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말, 김인규씨가 KBS 사장으로 취임한 뒤 지금까지 징계를 당했거나 징계에 회부된 사람은 모두 69명에 이른다. 이 숫자에는 KBS 기자협회장을 지낸 김현석 기자나 김영한·국은주·박종성·이용우 라디오 피디, 신기섭 기획행정 직원의 경우처럼 지방 발령의 '유배형'을 받은 사람은 제외된 것이다. '유배형'까지 합치면 숫자가 훨씬 불어날 터다. 여러 형태의 징계가 남용되다 보니, KBS 안에서는 '징계 구제역' '징계 플루'라는 말까지 나도는 모양이다.
징계 사유도 다양하다. 그 다양한 징계 사유와 징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모아 보면 '김인규 체제 이후의 KBS 모습'이 대략 보인다. 그리고 징계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 절규는 KBS의 희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지난 '증언'에서 이야기한 김용진 기자와 황보영근씨 징계에 더하여 다름과 같은 사례들이 있었다.
[사례 1] 김인규 사장의 5공 정권 찬양 과거 폭로
KBS 기자협회는 김인규 사장 취임 직후, 과거 김인규 사장이 정치부 기자 시절, 5공 정권을 어떻게 찬양했는지 동영상과 함께 이를 폭로했다(관련기사:
궁극의 김인규 리포트, 왜 지금은 볼 수 없나). KBS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KBS 기자협회장 김진우 기자에게 '성실 의무 위반' '콘텐츠 유출' 등의 이유로 감봉 2개월(후에 재심에서 감봉 1개월)의 중징계를 했다. 이런 조치를 비판하는 KBS 새 노조의 성명서에는 이 사건의 의미가 잘 담겨있다.
'특보 사장 과거', 징계로 지워지지 않는다사측이 지난 8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김진우 KBS 기자협회장에게 감봉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사측이 내세운 징계 사유는 '성실 의무 위반'과 '콘텐츠 유출' 등이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번 징계의 본질은 '낙하산 특보사장 김인규'의 낯 뜨거운 과거행적을 세상에 알린 것에 대한 보복징계다. 과연 낙하산 특보사장다운 후안무치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천기'라도 누설했단 말인가? 지난해 MB 특보 출신 김인규씨가 KBS의 낙하산 사장으로 낙점된 뒤 기자협회가 80년대 군사정권 시절 '김인규 기자'가 불렀던 '전두환·노태우 찬양가'를 세상에 알린 것은 KBS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의무였다. … '낙하산 특보 사장'도 모자라 땡전뉴스 시절의 '나팔수 기자'라니, 염치와 체면이 있다면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특보 사장의 과거를 공개했다는 이유로 징계의 칼날을 휘둘러 진실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김진우 기자협회장이 징계를 받음으로써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KBS에서는 3대에 걸친 기자협회장(김현석, 민필규, 김진우)과 2대에 걸친 PD협회장(양승동, 김덕재)이 모두 관제사장과 특보사장으로부터 징계당하는 기록이 세워졌다. … 2010년 2월 1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사례 2] 제작 거부와 본부장 불신임 투표 주도한 피디협회장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부당 징계에 항의하면서 펼쳤던 2009년 제작 거부와 본부장 불신임 투표를 이유로 감봉 2개월의 징계를 지난해 2월 받았다(1차 징계에서는 감봉 3개월).
