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부교육청 소속 학교에서만 27년째 근무하며 7년 연속 생활지도부장(학생부장)을 맡고 있는 전교조 교사. 8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교사(국어). 평교사 출신이면서도 교감들과 나란히 서울 영림중 교장에 응모해 14대 1의 경쟁을 뚫고 1등으로 뽑힌 교사.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교사의 별명은 '찬수박'이처럼 심상치 않은 경력을 가진 박수찬 교사(55·서울 한울중)의 모습은 뜻밖에도 동네 아저씨 같았다. 학생들도 부담을 갖지 않았는지 그의 이름을 뒤집어 '찬수박'이란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교장 공모에 나설 때 염색하라고 주변에서 말했는데 하지 않았어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교육은 솔직한 마음을 터놓고 서로 믿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17일 오후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있는 한울중 생활지도부 교무실에서 만난 박 교사는 "영림중 교장이 되면 학부모와 학생, 선생님과 소통하고 협력하겠다"면서 "학부모회 예산을 배정하고 학교 안에 학부모 카페를 마련해서 차도 직접 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학부모 등 지역주민과 함께 가지 않으면 교육공동체 실현이란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 교사는 이날 오전에 "신체검사를 받고 왔다"고 한다. 하루 전 서울시교육청이 한울중에 공문을 보내 '영림중 3월 1일자 교장 임용'을 위해 박 교사의 공무원신체검사서가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교사가 한울중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영림중 교장실로 가는 길은 녹록지 않은 상태다. 한국교총이 '서울시교육감의 코드인사'라면서 가로막고 나선 탓이다.
이날 오후 3시부터 1시간 20분 동안 박 교사를 만나 교장 임용 후보자로서 지닌 포부와 최근의 심경에 대해 들어봤다. 그가 교장 임용을 앞두고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학교 구성원이 공모를 해서 뽑은 게 코드인사인가?"
- 궁금한 것부터 묻겠다. 욕 많이 먹는 생활부장을 연속 7년 한다는 것은 아주 드문 기록이다. "완전히 '말뚝 박았다'(웃음). 우리 학교가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아 봉사하는 마음으로 꾹 참고 했다."
-교무실 복도에 '체벌 대체 프로그램'을 적어놓은 게시판이 있더라. "작년에 체벌 대체 프로그램 만들면서 학생회에서 게시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생활부장을 7년째 하고 있는데 이미 6년 전부터 생활부에서는 체벌을 없애려고 했다. 체벌은 반짝 효과만 있지 근본 문제해결이 안 된다. 대화를 통해 아이들을 지도하는 게 더 효과가 있다."
- 왜 생활부장 그만두고 교장에 응모했나. "교사 생활하면서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15년 동안 공부했다. 그러면서 동료교사들과 다양한 체험활동을 전개하고 수업방법을 혁신하려고 했는데 장벽이 되는 게 교장이란 존재였다. 교장은 교사들이 수업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교장이 되어서 직접 학교의 제도도 손질하고 학교를 새롭게 만들고 싶었다."
- 교장이 되면 어떤 일에 힘을 쏟을 생각인가?"무엇보다 학부모나 학생, 선생님하고 소통하고 협력하겠다. 영림중이 음악중점학교이면서 혁신학교다. 아이들의 문화예술적 재능도 키워내고 학교 변화를 일궈 일반학교에 좋은 영향을 주는 모범학교를 만들고 싶다."
- 학부모와 소통할 복안이 있나. "공모과정에서도 얘기했지만 학부모회를 제도로 만들어서 예산도 배정할 것이다. 학교 안에 학부모 카페 공간을 마련해드리고 학부모들이 원하는 강좌도 열 생각이다. 학교에 마실 오듯이 오셔서 교사들과 자녀에 대한 상담을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시간이 된다면 차라도 직접 타서 대접해드리겠다."
- 교사, 학생과 소통할 구상도 했나?"교장은 군림해선 안 되고 선생님들 교육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잡무를 줄여드리고…. 이전에도 학생들과는 야영체험을 해왔는데 교장이 되면 부적응 아이들하고 50km 걷기와 같은 프로그램을 같이 하고 싶다. 성찰교실을 만들면 아이들 상담을 맡을 것이다. 인성교육을 위해서는 수업도 직접 하려고 한다."
- 그렇지만 한국교총은 현재 교장자격증이 없는 무자격 교장이라면서 반대하고 있다. "당사자로서 안타깝다.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능력이 있으면 평교사든 교장자격증 소지자든 공정하게 경쟁해서 교장이 될 수 있는 제도다. 유독 전교조 교사고 평교사라고 해서 안 된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27년 교사 생활이 교장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안 되나. 2개월 동안의 교장자격연수를 받지 않았다고 무자격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다. 영림중에 교장 지원한 뒤 지난 해 12월부터 예습을 정말 철저하게 했다."
- 1차 학교 심사, 2차 교육청 심사에서 14명 응모자 가운데 1등을 했다. 그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학생들 생활지도를 꾸준히 해오고 학교를 혁신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 혁신학교인 영림중 교장으로 적합하다고 판단받은 것 같다."
- '곽노현 교육감의 코드인사'란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오히려 교장자격증만 있으면 교과부나 교육청이 마음대로 학교에 발령내 주는 게 코드인사다. 학교 구성원이 공모를 해서 뽑은 게 코드인사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교조 교사는 투쟁만 하는 것으로 보는데 그렇지 않다"
- 일부 학부모가 '전교조 교장 반대' 현수막을 내거는 광경을 봤다. 그 분 얘기는 "전교조 교장이 되면 시험 안 봐서 성적이 떨어지면 큰일"이라고 하던데."학생중심으로 수업을 바꾸면 오히려 학력이 올라간다. 이건 핀란드나 우리나라 몇몇 학교에서도 검증된 것이다. 자기 주도 학습을 강화하겠다.
보수언론이 잘못된 보도를 해서 전교조 교사는 투쟁만 하는 것으로 보는데 실제로는 아이들에게 헌신적이고 성실하게 가르치는 선생님이 정말 많다.
전교조와 비전교조 구분은 일부 언론이 잘못 만들어놓은 것이다. 저를 반대하시는 일부 학부모님은 1년만 지나면 저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그 분들과 만나서 학교발전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다."
-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교장이 된 뒤 학부모와 충분한 소통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아이들을 자식처럼 대하고 학부모를 만날 때도 나부터 믿음을 갖고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교육청을 바라보는 대신 교사와 학생, 학부모를 바라보면서 일할 것이다."
- 교장이 되면 전교조를 자동으로 탈퇴하게 되는데. "그렇다. 한 기관의 장으로서 전교조든 교총이든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교직원을 대할 것이다. 학교 경영도 치우침 없이 하겠다. 내가 민주주의를 위해서 활동한 전교조 경험이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 남부교육청의 학생들이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영림중에서 성적을 끌어올릴 방법을 갖고 있나. "한 명도 소외되지 않는 수월성 교육을 위해 노력하겠다. 기본학력을 높이도록 돌봄교육을 할 것이다. 학업성취도 높은 아이들은 그들에 맞게 영재교육을 하겠다. 이런 것이 바로 수월성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잘 하는 아이에게만 집중 투자하면 그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 좀 이른 느낌이 있지만 만약 교장이 된 뒤, 임기 4년이 끝나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교장 소임을 다하게 된다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평교사로 돌아가고 싶다.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정년을 맞는 것이 내 희망이다. 생활부장도 다시 하라면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