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벌레 소굴
인형웨이터는 나를 확 밀쳐내곤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돌기를 바라보며 울상을 지었다. 한쪽 구석에 나뒹굴어진 나는 어안이 벙벙해 있었고 조제는 뚱한 눈으로 그 모양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 이건 말이지... 열망사냥꾼의 번식을 담당하는 곳이라고 했엉. 놈의 뱃속에 들어있는 작은 돌기가 자극에 의해 부풀어오른다고 했단 말야앙. 이 놈은 동물도 식물도 그 무엇도 아니지만 자극시키기만 하면 그 더러운 것들을 싸지른다 했어엉."
"뭐라고요?"
조제는 껌을 바닥으로 탁 뱉어내며 물었다.
"자칫하면 이 안에서 저 풍선같은 걸 터뜨려서 놈의 새끼들이 이 길고 긴 터널을 지나서 놈의 항문이나 입을 거쳐서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단 말양. 윽 징그러!싫어!"
인형웨이터는 몸서리를 치며 난리가 났다. 나는 가만히 그 돌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건 말할 수 없이 크고 큰 풍선이 되더니 이윽고 팡하는 소리와 함께 수없이 많은 벌레같은 걸 끊임없이 쏟아냈다. 바퀴벌레처럼 더듬이가 있었고 수백 개의 다리는 아직 덜여물었지만 민첩하게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이었다. 열망사냥꾼과 같은 모습의, 단지 다른게 있다면 사람의 팔뚝이 달리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그것들은 미니어쳐 열망사냥꾼이었다. 아마도 조금 더 자라면 그 징그러운 팔뚝도 몸 어딘가에서 돋아나게 될 터였고, 조그맣게 개의 꼬리를 달고 있는 그 꽁무늬 밑에는 생선의 꼬리 지느러미가 이미 달려 있거나 달릴터 겠지.
"이 기집애야! 이번엔 너 때문이야! 그걸 왜 차고 난리야? 난리긴!"
조제는 고함을 바락바락 질러대며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형웨이터는 똥 마려운 강아지가 하듯이 자리에서 왔다갔다 정신없이 맴돌더니 번개같이 소리를 질렀다.
"이익, 병을 꺼내! 술병을!"
나와 조제는 얼른 각자의 주머니 속에서 병을 꺼내보였고 인형웨이터가 시키는대로 뚜껑을 열고 그 징그런 것들을 향해서 뿌려댔다. 그러자 수백 마리의 그 괴상한 것들이 액체를 뒤집어쓰는 순간, 마치 지옥에라도 들어간 듯 발악을 하며 몸서리를 치고 발발거리더니 자지러졌다. 몇 년 전에 작업실에 짐을 들이기 전에 나는 꼭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그간 강력 살충제로도 도저히 박멸이 안 되자 오빠는 지레 포기하고 그것들과 동거하는 것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내가 그곳에 들어가게 되는 이상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어둡고 습한 구석에서 놈들은 떼지어서 나다녔고 사람의 발소리에 아주 익숙했다. 마치 도둑인양 몰래 음식에도 기어올라 갔을 것이며, 어느 순간에는 공간 내부를 새까맣게 잠식해서 득의양양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미친듯이 연막탄을 터뜨리고 밖으로 나왔었다. 그리고 클럽에 가서 다섯시간 반 동안 춤추고 돌아왔을 땐 약 50여 마리의 바퀴벌레가 나뒹굴고 있었고, 일부 반죽음이 된 것들은 다리와 더듬이를 발발 떨어가며 헐떡이고 있었다. 몇몇 놈은 내가 장을 봐서 깜빡 잊고 흘려놓은 피망에 올라가선 처참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
그것들의 잔해를 쓸어모으던 중 한 놈의 뱃속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알집은 두 번째의 반전을 만들었다. 그 바퀴벌레의 알집에서 수없이 많은 벌레가 또 기어나왔었다. 나는 기겁을 하고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난 후, 찌꺼기 함을 불에 던져넣고 청소기도 내다버렸다. 그건 무시무시한 기억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쾌적한 환경을 그 무엇이 노리고 있다는 것은 지독한 반발감을 만들었고, 그 작은 것들이 나를 옭죄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심신을 고달프레 한다는 것에 굉장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그런데 나는 그런 징그러운 순간을 또 맞이하게 된 것이다. 조제와 나는 술병의 입구를 손가락으로 반쯤 막고 놈들을 향해 힘차게 뿌려댔다. 술이 닿지 않아 그나마 무사히 목숨을 건진 것들은 정신없이 풍선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어느틈에 그 풍선은 점점 쪼그라들더니 평평해져 버렸다.
"뭣보담 이걸 처단해야 할 것 같은데요?"
내말에 인형웨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열망사냥꾼의 뱃속에서 나갈 방도를 찾을 때 까진 앉아서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등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문제의 그 일기장을 꺼냈다.
"이걸 언제?"
"너네 소굴에서 초록 머리가 읽고 있었잖앙. 여기로 오기전에 얼른 가방에 넣어서 왔지잉.읽다보면 이 안에서 답이 나올지도 모르니깐."
우리는 다들 바닥에 주저앉았다. 새근새근 흰갈매기의 숨소리만 들릴 뿐 어떤 소리도 없는 그곳에서 우린 일기장 하나를 가운데 두고 바짝 모여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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