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가 2월 22일로 창간 11돌을 맞았습니다. 그간 오마이뉴스와 함께 시민참여저널리즘을 일궈왔던 독자, 시민기자,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11살을 맞아 시민기자들의 소회를 모아 기사로 내보냅니다. [편집자말] |
꾸준하고 성실하게 관리하던 블로그도 팽개쳐 두고, 신년 들어 잠깐 왕성했던 기사 쓰기도 그만 두고, 게다가 바깥출입마저 중단한 채 그야말로 칩거에 들어가 있었다. 페이스북은 탈퇴했고, 트위터는 열어보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럭셔리한 최첨단 스마트폰은 전화를 받고 거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인터넷은 메일을 열람하고 답장을 쓰는 일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 일상에서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는 하루에 한두 번 반짝 빛을 발할 뿐 대부분 검게 닫혀 있다.
이 모든 일은 한꺼번에 이루어지진 않았고, 하나 씩 둘 씩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이유라고 한다면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순간순간 새로운 문장이 정신없이 올라오고 사라지는 SNS의 피로감에 더불어 블로그와 기사작성 등 항상 작고 큰 모니터를 보고 자판을 두드려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지 그게 무척 가볍고 피곤하게 느껴졌고 공허한 일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회피하고 싶었고, 종이에 박힌 활자로 대신하고 싶었다. 그게 이유였다. 나는 내 안에서 스스로 세상과의 담을 쌓고 있었다.
그러던 며칠 전이었다. 커다란 핸드폰 액정화면에 '02-733-5505'라는 발신번호가 찍힌 전화가 걸려 왔다. 굳이 저장을 할 필요도 없는 무척 익숙한 숫자다. 통화버튼을 옆으로 미는 순간 틀림없이 "안녕하세요? 김지영 기자님. 오마이뉴스 편집부 000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역시나.
습관은 무섭다. 당분간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단문도, 블로그나 기사쓰기의 장문도 쓰거나 읽거나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늘 그렇듯이 습관대로 편집부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주소록에 굳이 저장할 필요도 없이 익숙해져 버린 이 번호의 주인공 <오마이뉴스>와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존재감 없던 나, 하루아침에 글쟁이가 되다때는 2005년 3월 2일. 지극히 존재감 없는 시민인 나는, 롯데와 기아가 맞붙는 잠실야구장 관중석으로 돌을 던지면 '아야'하고 소리치는 사람 중에 한 명인 나는, 단지 일천 만 서울 시민 중 가장 많은 분포도를 자랑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나는, 몇 년 동안 '눈팅'만 해오던 <오마이뉴스>에 회원 가입을 하고 기념 삼아 순전히 '이게 어떻게 기사가 된다는 거지?'하는 호기심으로 기사를 하나 작성해서 편집부에 넘겼다.
당시 아들은 치맛바람 참말로 거세게 부는 강남지역 초등학교 입학생이었고, 나는 그 바람 속에 둥둥 떠다니는 촌지봉투를 몹시 두려워했던 학부모였다. 해서 편집부에서 뽑은 제목은 '초보 학부모 잠 못들게 하는 촌지괴담'이었는데 기사는 당연히 제목에 무척 걸맞은 내용이었다(관련기사 :
초보 학부모 잠 못들게 하는 촌지괴담).
다음날 아침. 회사에 출근해서 <오마이뉴스>를 열어본 나는 깜짝 놀람과 동시에 어떤 표현도 감당키 어려운 흥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메인 톱. 글쎄 내가 전 날에야 겨우 회원가입을 하고 기념 삼아 작성해서 넘긴 첫 번째 기사가 버젓이 내 이름을 걸고 메인 톱에 올라있는 것이다.
분명히 기억하는데 모니터를 바라보던 내 얼굴이 감흥에 젖어 붉게 물들었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심장이 벌떡벌떡하고 손마저 약간 떨려오는 느낌이었다. 그 때 깨달았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 욕망의 정체를.
