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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조선과 중국은 모두 일본의 식민지, 반식민지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8년 1월 파리강화회의에서 윌슨은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을 제창하였다.

 

민족혼의 위대한 발동인 3.1운동은 그로부터 약 1년 후에 일어났다. 그리고 조선의 항일 독립운동 소식은 공동의 적,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해야 했던 이웃나라 중국에도 신속히 전해졌고 5.4운동으로 그 불길이 이어졌다. 

 

상하이의 <민국일보(民國日報)>는 3.1운동 직후 20여 차례 보도와 논평을 통해 조선민족의 저항의식을 높게 평가하며 중국인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또 당시 중국 지식인그룹의 선두주자였던 천두슈(陳獨秀), 리다자오(李大釗) 등도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감상(朝鮮獨立運動之感想)> 등의 글을 통해 조선민족의 투쟁정신을 극찬하며 위축되고 굴종적인 삶에 익숙해진 중국인의 모습이 부끄럽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중국 청년학생들의 분발과 궐기를 촉구했다.

 

이에 호응하듯 당시 베이징대학의 학생대표였고 5.4운동을 주도했던 푸쓰녠(傅斯年)은 <조선독립운동의 신교훈(朝鮮獨立運動中之新敎訓)> 등의 글을 통해 3.1운동의 성격과 가치를 분석하고 민족혁명의 신기원을 연 3.1운동을 본받아 중국인도 일본의 산동 반도에 대한 21개조 요구를 분쇄하고 일본을 중국에서 몰아내자고 호소하였다.

 

이밖에도 베이징대학 월간지 등에 '기미독립선언서(朝鮮獨立書原文)' 전문이 게재되는 등 창조적이고 선구적인 항일투쟁이었던 3.1운동은 중국지식인과 청년학생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각성을 불러일으켜 5.4 운동에 직접적인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

 

또한 '일본' 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해야 중국은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근거지를 상하이 등에 제공해주었으며 항일 독립투사, 광복군 활동 등에도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100여 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중국정부는 3.1운동이 중국내 혁명분위기를 고조시켰다는 분명하고 객관적인 자료들이 있음에도 3.1운동이 5.4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잘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3.1운동과 5.4운동을 비교 연구하는 학위 논문은 다수 있지만 5.4운동을 다루면서 3.1운동을 언급하고 있는 중국교과서는 단 한 권도 없다.

 

심지어 중국의 현대사를 다룬 역사서 중에서도 5.4운동과 3.1운동의 연관성을 기술한 책이 거의 없고 중국 5.4운동기념관에도 3.1운동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5.4운동을 중국 민중의 자발적인 혁명역량이 성숙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중국인들은 흔히 1911년 신해혁명, 1917년 볼셰비키혁명의 영향, 1919년 5.4운동이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그 일련의 역사적인 민중혁명의 연속선상에 조선의 3.1운동이 끼어드는 것을 감히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조지 오엘의 말처럼 현재의 국가위상에 따라 역사가 재해석, 왜곡될 위험소지는 늘 존재한다. 중국이 5.4운동을 중국 민중의 주체적인 의지로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또 3.1운동이 없었어도 중국에서 5.4운동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3.1운동의 영향으로 혁명 분위기가 고조되었다는 서술이 추가된다고 해서 5.4운동의 독자성이 희석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의 높아진 국가위상을 바탕으로 중국이 과거의 역사를 자신들의 논리와 입맛에 맞도록 지배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편협하고 국수주의적인 역사인식이 언젠가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아직 충분히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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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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