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최고의 손맛을 자랑하는 열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성황을 이루는 낚시가 있다. 바로 외줄 열기낚시다. 그런데 올해는 좀 늦었다. 강풍을 동반한 높은 파도와 강추위 때문이다. 이로 인해 먼바다로 출항해야 할 낚시선들은 잦은 결항을 보였다. 신강수도호 선장인 김두성(52)씨는 금년 들어 겨우 다섯 번 출항했다.
열기낚시를 위해 찾아간 곳은 전남 여수 신월동 넘너리항이다. 새벽 3시 30분경 쿨러를 둘러멘 조사들이 낚시선에 승선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국에서 전화를 통해 미리 선약한 사람들이다. 신강수도호에는 최대 18명이 승선 가능하지만 23일에 이어 24일엔 9명이 모였다. 점점 날씨가 풀리자 선상낚시객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새벽 4시쯤 되자 출항신고를 마친 선장님은 뱃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출항이다. 우리를 실은 낚시선은 굉음을 내며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백도, 삼부도, 거문도권이다.
섬과 섬 사이를 빠져 나와 내만권을 벗어나자 보이는 것은 온통 까만 세상뿐이다. 거문도까지는 앞으로 약 3시간을 달려야 한다. 잠시 상념에 잠긴다.
우리네 인생이 행로난(行路難)이다벌써 2년이 지났다. 당시 <오마이뉴스>에 실린
열기를 낚아 올린 기사는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계속 소식을 들려 주고 싶었으나 항상 시간에 쫓기다 보니 다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 열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가지 않고는 열기를 만날 수 없듯이 노력하지 않고 우연히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도 행로난(行路難)이다.
중국 최대의 시인이자 진정한 방랑가였던 이백(이태백)은 <행로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앞부분 생략)閑來垂釣碧溪上 (한래수조벽계상) 아서라 한가로이 벽계수에 낚시하고 忽復乘舟夢日邊 (홀부승주몽일변)배를 타고 해를 도는 꿈도 한번 꾸어 볼까行路難行路難 (행로난 행로난)인생 길 인생 길 정말로 어려워라多岐路今安在 (다기로 금안재) 이 길 저 길 많은 길에 내 갈 길 어디인고 長風破浪會有時 (장풍파랑회유시) 거센 바람 물결 가를 그 때 얼싸 돌아오면直掛雲帆濟滄海 (직괘운범제창해) 구름 같은 돛 달고서 푸른 바다 헤쳐가리. 오늘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일행들이 어쩌면 모든 걸 잊고서 열기낚시에 출사표를 던진 건 아마도 이런 맘일 게다. 만선의 기쁨을 안기 위해 돛을 단 신강수도호는 점점 더 깊은 바다로 빨려 들어간다.
열기는 바닷속 암초지대에 서식하며 군집생활을 한다. 열기란 놈은 산호초가 있는 바닷속 대륙붕에서 떼로 뭉쳐 다니기 때문에 하나가 물면 줄줄이 사탕으로 물려온다. 식탐이 많기 때문이다.
열기낚시는 통영에서는 주로 12월부터 시작하지만 여수권은 1~4월이 절정을 이룬다. 또한 열기의 종류도 다양하다. 참볼락, 우럭으로 불리는 조피볼락 그리고 열기볼락으로 나뉜다. 이들은 40~200m의 깊은 수심에서 서식하는데 남해안은 주로 40~60m권에서 가장 많이 잡힌다.
"최고의 조항... 첫판에 쏨뱅이가 5짜네 5짜"어느덧 거문도권에 도착했다. 먼 바다에서 동이 트기 시작한다. 이어 낚시를 준비하란 선장님의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열기를 잡을 땐 외줄카드 채비에 전동릴을 쓴다. 바늘을 어피에 싼 10개짜리의 낚시가 묶인 것을 카드라고 부른다. 이것을 80호 추(봉돌)에 매달아 60m 아래의 바닥지면에 내리고는 약간 감아 올린다. 이후 선장님의 지시에 따라 고패질을 하면서 열기를 낚아 올린다.
열기를 잡는 미끼로는 크릴새우, 오징어살, 민물새우를 주로 이용한다. 이것을 10개가 묶인 카드낚시에 끼우면 맛있는 열기의 먹이감이 된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해 예감이 참 좋습니다. 어제(23일)는 날씨가 안 받쳐줘서 조사들이 별 재미를 못 봤는데…."
선장님의 말은 정확히 적중했다. 10년간 낚싯배를 운영해온 그의 직감은 틀림 없었다. 채비를 넣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질이 온 것이다. 뱃머리에 있는 아저씨가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이후 선미에서도 사정없이 낚싯대가 휘어졌다. 굶주린 열기들이 먹잇감을 만난 모양이다. 계속 함성이 터졌다.
"야 이거 뭐야, 거인 신발 짝이네. 허허 쏨뱅이가 5짜네 5짜."광주에서 오신 최 사장님은 대어를 낚아 올렸다. 그가 낚은 5짜(한 짜에 약 10cm) 크기의 쏨뱅이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졌다. 표정관리가 안 된 최사장님은 대어 탓에 흐뭇해 하시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날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최고의 조항을 기록했다. 50cm 쏨뱅이에 이어 많은 열기들이 나왔는데 최고 30cm인 열기가 낚였고 평균 사이즈는 20~25cm이었다.
"아버님이 낚아다 준 빨간 고기가 먹고 싶어요"이후 거문도권인 백도와 삼부도 등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선상낚시가 이어졌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잡은 고기를 썰었다. 회 맛은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선장님은 기분이 좋으셨는지 얼마 전 있었던 열기낚시에 얽힌 사연을 늘어 놓는다.
"천안에 거주하는 김 사장님이 있는데 그분은 이곳에 낚시를 자주 옵니다. 전부터 자주 낚시로 열기를 잡아다 가족과 함께 먹었답니다. 그런데 글쎄, 임신한 새 며느리가 입덧 때문에 입맛을 잃어서 밥을 잘 못 먹었다네, 그런데 이날 집에 와서는 열기반찬에 밥을 두 그릇씩이나 먹었답디다.이후 또 며느리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아버님이 낚아다 준 빨간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 또 왔어요'라고 해서 그 빨간 고기 열기를 다시 잡으러 왔다가 한 쿨러를 잡아간 적도 있어요, 며느리 입덧 때문에…."열기에 얽힌 선장님의 구수한 입담과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또다시 낚시에 몰두했다. 어느덧 낚시를 마칠 시간이 되었다. 이날 조과(낚시로 고기를 낚은 성과)를 보니 9분 모두의 쿨러들이 가득 찼다. 남는 고기 때문에 쿨러에 채워간 얼음을 모두 빼내자 뚜껑이 닫힌다. 선장님은 그동안 많이 잡지 않아서 당분간 많은 열기가 잡힐 거란다. 시간은 어느덧 4시가 되었다. 이제 철수할 때다.
오늘 열기낚시는 모처럼 만선이다. '바람 타고 물결 헤쳐갈 때 꼭 올 것이니 돛을 높이 달고 넓은 바다 건너라'고 말한 이태백은 이런 만선의 기쁨을 알고 있었을까?
때론 행로난(行路難)인 인생, 이럴 땐 모든 걸 잊고 열기 낚시에 한번 빠져보라. 맘을 비운만큼 가득참을 느낄지니… 난 오늘 열기낚시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뭐, 유행어가 되어버린 어느 광고의 한 구절처럼.
"열기낚시, 참 좋긴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