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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에서 조계산 장군봉 오르는 길
선암사에서 조계산 장군봉 오르는 길 ⓒ 전용호

천년고찰을 품에 앉은 조계산

2월 12일, 아직 겨울바람이 차다. 호남고속도로 승주 나들목을 나와 순천 선암사로 향한다. 북쪽에는 눈이 내린다더니 이곳은 날씨가 맑다. 선암사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오늘 산행할 조계산이 웅장하게 보인다. 조계산(曹溪山, 884m)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지만 산 자체로 별 특색이 없다. 아주 부드럽고 매끈한 산이다. 그래서 더욱 친근한 산이기도 하다.

조계산은 원래 서쪽 봉우리를 송광산, 동쪽 장군봉을 청량산이라 불렀는데, 고려시대 때 조계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산 아래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찰인 승보사찰 조계총림 송광사와 천년고찰 태고총림 선암사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불교의 양대 종파의 사찰이 한 산 그늘 아래 있는 형국이다.

조계산에는 등산로가 여럿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길이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넘어가는 길(8.7㎞, 3시간)이다. 굴목재를 넘어 중간쯤 보리밥집이 있으니 쉬었다 갈 수도 있다. 정상을 오르려면 선암사에서 오르는 길을 많이 찾는다. 선암사 뒤로 보이는 산이 정상인 장군봉이니 바로 오를 수 있다. 장군봉에서 능선을 타고 연산봉을 거쳐 송광사까지 가는 산길도 좋다.

 비로암 가는 산길.
비로암 가는 산길. ⓒ 전용호

매표소를 지나면 선암사까지는 흙이 잘 다져진 넓은 길이 나 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추위 탓인지 산사를 찾는 사람들이 드물다. 한적한 길을 걸어가는 기분이 상쾌하다. 길 아래로는 계곡이 반쯤 얼었다. 아니 반쯤 녹은 건가? 승선교를 건넌다. 승선교와 어울리는 강선루는 보수중이다.

선암사에 다다를 무렵 전나무 세 그루가 서 있는 연못을 만난다. 삼인당이다. 연못에 물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물고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연못에 갇힌 물고기들은 겨울 보내기가 쉽지 않겠다. 선암사를 들르지 않고 바로 산으로 오른다. 정상인 장군봉까지 2.7㎞다.

산속에 돌담을 쌓고 나무로 지붕을 한 암자

숲길은 햇살을 받아 포근하다. 비로암 쪽으로 길을 잡는다. 암자로 가는 길이 한적하고 편안한 길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은 가파른 길에서 저질 체력을 드러낸다. 걸음이 무거워지고, 따뜻한 햇살에 나른함까지 몰려온다.

잠시 쉬었다가 힘을 내서 산길을 오른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올려다 보이는 곳에 작은 집이 보인다. 혹시 비로암? 점점 다가서니 암자는 일반적으로 상상했던 암자가 아니다. 돌로 벽을 쌓아 만들고 지붕은 나무로 덮었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솔솔 나온다.

 산 속에 숨어있는 작은 암자, 비로암
산 속에 숨어있는 작은 암자, 비로암 ⓒ 전용호

 비로암에 있는 나무의자
비로암에 있는 나무의자 ⓒ 전용호

비로암(毘盧庵)은 역사가 깊다. 백제 성왕 7년(528년)에 아도화상이 지금의 조계산 중턱에 암자를 짓고 청량산 해천사라 하였다. 후에 조계산 비로암으로 개칭하였으며, 선암사의 모태가 된 암자다. 지금은 그 때 그 모습이 아니겠지?

암자 한쪽에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의자가 있다. 어? 송광사 불일암에서 본 법정스님 파피용 의자가 떠오른다. 살짝 앉아본다. 흔들거리는 게 조금 불안하다. 하지만, 의자에 앉으면 첩첩이 쌓인 산들이 너울대는 경치에 마음이 편안해 진다. 비로암에는 스님이 출타중인지 인기척이 없다. 한 번씩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수행이 되겠다.

