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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에게 진흙을 주었으나
나는 그것으로 황금을 만들어 내었다.
<악의 꽃> 중 보들레르

 변의수의 연금술의 화가 서상환과 현대미술의 이해
변의수의 연금술의 화가 서상환과 현대미술의 이해 ⓒ 송유미


2월의 봄. 그러나 이른 봄바람은 살을 에이는 듯 차다. 그 뽀쪽한 바늘같이 따가운 꽃샘바람 속에서 움트는 파란 싹에 봄의 입김을 느낀다. 그렇다. 봄이 왔다. 봄은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듯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부터 녹이는 계절인 듯하다.

이 봄이 오는 길목의 2월 중순(16일) 부산 봄바다를 찾은 변의수 시인을 대연동 소재 부산문화회관 앞 '모짤트'의 공간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났다. 변의수 시인은 09년도에 개인 창작시집과 예술 평론집 <신이 부른 예술가> 등을 발간하여 시단과 예술문화계에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런 그가 채 2년이 안 되는 시간에 무려  435페이지에 달하는 <연금술의 화가 서상환과 현대미술의 이해> 제목의 두툼한 책을 발간했다.

변의수 시인은 한국문단에서 드물게 시와 평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활동해 온 젊은 시인이다. 변의수 시인은 시전문지 <현대시학>으로 정식데뷔했고, 1991년 <먼나라 추억의 도시> 첫시집 출간 이후 줄곧 실험시 연구 및 발표하면서 시단에서 매우 독특한 시색깔로 주목 받고 있다. 책의 저자는 <연금술의 화가 서상환과 현대 미술의 이해>에서 서상환 화백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서상환 화백은 <잡설품>의 작가 박상륭, <오페라 유령>의 번역가 성귀수 시인과 함께 생존하는 몇몇 우리 한국의 천재 작가의 한명이다. 서상환은 박상륭이 그러하듯 철학, 종교,예술을 하나의 텍스트로 녹여내는 연금술적 정신과 역량을 지닌 미술가이다.

천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칸트가 언급한 바 있듯, 천재는 예술미의 규칙, 즉 예술의 생명을 창조하는 자들이다. 서상환은 동서고금의 온갖 정신을 그의 화로에 불러들여 연금술의 불꽃으로 형이상학적 도상들을 창조한다.

연금술은 '존재 변환'의 상징

그러나 서상환 화백의 형이상학의 그림 세계(만다라, 방언화 외)는, 일반인에게 익숙한 그림은 아니다. 해서 <연금술의 화가 서상환과 현대 미술의 이해>를 읽기 전, 연금술에 대한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이 독서를 위한 지름길이라 하겠다.

'연금술'은 한마디로 금을 만들어내는 기술. 그러나 정신적(예술)으로 보면 연금술은 '존재의 변환'을 상징한다. 이 연금술은 중국에서 최초 시작되었다. 유황에다 수은을 넣은 다음 소금이란 촉매제를 넣어 함께 끓이면 화금석(철학의 돌)이 탄생한다. 이 화금석은 불로장생의 약으로도 많이 쓰여왔다. 당나라 때 황제와 고관들은 이 화금석을 많이 복용하여 중금속 중독으로 많이 죽었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

연금술은, 낭만주의 이후 대립되는 이중적인 것을 혼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통용되었다. 연금술은 발단 초기부터 사기적ㆍ신비주의적 기술로서 발생하여, 16세기 이후에는 차차 쇠퇴하다가 17세기에 순수과학으로서의 화학이 성립하자 그 모습이 사라졌다.

이러한 연금술은 미술도상 속에도 혼입(混入)되어,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등 중세 성당의 건축장식과 히에로니무스 보스, 뒤러, 파르미자노, 램브란트 등의 작품 속에도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하겠다.

마음은 비어있는 그릇
비우고 비워도
항상 가득 찬 한 그릇


마음은 가득 차있는 그릇
채워도 채워도
차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그릇

끝나지 않는 밑도 없는 끝
<빈 그릇>-서상환

 시와 평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변의수 시인
시와 평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변의수 시인 ⓒ 송유미


서상환 화백의 그림은 '원형의 기호 유희'라고 할 방언화(신어) 작업에의 연장선에 다름 아니다. 이 작업은 세계 미술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유일하고도 독보적인 영혼의 작업세계로 평가받고 있다. 아래는 변의수 시인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서상환 화백의 그림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그의 그림은 바로 사랑이니까

오마이뉴스(이하 오) : 서상환 화가의 그림에 대하여 간략한 소개를 바랍니다.

