼은 블루스에 기반을 두고 재즈와 하드록, 블루스록, 사이키델릭사운드까지 두루두루 섭렵했다. 그리고 그의 연주스타일과 주법은 이후 많은 록·메탈 밴드의 기타리스트에게 영향을 미쳤다. 단순히 'Wonderful Tonight'과 'Tears In Heaven' 같은 달콤한 곡들뿐만 아니라 상당히 거칠고 공격적인 그리고 몽롱한 사운드까지 거침없이 연주한 것이다.
그를 단순히 두 곡으로만 정의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그가 걸어온 길을 대충 떠올려보아도 알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영화리뷰전문사이트 무비조이(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