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강 : 7일 오전 10시 15분]
원세훈 국정원장이 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였던 명진스님의 퇴출 과정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같은 주장은 6일 오전 삼성동 봉은사에서 열린 명진스님의 '마지막 법문' 자리에서 나왔다. 명진스님은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문제로 조계종쪽과 갈등을 빚다 지난해 11월 문경 봉암사에서 동안거에 들어갔었다. 이후 명진스님은 지난 1일 현 봉은사 주지인 진화스님으로부터 '봉은사를 떠나달라'는 요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명진스님은 이날 오전 법문에서 "원세훈 국정원장이 2월 2일 봉은사를 방문해, 1월 22일 리영희 선생님 49재 때 제가 했던 법회 내용에 대해 항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정원장이 봉은사를 방문해서 진화스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압박을 받았겠나, 안 받았겠나"라고 질문했다.
앞서 명진스님은 리영희 선생 49재 법문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선진국, 선진국하더니 이 나라를 선짓국으로 만드는 것 같다"고 비판했었다. 또 "2007년 대선 때 BBK 영상을 보면서 '아, 이젠 선거판이 달라지겠구나'하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거짓말한 사람을 우리 국민들은 500만 표 차이로 당선시켰다"며 이 대통령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이에 신도들이 "(압력을) 받았어요"라고 답하자 명진스님은 "봉은사 문제는 권력과 밀접하게 결합된 문제다, 자승 총무원장과 이명박 장로와 이상득 의원의 총체적인 합의 속에서 이루어진 치욕스러운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개탄했다.
명진스님은 이어 "봉은사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신도들의 뜻과 상관없이 봉은사 직영전환을 결정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조계종에서) 처음에는 (봉은사 직영전환 이유를) 강남·북 포교벨트를 구축하기 위해서, 돈하고는 아무 상관없다고 했는데 (직영사찰 전환 이후) 12억 원이었던 분담금이 15억 원이 되고, 또 3억 원은 따로 '종무행정특별보조금' 형식으로 지출되고 있다"며 "이래도 돈 하고 상관이 없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진화스님은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내가 국정원장과 만났다는 명진스님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나는 원세훈 국정원장을 만난 일이 없다, 2월 2일 (국정원장을) 만났다고 하는데, 내 일정은 얼마든지 사실 확인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도 7일 오전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정원장은 봉은사에 간 적이 없고, 진화 스님을 만난 사실이 없다"고 밝혀왔다
"진화스님, 송광사 종회의원 선거에서 있었던 일 밝혀라"
명진스님의 '죽비'는 불교계 내부로 향했다. 그는 "1907년 평양의 한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와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눈물을 흘리며 뉘우쳤던 '평양대부흥회'이후 우리나라에 기독교 신자가 대폭 늘어났다"며 "대한민국 조계종 역시 자기 참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승 총무원장이 5대 결사(수행·문화·생명·나눔·평화) 운동을 통해 불교계 자성과 쇄신을 다짐했다는 소식을 전한 명진스님은 "5대 결사운동을 제대로 한 번 해봤으면 한다"며 "이를 위해 총무원장 자신의 허물을 다 고백하고 통렬하게 비판을 해야한다, 어떻게 'MB하수인' 노릇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모든 스님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재산을 밝히는 자기 참회를 해야한다"면서 "총무원장 선거, 종회의원 선거에 얼마나 많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쓰였는지도 밝혀야한다"고 말했다.
명진스님은 특히 "총무원장 선거, 종회의원 선거에 수십 억이 들어간다"면서, 진화스님을 향해 "송광사 종회의원 선거과정에서 있었던, 제 입으로 추악하게 말하기조차 어려운 (비리에 대해) 우리 진화 스님이 본인의 입으로 밝히면서 평양대부흥회와 같은 불교계 대부흥을 위한 시발점에 불을 댕겨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봉은사 다시 돌아와 천일기도 드리고 싶었는데..."
이날 봉은사는 명진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모인 2000여명의 신도·시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법문은 낮 12시경 시작되었지만, 하얀 국화를 든 100여명의 신도들은 오전 10시부터 '명진스님 존경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다래헌 앞에 서서 명진스님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오전 11시 40분경 명진스님이 다래헌에서 나오자 신도들은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란 노래를 부르며 스님에게 박수를 보냈다. 명진스님은 신도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하며 포옹을 나눴다. 스님이 법왕루에 들어서자, 법왕루에서 기도를 드리던 신도들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일부 신도들은 "스님, 힘내세요, 저희가 있잖아요~"라는 응원가를 부르기도 했다.
이후 30분간 이어진 법문 내내 신도들은 연신 눈물을 찍어냈다. 명진스님 역시 몇 번이고 안경을 벗으며 눈물을 훔쳤다. 한 신도는 "(명진스님) 보낼 때는 동안거가 끝나면 모시고 온다고 했기 때문에 꾹꾹 참고 기다렸는데 기가막힌다"며 분노했다.
명진스님은 "훌쩍 떠났으면 하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여러분들 얼굴 보고 가려고 왔다"며 "여러분들과의 시간 4년은 제가 살아온 세월 속에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며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또 "봉암사에 있을 때 혹시 종단하고 잘 이야기가 돼서 봉은사로 돌아가면 천일기도를 새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한국불교의 새로운 희망을 봉은사에서 만들어내고자 했던 희망이 좌절됐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명진스님은 사실상 자신을 내친 것이나 다름없는 진화스님에 대해서도 섭섭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자승원장이나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은 지금도 할 수 있는데 진화스님하고 이런 관계가 된 것이 가장 가슴이 아프다, 저한테는 친 동기간 같았는데"라며 씁쓸해했다.
봉은사 평신도회, 진화스님 퇴진운동 돌입 선언
"진화스님, 원목스님, 선감스님 모두 저 때문에 여기 와 있는데 어떻게 가장 믿었던 그 스님들이…"라며 착잡한 표정을 짓던 명진스님은 이내 "결국은 내가 너무 퍼펙트하게 잘난 죄구나, 그게 제 허물인 것 같다"고 말해 신도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스님은 "'회자정리'를 뒤집으면 '이자필회'가 된다, 여러분들과의 이별, 헤어짐은 이별이 아니라 더 큰 만남을 위한 아픔, 발걸음이라 생각한다"며 "서두르지 않고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명진스님의 향후 거취에 대해 유병문 사무관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며 "앞으로 구상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100여명의 신도로 구성된 '봉은사 평신도회'는 '진화스님을 주지로 인정할 수 없다'며 자승원장과 진화스님의 퇴진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현재 봉은사에서는 종무행정특별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월 2500만 원, 연 3억 원을 총무원에 납부하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해 신도들에게 아무런 사전 설명이나 동의도 없었다"며 "정상적이지 못한 사찰운영에 결코 보탬을 줄 수 없으며 명진스님께서 다시 법문하시는 날까지 모든 시주를 보류할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한편, 한 신도는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봉은사에 꼭 명진스님이 계셔야하는 건 아니다"라며 "절이 조용하게 기도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지 계속해서 시끄러워 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