KBS 사측은 제작 거부와 본부장 불신임 투표를 주도하여 회사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품위 유지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징계 이유를 밝혔다. 김덕재 피디협회장 징계가 결정되자 전직 KBS 피디협회장 7명(정초영, 이규환, 장해랑, 이강택, 이도경, 양승동)이 이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누가 누구를 징계하는가 - 김덕재 PD협회장 징계에 부쳐… 김덕재 PD협회장은 기자협회와 함께 작년(2009) 1월 양승동 PD와 김현석·성재호 기자에 대한 회사의 '파면' 징계 처분에 대해 그 부당성을 규탄하며 제작을 거부한 PD·기자들을 대표했다. 정권이 불편해 하는 시사프로그램들을 폐지하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방송 등에서 무소신과 눈치 보기로 일관,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은 무책임한 본부장들을 신임 평가함으로써 그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다.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KBS의 신뢰와 명예를 지키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행위였다고 확신한다. 김덕재 협회장은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지켜내려는 일선 프로듀서들의 몸부림을 대표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김덕재 PD협회장에 대한 징계를 프로듀서 전체에 대한 징계로 받아들인다.… 우리 PD들은 앞으로 쏟아질 숱한 징계들을 명예로운 '훈장'으로 삼을 것이다. 갈 길이 멀다. 오직 정권재창출만을 염두에 둔 정권이 저지를 패악들, 그에 빌붙어 어렵게 쌓아온 자랑스런 방송민주화의 역사를 20년 전으로 되돌려버린 소위 선배(?)들이 망가뜨릴 KBS의 내일을 생각하면 암담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2010년 2월 11일전 KBS PD협회장(7명)[사례 3] '추적 60분 불방' 책임 물었던 피디와 현수막
<추적 60분> '4대강' 편이 제 때 방영되지 못했다. 이에 제작진들은 '추적 60분 불방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글이 담긴 펼침막을 시사제작국 사무실 벽에 걸었다. KBS 사측은 이 펼침막을 떼라고 요구했고, 제작진이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사측은 '성실 근무 수행' 등 취업규칙 및 인사규정을 위반했다고 강희중 <추적 60분> CP를 비롯하여 김범수·임종윤 피디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하여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징계 대상이 된 김범수 피디는 '추적 60분'의 막내 피디로, '4대강' 편이 불방되자 이에 항의하면서 '김인규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이 글은 사측에 의해 게시판에서 삭제되었는데, 인터넷 세상에서는 삭제 소식이 더 불을 붙였는지, 순식간에 널리 퍼졌다.
김인규 선배님, 안녕하십니까?<추적60분>에 있는 34기 김범수 피디입니다.… 어제 <추적60분> '4대강' 편은 결국 방송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전혀 예고되지 않은 자연 다큐멘터리가 나갔습니다. 입사 이래 저는 KBS에서 반상식적인 일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불방은 일련의 반상식적인 일들 중에서도 가장 폭력적인 어떤 것이었습니다.… 4대강 예산안과 친수법이 날치기로 통과되던 바로 그날, 선배님은 <추적60분> '4대강' 편을 불방시켰습니다.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변명에 불과합니다.… 선배님이 걱정했던 것은 아마도 여당에 대한 비판여론이었을 겁니다.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친수법을, 그것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는 사실. 그 역풍을 걱정했을 겁니다. <추적60분>의 4대강 방송이 혹시 여당과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 여론에 기름을 끼얹을까 그게 걱정되었을 겁니다.그런데… 선배님은 공영방송 사장입니다. 누구의 특보도 아니고, 어느 당의 당원도 아닙니다. 비판여론에 대한 걱정은 여당의 몫입니다. 공영방송의 사장이 고민할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선배님은 불방 결정을 내렸습니다. 너무나 정치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덕분에 제작진과 시청자의 약속은 미처 예고할 틈도 없이 깨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추적60분> 제작진은 영문도 모른 채 여당 날치기 통과의 공범이 되었습니다. 참담합니다.…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김인규 선배님, 그만 KBS에서 나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제 생각에 선배님은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습니다.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습니다. 그만 물러나 주십시오.…이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린 김범수 피디를 비롯하여 <추적 60분> 소속 3명의 피디를 KBS 사측이 인사위원회에 회부하자 입사 2∼9년 차인 29∼35기 피디 138명이 이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입사 2∼9년 차면 현장에서 가장 열심히 뛰면서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제작 인력의 핵심들이다. 이들이 발표한 성명서 끝부분에 나오는 "길을 걷다가,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뉴스를 보다가, 돌연 욕이 나오고 눈물이 흐를 정도로 우리는 병들었고 아프다"는 구절은 처연하기까지 했다.
