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이 연이은 철도 사고에 대해 "사고는 무슨…. 사람이 다쳤습니까? …무슨 큰일 난 것 같이, 어디까지나 작은 고장인데"라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시민의 발이자 국민의 이동권을 책임지고 있는 공기업 철도사장의 발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고의 원인이 철도 선진화(도대체 무엇을 선진화라고 하는지 의문이 가지만) 정책에 따른 무분별한 인력감축과 그에 따른 안전 인력 부족과 외주화, 나아가 통합적인 철도시스템의 붕괴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의 공기업 정책을 앞장서 실천해 왔던 허준영 사장의 발언은 의도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이명박 정부의 철도 민영화 계획이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폐기된 철도 민영화의 부활
지난 2월 24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최구식·백성운(한나라당) 의원 주최로 '철도운송산업 선진화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재훈(교통연구원 철도연구실장)은 "철도 산업의 경영효율화를 위해서 각종 시설은 철도시설공단이 관리하면서 철도 운영업체로부터 이용료를 받고, 한국철도공사와 민간 철도업체들은 경쟁입찰을 통해 철도 운행권을 따내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토론에 참석한 국토부 관계자 또한 "철도공사의 막대한 부채와 과도한 인력규모, 이로 인한 낮은 생산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강화하는 민영화 방안이 필요하다"며 국민적 합의로 폐기된 철도 민영화의 불씨를 지폈다.
그런데 이날 핵심적으로 논의된 철도 민영화 방안은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초기 주장했던 안과 유사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철도 건설과 시설 개량 및 유지보수는 철도시설공단이 담당하고 민간자본이 여객과 화물의 운영뿐만 아니라 철도 노선별로 경쟁 운영케 하자는 것으로 김대중 정부의 철도 민영화 방안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은 당시 사회적 논의의 과정에서 현실적인 타당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철도 안전과 국민의 교통기본권을 위협하고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이유로 폐기된 안이다.
경쟁이 만능은 아니다, 오히려 '비효율적'
복수의 민간 회사가 철도 운영에 참여하고 완벽한 상하분리 체계를 구축하면 경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우선 한국철도는 영업거리가 짧아 노선별 분리는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다. 한국철도의 전체 길이는 일본의 JR 북해도(3,179㎞) 수준의 영업규모에 불과해 노선별로 분리가 이뤄지면 분리(경쟁)로 인한 효율성 증가보다 오히려 규모의 경제가 상실돼 제 살 깎아먹기식 운영으로 전락하고 만다. 문제는 그 피해가 요금인상, 적자 노선의 공동화 등 온전히 이용시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또한 철도산업은 그 특성상 시설과 운영의 인터페이스(서로 다른 두 시스템을 이어주는 부분)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조직 통합의 필요성이 크고, 거래비용도 고려해야 하므로 시설과 운영 부문의 완전한 분리에는 신중해야 한다. 2007년 가좌역 선로 침하 시 현장 작업자의 보고가 시설공단이나 철도공사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대형 사고가 될 뻔한 것이나 최근 일어난 KTX 광명역 사고 등은 철도 통합운영 시스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세계적인 추세인 친환경 철도 산업의 발전과 안전한 운행을 위해서 상하통합을 고려해야 할 시점에서 철도 개량사업(전철화, 복선화)과 유지보수 사업마저 운영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민영화 추진의 근거인 대규모 적자 발생은 의도된 '오진'
무엇보다 큰 문제는 철도 교통의 공공성 강화로 국민의 교통기본권을 채워야 할 정부가 대기업 이윤 보장을 위해 민영화를 관철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적자 문제를 부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철도는 공공할인, 적자선 유지, 특수목적 사업수행 등 공기업으로서 공공성 유지를 위해 공익서비스 의무(PSO, Public Service Obligation)를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에 대한 비용을 전액 지원하지 않아 05년부터 09년까지 총 3978억 원의 손실을 철도공사가 떠안고 있다.
두 번째는 철도 운임이 화물과 여객수송에 소요되는 비용(총괄원가) 대비 60∼70%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다. 총괄원가에 비해 운임이 낮게 책정된 이유는 정부가 물가를 안정시키고 물류비용을 줄여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함이다. 이 비용만 철도공사로 전환 이후 5년 동안 3조 1421억 원에 이르고 있다.
세 번째는 철도구조개혁에 따라 선로 등 시설자산의 사용 대가로 철도공사가 시설공단에 납부하는 선로사용료가 다른 철도선진국에 비해 과도하게 책정되면서 매년 5~6천억 원이 소요되어 적자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철도 적자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인건비 과다의 경우 '영업비용 대비 비중'만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고정적인 유지보수비용이 높은 철도산업과 같은 거대 장치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철도의 인건비 수준을 노동생산성을 기준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철도 노동자의 생산성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2006년 기준 한국은 1.38, 독일은 0.75, 프랑스 0.73, JR 동일본 1.73, 이탈리아 0.71).
위 <표>에서 보듯이, 철도공사는 매년 전체 영업수익의 30%에 가까운 액수를 고정적으로 지출하고 있다. 즉 아무리 영업수익이 발생한다고 해도 고정 비용 등으로 지출이 늘어나면 매해 적자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더욱이 철도 시설과 운영이 분리되면서 철도공사가 떠안았던 4조 5천억 원의 고속철도 건설부채와 2009년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인천공항철도 매입비용 1조 2057억 원에 대한 원리금도 상환해야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철도공사의 부담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철도공사의 경영을 악화시키는 이러한 구조적인 요인들을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단순히 철도공사의 경영효율성, 인건비 과다 등으로 인한 과도한 적자발생을 이야기하면서 이를 철도 민영화 추진의 근거로 끊임없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민영화가 아닌 철도의 공공성 논의 필요
올 2월에만 철도 KTX 사고가 5건이나 발생하면서 철도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높다. 철도공사는 이번 사고를 일시적인 현상이며 외주 인원의 과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고가 무분별한 외주화와 무리한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유지보수를 담당하고 안전을 책임져야 할 철도공사가 돈벌이에만 급급하게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지금 논의돼야 하는 것은 철도 민영화가 아니라 철도의 안전을 담보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다. 국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고 값싸게 철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철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논의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