산행을 위해 간단하게 준비한 빵을 먹고 다시 산길로 들어선다. 겨울나무들이 앙상한 숲길 속을 걸어간다. 작은굴목재에서 정상인 장군봉으로 가파른 길을 오른다. 눈이 쌓였을 거로 생각했는데 다행히 눈이 녹았다.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 ⓒ 전용호

정상에는 바람이 심하게 분다. 빙 둘러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는 대각암 쪽으로 내려선다. 산정에서 조금 내려오자 산길이 온통 얼었다. 조금가면 괜찮겠지 하면서 낑낑대며 내려오다 엉덩방아 한번 찍었다. 빙판이 되어버린 길은 아직 많이 남았다. 결국 아이젠을 꺼냈다. 빙판구간을 벗어나니 다시 햇살 가득한 숲길이다. 포근하다.

선암사에서 만난 잘생긴 부도 3기

산길은 대각암에서 끝이 난다. 대각국사 의천이 크게 깨달아서 대각암(大覺庵)이라고 했다는데…. 대각암에 벽 없는 문은 언제 봐도 신기하기만 하다. 문고리도 없어 돌아서 들어간다. 대각암 뒤편에는 대각암부도가 있다. 선암사에는 고려시대 부도가 3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다. 팔각원당형 부도는 언제 봐도 안정적이며 조형미가 뛰어나다. 부도를 한 바퀴 돌아본다.

 대각암으로 들어가는 문. 담이 없고 문고리도 없다.
대각암으로 들어가는 문. 담이 없고 문고리도 없다. ⓒ 전용호

 대각암 뒤뜰에 있는 대각암 부도. 보물 제1044호로 지정되었다.
대각암 뒤뜰에 있는 대각암 부도. 보물 제1044호로 지정되었다. ⓒ 전용호

선암사 부도를 더 찾아볼까? 선암사로 내려서면서 절집으로 들어서지 않고 뒤편 차밭으로 돌아간다. 동부도와 북부도를 보기 위해서다. 동부도는 숲속에 꽁꽁 숨어있다. 표지판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한참을 가다가 되돌아온다. 되돌아오는 길에 좁은 숲길을 발견하고 올라서니 부도가 있다.

동부도는 규모가 크다. 몸돌을 사다리꼴로 다듬고 커다란 옥개석을 덮어 안정감을 갖추고 있다. 몸돌에도 인왕상을 새기고 문비를 새겨놓아 한껏 멋을 부렸다. 아쉽게도 커다란 옥개석 한쪽이 깨졌다.

 고려시대(10세기) 만들어진 보물 제1185호로 지정된 선암사 동부도
고려시대(10세기) 만들어진 보물 제1185호로 지정된 선암사 동부도 ⓒ 전용호

 보물 제1184호로 지정된 선암사 북부도
보물 제1184호로 지정된 선암사 북부도 ⓒ 전용호

다시 되돌아 나와 북부도를 찾아본다. 150m를 가라고 알려주지만 도무지 부도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숲 속이다. 잣나무가 하늘로 쭉쭉 뻗은 깊은 숲 속을 한참 걸어간다. 그것도 좁은 숲길을. 길을 잘못 들었을까하는 하는 불안감을 갖고 조금만 더 가보자며 간 길. 숲 속에 보일 듯 말듯 숨어있는 작은 부도를 발견한다.

북부도도 크기는 작지만 이리저리 둘러보다 놀랄만한 느낌을 받았다. 기단부 석재가 하나의 돌로 만들어 졌다. 와! 어떻게 이렇게 깎아 낼 수 있었을까? 큰 돌을 일일이 쪼아서 모양을 만들었을 석공의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기단부는 구름문양으로 장식하고 물이 빠지도록 배수구까지 만들어 놓았다. 부도 울타리에 앉아 숲 속을 내려다본다. 누가 찾아오기나 할까?

 차밭에서 내려다본 선암사 풍경
차밭에서 내려다본 선암사 풍경 ⓒ 전용호

선암사 야생차밭은 차나무들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말라버린 것들도 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나 보다. 차나무 옆 고로쇠나무들은 벌써 물을 내리고 있다. 날은 아직 추운데 나무들은 기지개를 편다. 선암사 매화도 가지 끝에 봄을 준비하고 있다.


#조계산#선암사#비로암#부도#대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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