부탁한다. 경고한다. 당장 멈추라. - 추적60분 사태를 보는 29기 이하 PD 성명서
치졸하다. 참으로 치졸하다. 이번엔 현수막이 이유다. 대상은 34기와 35기다. 뭐라 쓰였었는지 되새겨본다. '추적60분 불방. 책임자를 문책하라.' 15자다. 당신들 눈에는 이 15자에 서린 분노가 보였을 리가 없다. 한자 한자에 감춘 후배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렸을 리가 없다.…수시로 불거지는 제작 자율성 침해에 분노도 지쳐간다. 제작과 보도를 막론하고 쑥대밭이라는 표현이 미안할 정도다. 현장에 있어야 할 PD·기자들에게 어느덧 성명서 쓰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역으로 요청한다. 이제 대화합을 강조하지 말라. 징계의 칼춤은 계속 추시라. 조직내부의 깊은 상처와 불신의 간극은 더욱 키우시라. 기왕에 높이 든 승자의 축배를 맘껏 즐기시라. 그래야 우리도 털끝같은 기대를 저버릴 수 있다. 그 축배가 독배의 다른 말임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 볼 수 있다.마지막으로 특보께 권한다. 착각하지 마시라. 특보께선 한국방송공사라는 공공기업체의 수장으로 오는데는 성공하셨다. 하지만 공영방송 KBS의 수장으로 조직원들의 인정을 받고 있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시라.… 그저 한줌의 명예라도 소중히 하신다면 언론하는 후배들에게 권한을 돌려주고 사퇴하시라. 누누이 들었을 말이지만 진정으로 사퇴하시라. 한 시인이 말한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미련한 우리는 아프다. 길을 걷다가.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뉴스를 보다가. 돌연 욕이 나오고 눈물이 흐를 정도로 우리는 병들었고 아프다. 추적 60분 제작진 몇몇의 인사위원회 회부 소식에 달린 한 선배의 절절한 댓글에 다시 가슴이 먹먹하다. '정말로 정말로 후배들에게 이러는 것 아닙니다.' 부탁한다. 경고한다. 당장 멈추라.2011년을 여는 1월에 (이하 138명 명단)[사례 4] 댓글과 사내 게시판 글을 쓴 사람들
지난해 8월,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는 서울청장 시절 내부 강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하기 전날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천안함 사건 유족들의 슬픔을 동물에 견줘 비하한 사실이 알려져 거센 사퇴압력을 받았다. KBS <추적60분>은 이런 발언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문제의 동영상을 입수하고도 자체적으로 이를 프로그램화하지 못했다.
그러자 <추적60분> 제작 PD·기자 일동은 성명을 내고 "특종보도를 준비 중.… 데스크에 의해 아이템이 없어지는 KBS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면서 "이번 사태를 통해 데스크가 제작진의 자율성을 심대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편향된 논리로 일부 특정 정파에 유리한 데스킹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성명서가 사내 게시판에 나오자, 정찬필 피디는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기자·피디) 협업 한답시고 설레발 치고, 문제의 이화섭 씨(당시 시사제작국장) 국장에 앉힐 때부터 김 특보의 의도는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것 아니냐.정찬필 피디는 1차 인사위원회에서 '1개월 감봉'이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2심에서 '견책'으로 감형되었다. 이 정도 댓글로 징계를 당한다면, 댓글을 달거나 사내 게시판에 비판적인 글을 올리는 사람은 누구나 징계 대상이 될 수 있을 터였다.
이에 앞서 강명욱 피디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KBS에서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 초청 토론'을 개최하려 했으나 '오세훈 특혜 시비'로 토론 자체가 무산되자 이를 비판하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강명욱 피디 역시 '견책'의 징계를 받았다. 징계 사유는 '직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직장 질서의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이었다.
이들뿐 아니라 앞선 '증언'에서 밝힌 대로 KBS 새 노조 위원장인 엄경철 기자를 포함한 60명의 새 노조원들에 대해 인사위원회에서 징계 절차를 진행 중이고, 김용진 기자는 'KBS의 일방적 G20 홍보'를 비판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정직 4개월의 중징계(1차 인사위원회)를 받았다. 그리고 엔지니어 황보영근씨는 지난해 지자체 선거 때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하여 "1번 전쟁, 2번 평화" 등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고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김인규 체제의 KBS 모습이다.
KBS 중징계, 법원에서 무효 판정
황보영근씨는 지난해의 정직 6개월 외에 2009년에도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2008년 8월, 다음 '아고라'에 KBS 노조를 비판하는 글에다 '만약 정 사장 보내고 낙하산 못 막는다면 수신료 거부운동에 광고 불매 운동도 추가하십시요"라는 댓글을 올렸다. KBS는 이 댓글과 그밖에 그가 퍼다 날린 글 등을 이유로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황보영근씨는 이 정직처분이 부당하다며 2009년 5월부터 '징계무효 확인소송'을 시작했고, 법원은 지난 11일 "KBS가 징계를 남용했다"며 "징계 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이와 함께 정직 처분으로 미지급된 임금을 모두 지급하고, 재판 비용도 KBS가 부담하라는 판결까지 함께 내렸다. 황보영근씨의 완승이었다. 이 판결은 KBS의 징계 남발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법원의 판결로 보여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