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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는 오늘(2월 22일)로 창간 11돌을 맞았습니다. 그간 오마이뉴스와 함께 시민참여저널리즘을 일궈왔던 독자, 시민기자,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11살 생일 날, 시민기자들의 소회를 모아 기사로 내보냅니다. [편집자말]
1990년
문학을 해보고 싶었다. 참으로 무모했지만 내가 대학을 가게 된 까닭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문학을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막연한 착각(?)에 대학 학보사 문턱을 두드렸다. 선배들과 세상에 수도 없이 깨져가며 밤마다 기사를 쓰고 또 고쳤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니 문학은 오간 데 없고 F학점만 수십 개 남았다. 하지만 저널리즘이 '너절리즘' 수준이 되어서는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겠다는 뼈저린 교훈 한 가지는 얻었다.  

1996년
언론인이 되고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어느 진보 월간지 시험을 치렀다. 경쟁률은 1백 대 1에 육박했다. 기자로서 정론을 펼칠 열정과 능력이 넘친다고 '착각하고 있던' 나는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서류 전형을 겨우 통과한 나는 영어 필기시험이 있다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대책이 없었다.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본격적으로 언론사 시험에 도전하기엔 난 이미 '늙은' 복학생이었다. 게다가 5학년에 계절학기를 꽉 채워도 졸업이 불투명한 상황이었고 돈도 한 푼 없었다. 이른바 '언론고시'에 매달릴 능력도, 여유도 없었으며 스펙도 부족했다. 언론인의 꿈을 과감히 접기로 한 나는 몇 년 후 공무원이 되는 길을 택했다.

2004년
공무원이 된 내게 아주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내 일터(법원)에도 노동조합이 생긴 것이다. 정부와 국회에 이어 법원에까지 공무원노조가 결성된 사실을 사회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만들어 기사를 부탁하려다가 문득 <오마이뉴스>를 떠올렸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소식을 내가 직접 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자 거의 본능적으로 기사를 써서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다. 여지껏 독자로 머물러 있던 내가 시민기자가 된 순간이자 나에게 또다른 인생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2011년
이번주(2월 22일) 나는 <오마이뉴스> 명예의 숲 '으뜸상(톱기사 100개 이상)'을 받는다. 이로써 <오마이뉴스>에서 받을 수 있는 상은 명예의 숲 '오름상(잉걸기사 1000개 이상)'을 빼고 모두 받게 된 셈이다. 2005년 6월 '이달의 새뉴스게릴라'를 시작으로 그해 12월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뽑혔다. 2007년 '2월 22일상', 2009년 5월 특별상을 거쳐 작년 2월 창간 10주년에는 '올해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되기도 했다.

8년째 기사를 쓰면서 수많은 독자와 취재원을 만났다. 시민기자에겐 입사시험에서 처럼 영어성적과 학벌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능력과 열정이 기자의 자질을 검증하고 있었다. 기자라는 말은 더 이상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법률 리포터" 과분한 칭찬 받기도

 자신들이 직접 취재를 하지 않고 편하게 나를 통해 정보를 얻으려는 상당수 직업기자들의 속성을 알기에 그들의 요청에는 거의 응하지 않는 편이다.
자신들이 직접 취재를 하지 않고 편하게 나를 통해 정보를 얻으려는 상당수 직업기자들의 속성을 알기에 그들의 요청에는 거의 응하지 않는 편이다. ⓒ 김용국

"이제 스타 기자가 되셨잖아요."

편집부 기자가 원고를 부탁하면서 내게 한 말이다. 이 말에 가슴 설레거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만큼 순진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7년이라는 시간동안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면서 기사수가 늘어날수록 주위의 반응이 달라져 온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내가 연재기사(아는만큼 보이는 법)를 쓰기 시작한 2009년 이후 내 메일과 쪽지에는 격려와 감사, 비판과 항의가 끊이지 않는다. 법률상담을 원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넘쳐난다.

"우리 집 개가 옆집 아이를 물었는데 손해배상을 얼마나 해주어야 하나요?"
"이혼한 전 남편이 아들을 입양해 버렸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술값을 못받고 있는데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솔직히 난감한 질문들도 많다. 하지만 내가 기자로서 목표로 두었던 법의 대중화를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여기니 한편으론 뿌듯했다. 나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거나 애독자(특히 10만인 클럽 회원!)라면, 그분들에게 답변을 해주거나 그분들의 고민을 기사에 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물론 직업의 특성상 다른 사람의 사건에 개입할 수 없어서 개인 사생활에 관한 답변까지 줄 수는 없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업무를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알은척을 했다. 인사를 하긴 했지만 초면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김용국 기자 되시죠? 요즘 연재기사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써주시길 부탁드릴게요."

갑자기 뜨끔해졌다.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을까. 속으로 '이젠 사기치기도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낯 부끄러워지는 일이 또 한 번 있었는데 어느 변호사가 트위터로 보내온 쪽지 때문이다. 그는 "아는만큼 보이는 법. 정말 읽기 쉽습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리걸(법률)리포터입니다. 기자님한테 많이 배웁니다"라고 과분한 칭찬을 해주었다.

