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가장 크게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사제지간으로 만나 가르침에 따라 잘 배우고 어엿하게 성장해 행복한 얼굴로 잊지 않고 옛 스승을 찾아온 제자와 만날 때다. 그와의 대화 속에서 학창시절 뿌듯하고 가슴 벅찬 기억만 새록새록 떠올릴 수 있다면 교사로서 억만금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순간이다.
반대로 교사로서 가장 안타깝고 마음에 상처를 입어 자괴감이 드는 때는 언제일까. 열심히 가르친다고 가르쳤는데 되레 제자들에게 '실력 없었다'거나 '매만 때렸다'는 식의 나쁜 추억만 남겨준 경우라고 말하는 교사도 있고, 졸업한 제자가 기억조차 못하는 존재감 없는 교사로 낙인찍히는 일이 훨씬 더 충격적이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약과다. 제자로부터 '선생님 잘못 만나 인생 망쳤다'는 식의 얘기를 훗날 제3자를 통해 듣게 된다면 어떨까. 더욱이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또렷이 기억할 만큼 정말 좋아했던 제자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다면 말이다. 얼마 전, 진정 제자들을 위해 헌신했다고 감히 자부했기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 '뒷담화'를 듣게 됐다.
마치 둔기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그의 앞이라면 애써 변명하거나 따져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돌고 돌아 온 것이니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생각에 순간 화도 났고, 하루 종일 그의 '뒷담화'가 떠올라 수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애꿎게도 지금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 괜히 밉게 보일 지경이었다.
며칠이 지나 그가 괘씸하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없지만, 못내 서운한 마음은 가슴 한 구석에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그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고, 사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를 가르친 교사로서 일말의 책임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가 선생님을 그토록 원망하는 이유인즉슨 이렇다.
선생보다 나은 지리박사 제자, 참 자랑스러웠다그의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의 지리 교사였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지만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라도 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부전공을 했고, 학교에 근무하면서 지리 과목으로 1급 정교사 자격을 딸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땐 지리 교과서를 사이에 두고 아이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고 행복이었다.
그런 눈으로 보기에 그는 지리과목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우선 여느 과목과는 달리 지리 수업시간을 기다렸고, 단 한 번도 졸거나 딴청 피우지 않았다. 과제물도 곧잘 해왔고, 중간, 기말 시험은 물론, 다른 친구들이 무척 어려워하던 서술형 시험도 줄곧 100점 맞을 정도로 출중한 능력을 뽐냈다.
교내 시험은 물론, 당시 유행처럼 실시되었던 경시대회와 올림피아드 같은 대외 시험에서도 단연 발군이었다. 특별한 사전 준비도 없이 광역시 단위의 지리 올림피아드에 나가 금상을 수상할 만큼, 적어도 지리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진정한 영재였다. 그에게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해 국영수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고3의 시간이 외려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런 그였기에, 애초 그의 진로는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대학에 가느냐의 문제만 남았을 뿐, 학과 선택에 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 대학 원서를 쓸 때, 비록 담임은 아니었지만 지리를 가르친 교사로서, 열정을 갖고 지금처럼 열심히 노력한다면 내로라는 지리학자로서 명성을 날리게 될 것이라며 격려해주었다.
그는 당당히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했고, 그의 기뻐하던 모습이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선생님보다 더 잘 아는 지리박사'로 통했으니, 사제지간으로서 '청출어람'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졸업 후 그는 만면에 웃음 띤 얼굴로 멋진 대학생활과 밝은 미래를 꿈꾸며 서울로 떠났다.
지리박사는 왜 경영학과에 편입했을까그러나 그의 대학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대학마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어 닥치면서 이른바 '돈이 안 되는' 학과들은 다른 교과에 통합되거나 퇴출될 위기에 몰리게 된 것이다. 지리학과 역시 통폐합 대상으로 지목됐고, 학생들은 강의실과 도서관 대신 시위 현장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지리박사' 그도 그 자리에 늘 함께 했다.