변 : 서상환 화백은 종교적 정신에 바탕하여 인간에 대한 구원 의식을 표현하는 화가입니다. 서상환 화백은 1980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성상화(聖像畵, Icon) 화집을 출간(문화방송출판부)한 독보적인 성상화가입니다만, 또한 개성적 판각법으로써 판화가로서도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해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서 화백은 평생을 전업작가로서 유화는 물론 도자, 조각, 판각 등에까지 이르는 폭넓은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서상환 화백의 작품들 중에서도 특별히 강조해서 얘기해야 한다면, 흑백 목판화와 만다라 작업, 그리고 신어(神語) 작품 시리즈를 들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러한 작품들의 배면에는 예수의 고난과 재림에 관한 성상(聖像) 기호와 도상들을 통해 오늘날의 민중과 소외 받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구원 의식으로 표상되고 있습니다.

서 화백은 <법정에 서신 예수>라는 작품에서는 법의 정신이 원래의 목적을 잃고 인간이 율법의 노예로 전락됨에 예수께서는 율법의 참된 정신이 무엇인가를 설파하셨으나, 결국 법 집행자들에게 처형을 당하셨다'며 "진리를 외치는 자가 왜 법정에 서야 하는가? 역사의 흐름 속에 언제나 던져지는 질문이다"라는 의미 있는 화어(畵語)를 써두고 있기도 합니다.

서상환 화백은 유화 <법정에 서신 예수>에서 예수의 영적 부활을 의미하는 붉은 색채의 캔버스를 예수의 손발과 육신을 묶는 크고 작은 '수갑'들로 가득 채워두고 있습니다.

오: 서상환 선생님의 예술적 천재성이 그림 속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요 ?

변 : 카툰 작가나 시인들이 한 컷의 사각이나 짧은 몇 줄에 깊은 생각이나 복잡한 이야기를 담아내야 하듯이, 화가 역시 한 장의 화폭에 작가의 정신과 사상을 감성적으로 표현해내야 합니다. 시적 상징은 그러한 깊고도 복잡한 세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데, 서상환 화백은 그러한 정신세계의 도상을 구상하고 조형하며 칠하거나 깎아냄에 있어 시적 상징화에 누구보다도 탁월한 재능을 보여줍니다.

 서상환의 <영원을 향한 손>
서상환의 <영원을 향한 손> ⓒ 송유미

일례로, <영원을 향한 손>이라는 유화작품에는 마주잡은 가느다란 손가락의 손이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나 나뭇가지처럼 쉼 없이 흔들리듯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제목에서와 같이 누군가가 "영원을 향해" 그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하며 구하고 있음을 이 작품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상환 화백은 자신의 구원 의식을 그와 같이 시적으로 함축하여 표현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 서상환 선생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 화백이 그린 '만다라'를 어떤 의미로 읽어야 하는지요 ?

변 : 만다라는 일반적으로 불교의 승려들이 명상 수행의 한 일환으로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만다라의 본질은 중심과 질서에 의한 평온과 깨달음입니다. 승려들은 원과 사각형의 질서정연한 구도 속에 불교적 성상(聖像)들을 그려넣습니다만, 반드시 불교적 성물(聖物)만이 만다라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평온과 깨달음을 이루는 구조라면 그 안에 기독교적 성상이든 사계절의 풍경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서상환 화백은 만다라의 외형적 상(像)을 초월하여 '만다라'의 본질 속에서 삼라만상의 사물들과 일들을 그려넣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서상환 화백은 '사랑'이라는 화두 아래 불교와 기독교 심지어는 영적 신비주의사상과 탄트리즘까지 만다라적 도상으로 연금술적으로 구현해냄으로써 정신적 일원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 뭔가 있어 보이는구나'의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

오: 끝으로 현대 미술을 보다 독자들이 쉽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형이상학적 그림에 대해 이해 방법의 지름길이 되겠습니다.