아무 존재감 없던 내 이름 석 자를 당시 종이신문에 비견될 만큼 주가를 올리던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메인 화면 머리기사서 발견한 순간의 그 흥분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 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 전까지 글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어디 독후감 대회라도 한 번 나간 적 없고, 평소에도 글을 쓰고 싶다거나 써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도 안 했으며, 글을 써서 단 몇 푼이라도 벌어들이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한, 정말이지 글쓰기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정말 우연하게 쓴 글 하나가 내 인생에 벼락 같이 날아 들어와 나를 '글쟁이'라 할 수 있는 조금은 다른 존재로 바꾸는 계기가 돼 버린 것이다.
그 날 나는 회사 업무는 뒷전인 채 화면에 떠 있는 내 기사를 몇 십 번씩 클릭해 들어가며 읽고 또 읽었다. 그 기사의 최종 조회수는 1만8153, 댓글은 275. 분 단위로 올라가는 조회 수와 와글와글한 댓글의 스크롤 압박을 무척 즐겼더랬다.
내가 쓴 글이 기사가 되고 기사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재미는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색다른 맛이었다. 게다가 내가 쓴 글이 돈으로 돌아올 때의 그 묘한 감흥이란. '그래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내게도 글 쓰는 재주가 있었구나'하는,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그 감동의 미학을 보여준 공은 순전히 <오마이뉴스>에 돌려야 한다.
<오마이뉴스>가 아니면 대체 누가 나에게 이런 감동을 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오마이뉴스>, 세상의 중심으로 나를 외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어느덧 만으로 6년이다. 그동안 <오마이뉴스>가 이런저런 부침을 겪고 이사를 하고 새로운 도약을 하는 동안 나 역시 서울을 떠나 경상도로 귀농을 한 후 다시 제주도 섬으로 흘러드는 변화를 겪었다. 그동안 나는 회사원이었고, 알량했지만 농부였고, 이제는 숙박업자다.
그러나 나는 아주 성실한 시민기자는 아니었다. 지난 6년의 기록이나 과정을 보건대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다. 지금까지 쓴 기사 수가 고작 59개. 일 년에 10개꼴이다. 통상 시민기자들의 평균적인 일 년 기사 수를 알 수는 없지만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성실한 시민기자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초라한 활동이다.
사실 <오마이뉴스>는 내 고단한 일상의 활력소일 뿐 내 일상의 전체는 아니다. 앞에 시민이라는 말이 붙긴 하지만 기자라는 직함도 소소하게 사는 이야기나 아니면 가끔 사회면 글을 쓰는 내게는 여전히 과분한 완장이다.
나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위해 각별하게 고민하거나 기삿거리를 찾지 않는다. 내가 쓰는 기사는 내 평범한 일상 속에 간혹 불거지는 글감이 있거나 혹은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 중에 시기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써봐야겠다 싶은 주제를 만났을 때 쓰는 글이다.
부족한 줄 알지만 그게 지금까지의 나고 앞으로의 나다. 그럼에도 여전히 (역할은 미미하지만) 오마이뉴스에 닿아 있는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섬 시골에 박혀 세상의 중심에서 비켜나 살고 있는 내게 유일하게 세상의 중심으로 직접 향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태생부터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그래서 나처럼 평범한 소시민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사건과 생각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이 독특한 언론사는 그래서 내게는 근친성이 있다.
잊혀질 만하면 가끔씩 그래도 당신이 쓰는 글은 '제법'이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발신전화번호, 02-733-5505 는 이런 나를 <오마이뉴스>와의 인연을 끝내 놓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발신전화번호다.
덕분에 나는 잊혀질 만하면 가끔씩 차곡차곡 쌓이는 원고료로 신발도 사고, 옷도 사고, 아내에게 뜻밖의 용돈도 덥석 안겨준다. 내겐 '작은 재주에 큰 기쁨'이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나는 <오마이뉴스>가 아주 오랫동안 언론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새천년 봄에 <오마이뉴스>의 탄생을 알리면서 표방한 진보적 가치 이전에 내게 무엇보다 근친성으로 다가온 시민기자를 중심으로 한 언론으로서 말이다.
창간 11주년. 한 발 늦었지만 함께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