싸움은 계속 되었고 학생들의 목소리는 높았지만, 대학의 울타리를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들이 계열사 인수 합병하듯 대학을 사들이는 현실에서 승부는 이미 나 있었다. 함께 했던 동료, 선배들이 하나둘씩 시위 현장을 떠나기 시작했고, 목소리는 이내 잦아들었다. 결국 그도 몇 남지 않은 그 자리를 떠야만 했다.
그 와중에 '그럴 시간 있으면 공부나 하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어차피 취직도 되지 않은 학과인데, 하루라도 빨리 공무원이나 공기업 시험을 준비하거나 토익, 토플 같은 스펙을 준비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가슴에 바로 와 꽂히는 그 현실적 '조언' 앞에 대학 졸업을 앞둔 선배들은 물론이고, 갓 입학한 새내기조차 시나브로 무릎을 꿇었다.
전공서적 대신 너도 나도 수험서적과 영어책을 펼쳤고, 도서관은 밤낮 가리지 않고 대학생이 아닌 '수험생'으로 북적였다. 애써 태연하려 했지만 그 역시 불안감이 엄습했고, 끝내 지리학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가정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은 처지에서 그토록 공부하고 싶었던 지리학은 돈 걱정 없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그저 사치스러운 학문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몇 년을 방황하다 군대엘 갔고, 제대하고 나서도 미래에 대한 방황은 계속됐다. 결국 그는 학과 편입을 준비했다. 열심히 공부했고, 재능으로 보자면 분명 차선이지만 적어도 취직에는 훨씬 보탬이 된다는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비록 그의 나이 내일 모레면 서른이지만, 나름 잘 적응하며 즐겁게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고등학교 동창생들끼리 만난 자리에서 꺼낸 '뒷담화'는, 교사 개인에 대한 불신과 증오라기보다는 '현실'을 제대로 일러주지 않은 진학 지도에 대한 원망인 셈이다. 세상물정 잘 모르는 학생에게 기성세대로서 '아무리 네가 지리를 좋아해도 그곳에 가면 취직해 먹고 살기 힘들다'고만 강조했던들, 그렇게 쉽게 학과를 결정하지 않았을 거라는 하소연이다.
비인기 학문에 재능있는 제자,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취직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언제 퇴출될지 모르는 학과에 들어가, 하고 싶었던 공부조차 마음껏 해보지 못한 채 황금 같은 10년 가까운 세월을 허송한 것이 어찌 안타깝지 않을까. 나도 그의 처지였다면 답답한 마음에 부모를, 교사를, 아니 모든 기성세대를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한 교사로서 '일말의 책임'도 이런 마음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찜찜하다. 만약 수업시간에 그와 같은 특별한 아이를 또 만나게 된다면? 그가 바란 대로, '재능보다 현실을 선택해야 안전하다'는 말을 교사로서 차마 못할 것 같다. 거칠게 말해서, 재능 하나 살려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획일적이고 천박한 수준을 지적해야지, 아이더러 그깟 재능 우리 사회에선 별 것 아니라며 백안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릇 교육이란 각자의 재능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과정이라는 정의를 모르지 않기에, 결국 그 참된 의미를 따라 아이들을 만나게 될 테지만, 이번 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진로 상담인지, 과연 그것이 교사로서 '책임 있는' 행동인지 적잖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선생님보다 더 잘 아는 지리박사'였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 비록 늦깎이일지언정 취직해 성실한 회사원이 될 테고, 능력을 인정받게 되면 굴지 기업의 경영인으로 거듭날지도 모르겠다. 한편,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며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며 건실한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물론, 건투를 빌지만, 오래도록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안타까운 마음에 10년 가까운 허송세월을 지금이야 선생님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나중 그가 지나온 삶을 반추할 때도 그렇게 여길까.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를 가르친 교사로서 그의 심정 십분 이해하고 수백 번 원망을 감내한다고 해도, 그 역시도 자신의 특출 난 재능에 대한 아쉬움을 평생 떨쳐내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