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창이는 여기 직원이다, 이놈아! 안으로 들어가게 해라! 15년 동안 지각 한 번 않고 피땀 흘려 세운 회사인데 왜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냐!"
굳게 닫친 문. 1년 6개월 전 공장 정문을 가로막았던 컨테이너 박스는 치워졌지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지난 26일 숨진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고 임무창(44)씨의 이모는 그 철문을 부여잡고 절규했다. 그녀는 "회장님께 인사는 하고 가야지. 그래야 억울하지는 않지"라며 계속 울부짖었고, 결국에는 자리에 쓰러져 조합원들에게 부축을 받아야 했다.
28일 오전 8시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앞, 임무창씨의 영정을 실은 운구차는 공장 앞에 멈춰 섰고 그 뒤로는 오전 교대를 위해 출근을 하는 직원들이 무심히 지나쳤다.
그리고 임씨의 노제가 시작됐다. 동료 조합원들이 들고 있던 검은 만장에 쓰여진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글씨가 펄럭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임씨는 쌍용자동차 사태 이후 13번째 사망자이자 복직을 기다리던 무급휴직자 가운데 첫 희생자다. 1년이 넘게 공장 안으로 들어가 일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곳은 죽어서도 가지 못하는 곳이 됐다.
두 자녀 남겨두고 떠나는 길... 사인은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경색
노제에 앞서 열린 발인식은 온통 눈물바다였다. 유가족들의 오열 속에 영정을 든 두 자녀(고1 아들, 중2 딸)는 키가 컸지만 얼굴에는 뽀얀 솜털 때문에 앳되어 보였다. 아버지가 직장을 잃자 그 충격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지난해 4월 아파트 자택에서 투신해 자살했고, 채 1년이 되지 않아 아버지까지 잃은 아이들이다. 갑자기 숨진 임씨가 남긴 재산은 통장 잔고 4만 원과 카드빚 150만 원이라는 소식은 두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더욱 무겁게 했다.
영정 속 임씨의 모습은 매우 다부졌다. 짧은 머리에 흐트러짐 없는 눈빛이 인상적이다. 사진 속 그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돌연사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젊고 건강해 보였다. 노조에 따르면 경찰은 임씨의 사인을 과로와 스트레스에 따른 심근경색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씨는 2009년 8월 이른바 '쌍용자동차 옥쇄' 파업에 참여했다가 노사가 극적으로 타결한 합의안에 따라 462명 무급휴직자에 포함됐다. 그해 6월 쌍용자동차는 2646명의 정리해고 방침을 발표했고 노조는 이에 반발해 77일 동안 도장2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당시 농성에 참여했던 976명에 대해 노사 양측은 48%를 1년 무급휴직 뒤 복직하는 것으로, 나머지 52%는 희망퇴직으로 타협했다. 이것이 전쟁 같았던 농성을 끝낸 결과물, '8·6 합의안'이다. 당시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나오게 된 사람들에게는 퇴직금과 실업급여가 쥐어졌고 무급휴직자들에게는 복직이라는 희망이 남았다.
돈은 한 푼도 받지는 못하지만 쌍용자동차 직원으로 되어 있는 무급휴가자들은 퇴직금 같은 목돈도, 실업급여도 없었고 다른 곳에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었다. 그저 1년 뒤 복직될 날을 기다리며 공사장 일과 아르바이트를 했고 임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1년을 버텼지만 회사는 복직을 약속한 지난해 8월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몇 명이 복직한다는 소식도 없었고, 언제부터 복직될 거라는 말도, 기다리라는 말도, 안 된다는 말도 없었다. 그저 '아직 공장이 정상화되지 않았다'는 소리만 반복했다.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이 임씨를 비롯한 무급휴직자들을 짓눌렀다. 이제 죽음의 그림자는 복직이라는 희망을 가졌던 무급휴직자들에게까지 뻗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쌍용자동차 사태와 관련해 사망한 12명은 모두 희망퇴직자와 그들의 가족들이었다.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두운 아침, 검정 만장을 앞세운 동료 10여 명의 뒤를 이어 임씨가 공장 앞에 도착했다. 이날 노제에는 임씨의 유가족들을 비롯해,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과 홍영표·정장선 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 김선기 평택시장 등 정치인들과 50여 명의 노조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정동영 "쌍용차 사태, 참여정부의 정책 실패"
노제 추도사를 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몹시 침통한 표정으로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이 이렇게 실현될 줄은 몰랐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 대표는 눈물을 훔치며 "쌍용자동차가 약속한 대로 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죽음의 행렬이 끝나지 않는다면 그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누구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사회를 더 이상 늦추지 않겠다"며 "임무창씨의 두 아이는 우리가 함께 키우겠다"고 말했다.
추모제 이후 계속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과 쌍용자동차 노조는 사측에 무급휴가자의 복직 약속을 즉각 이행할 것과 유가족에 대한 정신적 심리적 치유와 생계대책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기자회견에서 "쌍용자동차와 관련한 일련의 사태에 참여정부를 책임졌던 핵심인사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 정책의 실패를 노동자들에게만 짊어지게 한 결과"라고 시인하며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어 "14번째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라며 "800만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분규 현장을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쌍용자동차는 국민 앞에서 약속한 '8·6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며 "사측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임씨의 한 동료 조합원은 "회사가 '코란도C'를 발표하고 축포를 터트리는 동안 무창이 형은 밤낮으로 일하다 쓰러져 죽었다"라며 "단 한 번이라도 회사가 무급휴가자들을 돌아봤다면, 신차 발표했다고 샴페인을 터트리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을 돌아봤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는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쌍용자동차 노조는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복직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상처받은 자신과 아이들을 추스르며 하루를 버티던 고 임무창 조합원은 끝내 다 타버린 가슴을 안고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라며 "그러나 쌍용차는 아직도 침묵으로 산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8·6 합의'에 따랐다면 무급휴직자들은 지난해 9월 복직했어야 한다"라며 "그들은 돌아가지도 못하고, 떠나지도 못한 채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3월이면 쌍용자동차는 회생절차를 마무리하게 되고, 또 5년 만에 신차를 발표하고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라며 "하지만 진정한 재도약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신뢰와 신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자기 회사의 노동자들을 지켜내지 못하는 기업이 제대로 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쌍용자동차 노조는 사측이 유가족에게 사과할 것과 생계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무급휴직자들의 즉각적인 복직과 잇따른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국회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쌍용자동차는 지난해 재매각 절차를 거쳐 인도의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에 최종 매각됐고, 최근 신차 '코란도C'를 발표하고 판촉에 열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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