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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홀> 겉표지
<울프 홀>겉표지 ⓒ 사피엔스21
중세 유럽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헨리 8세, 앤 불린, 토머스 크롬웰 등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아니 굳이 역사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이들의 이름을 접해보았을 가능성이 많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마지막 희곡으로 <헨리 8세>를 썼고, 이들의 이야기는 <천일의 앤>, <천일의 스캔들> 등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헨리 8세 시대의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도 여러 편이다.

그만큼 헨리 8세 시대의 주요인물들이 가지고 있던 사연과 운명이 드라마틱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헨리 8세는 장미전쟁을 끝내고 잉글랜드의 권력을 잡은 튜더 왕조의 두번째 왕이다. 그는 평생 여섯 명의 왕비를 두었던,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 왕이기도 하다.

토머스 크롬웰은 헨리 8세의 오른팔이었던 인물이고 앤 불린은 헨리 8세의 두번째 왕비였다. 앤 불린이 왕비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이후 앤의 몰락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바로 <천일의 앤>, <천일의 스캔들>이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상류사회로 나아가는 크롬웰

힐러리 맨틀도 자신의 2009년 작품 <울프 홀>에서 헨리 8세와 그 주변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울프 홀>의 주인공은 당시 2인자였던 토머스 크롬웰이다. 시골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크롬웰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무수한 폭행을 당하며 성장했다. 크롬웰은 자신이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 자신의 생일이 며칠인지도 모른다.

크롬웰은 이런 가정폭력을 피해서 10대 중반에 집을 떠나 유럽을 떠돈다. 프랑스 군대에 입대해서 전투를 치르고 이탈리아에 머물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넘게 외국생활을 하다가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와서 변호사가 된다. 작품의 도입부인 1527년에, 크롬웰은 요크의 대주교이면서 추기경인 토머스 울지의 실무 변호사이자 최측근으로 등장한다. 크롬웰의 나이는 마흔을 약간 넘긴 상태다.

이때 국왕 헨리 8세의 왕비는 캐서린이었다. 원래 캐서린은 헨리 8세의 형인 아서의 부인이었다. 그런데 아서가 젊은 나이에 죽자 헨리 8세가 국왕이 되면서 형수인 캐서린과 결혼한 것이다. '남자는 죽은 형의 아내와 결혼해야 한다'라는 구약성서 신명기의 구절을 근거로 한 결혼이었다.

헨리 8세와 캐서린의 애정문제는 둘째치고 둘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다. 캐서린의 나이 때문에 더이상의 임신도 힘들다. 국왕은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을 원하고 그러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캐서린과 이혼하고 다른 젊은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 마침 왕의 눈에 띄었던 앤 불린이 강력한 후보자다.

문제는 로마교황청에서 이 부부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당시 국제정세의 미묘함 때문에 이혼이 쉽지 않다. 토머스 울지 추기경과 토머스 크롬웰도 캐서린을 몰아내고 국왕을 재혼시키려고 한다. 헨리 8세도 자신과 캐서린의 결혼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싶어한다.

결국 이 혼인의 유효성을 조사하기 위해서 교황 특사의 권한으로 사문위원회가 열린다. 국왕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크롬웰이 열심히 노력한다면, 그래서 국왕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면 크롬웰의 앞길도 창창하게 열리는 것이다. 그렇게 크롬웰은 조금씩 권력의 정점을 향해서 나아간다.

저자가 묘사하는 16세기의 잉글랜드

30년에 걸친 장미전쟁이 끝났지만, 당시 잉글랜드는 서민들에게 그리 살기좋은 곳은 아니었다. 여름이면 전염병이 돌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아침밥 잘 먹고 나가서 점심때 보니 죽어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전염병을 불러일으키는 환경은 어린아이들에게 더욱 가혹했다. 질병과 굶주림과 전쟁, 전염병의 온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기 때문에 아이들은 죽고, 지난해와 올해에 일어난 것 같은 흉작 때문에도 죽는다. 크롬웰의 자식들도 전염병으로 죽는다. 크롬웰은 자신의 어린시절을 생각하며 자신은 다정한 아버지가 되려고 했지만 그런 노력도 소용없게 된 것이다.

이런 상실감 때문에 크롬웰은 더욱 권력의 상층부를 향해서 나아갔는지 모른다. 헨리 8세는 결국 로마 교황청에 등을 돌리고 자신이 직접 영국교회의 수장이 된다. 영국 성공회가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작가는 <울프 홀>을 통해서 격동기 잉글랜드의 왕실과 상류사회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헨리 8세의 측근이었던 사람들의 말년은 대부분 불행했다. 토머스 크롬웰도 마찬가지였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의 곁에 머물면서 그 권력의 일부라도 행사하려면 많은 위험을 담보로 해야한다.

덧붙이는 글 | <울프 홀> 1, 2. 힐러리 맨틀 지음 / 하윤숙 옮김. 사피엔스21 펴냄.



#울프 홀#헨리 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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