변 : 사실은 현대의 추상 또는 비구상의 훌륭한 작품들은 어떤 의미를 숨겨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일 뿐입니다. 뛰어난 작가들일수록 그들은 감상자들이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도록 자신의 작품에 그 어떤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합니다. 그리고 감상자인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작품들 앞에서 '아, 뭔가 있어보이구나!'하는 느낌만 받으면 일차적으로 작품과 교감한 것입니다.

나아가서 좀더 알고자 한다면, 그때는 작가의 정신세계와 사상, 기법 등에 관한 정보를 습득해야 합니다. 그러한 정보들이 사실은 작품의 알맹이로서 작가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쉬운 예를 들어서, 다 같은 하나의 빨간 줄이지만 피카소가 그어놓은 것은 예술작품이 되지만 아이가 그어놓은 것은 그만한 작품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이의 빨간 줄에는 그만큼의 정신세계와 사상, 실험정신 등이 들어가 있지 않은 때문입니다.

 사랑의 화가, 서상환 화백
사랑의 화가, 서상환 화백 ⓒ 송유미

 서상환의 <간구>
서상환의 <간구> ⓒ 송유미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서상환 화백의 경우 그의 신어(神語) 작품들이 보다 의미로운 것은, 그 독창성도 독창성이지만 신성(神性, 누미노제)과 함께 구현된 작품의 아우라에 작가의 그와 같은 구원 의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독창적 실험성과 아우라를 가진 작품은 세계 미술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작업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추상미술에서 뛰어난 작품일수록 특정한 의미는 숨겨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서상환 화백의 신어(방언화) 작품들 역시 구체적인 하나의 어떤 의미를 내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품이 던져주는 느낌(아우라)를 먼저 받고, 그 이후는 작가의 기법이나 정신세계를 생각하며 작품과 대화를 해나가야 합니다.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부러진 꽃나무 아래
뱀은 꼬리를 숨긴다
나무의 발가락은 투명하다
달빛 아래
살 오른 물방울로
구름은 가득하다
나비의 눈 속에
녹아 있는 달
꽃나무 위에서 나비는
젖은 몸을 말린다
<금빛 울타리의 생각에 관하여> 중-변의수


 서상환의 <만다라>
서상환의 <만다라> ⓒ 송유미

그렇다. 서상환의 작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의 세계로 이어지고 모여든다. 이와 같은 연금술적 도상 작업들의 생성은 참된 지혜와 명상의 발현들이라 하겠다. 서상환의 작품들을 대하는 순간 우리가 그 어떤 성스러운 현장 혹은 성물(聖物)을 대하는 듯 신비롭게 여기고 살피게 되는 것은 그러한 연금술적 일자로서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정신세계를 서상환 화백은 자의적 상징의 비구상적 기법으로 표현함으로써 강한 은유의 신비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서상환의 작품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미술작품은 그 어떤 철학이나 사상을 그려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의 몸으로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상환 화백의 작품은 그 어떤 작가의 작품보다도 강한 호기심과 아우라를 일으킨다. 이것이 서상환 화가의 미술작품이 지니는 깊은 맛이자 미술의 미학이라 하겠다.      
       
서 상 환 화 백에 대하여
1966-74 경성대학교 신학대학 신학과와 동대학원신학과 졸업(전신), <루오 미술에 나타난 그리스도상 연구>, 1976-78 미국 내셔널크리스천대학교 대학원 신학석사, <중세 미술을 통한 그리스도상 연구>, 1995년 미국 루이지에나 침례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 <단색 폭만화 작업을 통한 그리스도상 연구>, <1999년 미국 훼이스크리스천대학교 대학원 신한박사(교회예술), <야훼는 나의 목자(150편 전 장을 목판화 및 해석)

   
지금,
하늘에 별 하나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네

짙은 어두움은
별을 위해 더욱
가라앉고 있네

별이 저렇게 찬란한 것은
짙은 하늘의 어두움 때문인 것을
별은 알기나 할까
<별 하나>-서상환


#변의수#서상환#현대 미술#연금술#초현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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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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