"직업 기자를 물먹게 했다"... 황당한 '기사 도용' 사건들

ⓒ 유성호

사회적으로 반향이 있는 기사를 쓰고 난 다음에는 언론사 종사자들도 연락을 해온다. 인터뷰 요청, 취재 요청이나 자료 제공이 목적이다. 자신들이 직접 취재를 하지 않고 편하게 나를 통해 정보를 얻으려는 상당수 직업기자들의 속성을 알기에 그들의 요청에는 거의 응하지 않는 편이다. 나도 엄연한 기자인데, 기자가 기자를 상대로 취재로 한다는 건 너무 성의없는 일 아닌가. 

그래선지 내 기사가 나도 모르게 도용되기도 한다. 가끔씩 다른 사이트에서 내 기사와 똑같은 표현을 보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이젠 그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표절에 가까운 사건도 종종 겪는다. 특히 어느 뉴스통신사 기자는 내 기사를 거의 그대로(심지어는 인터뷰 내용까지) 베껴놓았다. (관련 기사 : 일부 직업기자님들, 이건 '비양심' 아닌가요?)

이 문제가 커지자 그 기자는 내게 전화를 걸어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도, 나더러 "직업 기자를 물먹게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항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 공중파 방송에서 내 기사의 구성을 거의 바꾸지 않고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방송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후 방송사 작가는 내가 메일로 항의의 뜻을 밝히자 "고쳐야 할 부분이므로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관련 글)

시민기자라고 무시하는 직업기자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사건들이었지만, 달리 생각하면 시민기자의 자존심을 보여준 사건들이기도 하다.

그렇다. 나는 직업기자가 아니다. 직업을 따로 갖고 있으면서 글을 쓰는 시민기자에 불과하다. 낮 시간을 본업에 바치면 내게 남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더라도 직업기자들보다 더 열심히, 깊이있게 쓰려는 자세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직업 기자들의 한계는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데 있다. 많은 것을 두루 섭렵하고 있지만 한 분야를 깊이있게 알지 못한다는 약점 말이다. 최근 언론사들이 '전문기자'라는 직책을 만든 것도 그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이유에서이리라.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오마이뉴스>에는 이미 수없이 많은 전문기자가 있다. 정치인, 공무원, 교사, 주부, 학생할 것 없이 다양한 직업의 기자들이 교육, 영화, 책동네, 문화 분야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내 경우에도 법률 기사만큼은 최선을 다해 쓰려고 노력해왔다. 약 2년간 써온 60여 개의 연재기사 누적 조회수가 400만을 넘어섰다. 게다가 연재를 계기로 낸 책이 6쇄까지 나오게 되었고, 곧 2번째 책도 나오게 된다. <오마이뉴스>가 내게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공무원이 이런 기사 써도 되냐"... 국회 법사위에서 내 기사 거론된 까닭

방송인터뷰 한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 메일.
방송인터뷰한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 메일. ⓒ 김용국

하지만 역경도 없지는 않았다. 두 가지만 소개한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가슴 떨리는 사건이 있었다. 어느 해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내 기사(어떤 기사인지는 묻지 말아주시길)를 놓고 "공무원이 기자로 활동하면서 이런 기사를 써도 되느냐"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졌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내게 닥칠 후폭풍이 거세리라 각오했으나 다행히 신변에 큰 이상은 없었다.

오래전 경험을 써내려간 '술값 내주던 판사의 형님, 법정에 나타나다' 라는 기사는 법원 내부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판사들을 욕 먹일 일 있느냐는 것이었다. 윗분으로부터는 기사 작성 경위를 해명하라는 추궁을 듣기도 했으나 단호하게 거절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기사는 공모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되었으니 안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밖에서는 반향이 큰 법인가 보다.

나는 이제 '즐기는 시민기자'가 되고 싶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에게 못 이기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에게 못 이긴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즐기지 못한다(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며칠째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또한 조회수가 늘어가고 내 글을 보는 사람이 늘어갈수록 부담이 커지는 게 사실이다.

나도 이젠 즐기면서 쓰고 싶다. 어깨에 힘을 빼고 독자들과 편하게 얘기한다는 생각으로 즐기고 싶다. 나는 원고마감에 쫓길 일도 없고 상사가 원하는 기사를 짜낼 이유도 없는 시민기자니까 말이다.

끝으로 <오마이뉴스>에도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시민기자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달라. 시민기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이 있어야 좋은 기자, 좋은 기사가 늘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었으면 한다.   

오늘 수 만명의 시민기자들 중 한 명으로서 <오마이뉴스> 11년을 '자축'한다. 모든 시민은 기자이고, 시민기자야말로 <오마이뉴스>의 참된 주인이기 때문이다.   


#창간기념일#11주년#뉴스게릴라#시민기자#아는만큼보이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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