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가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기습 처리한 데 따른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개정안 처리에 합의한 여야 모두에게 "청목회(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 의원 구하기", "입법 로비 허용"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비난 여론에 여야 원내대표들은 "법 개정은 소액 기부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6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정치자금법은 본래 소액 기부를 활성화해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현행 법은 애매하게 적용돼서 그 부분을 고친 것"이라며 "당론으로 개정안 처리를 결정한 게 아니고 프리보팅(자율 투표)에 부칠 것이고, 법사위로 넘어가 토론도 거칠 테니 만약에 문제가 있다 해도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금 법은 여야 불문하고 모든 국회의원에게 걸면 (걸리게 돼있어) 무리한 검찰권 남용의 소지가 있다"며 "(법 개정으로) 음지의 검은 돈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행안위 소속 장세환 의원 역시 "청목회 사건으로 인해 기부금으로 10만 원씩 받는 게 부정한 돈을 받는 것처럼 돼버렸다"며 "작년 말에 정치 후원금 모금이 정말 어려웠다, 시민들이 10만 원 후원하면 나중에 수사 받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항변했다. 청목회 사건으로 인해 소액 기부 자체가 위축됐기에, 이를 바로 잡은 것이 이번 개정의 취지라는 게 여야 의원의 공통적 시각이었다.
다만 장 의원은 '기습처리' 방식에 대해서 "기습 처리에 대한 여론의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비판을 받는 한이 있어도, 검찰이 애매한 규정을 이용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정치적 수사를 하는 부분은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청목회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당사자인 강기정 민주당 의원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법 개정이 지금 이런 식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검찰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며 "검찰은 정치자금법의 미미한 점을 이용해 정치적으로 국회를 길들이기 하려고 하면서 국회의원의 후원회 활동을 위축시키고 더 나아가 국회의원은 범죄자로 몰고 있다"고 강조했다.
입법로비 허용, 청목회 사건에는 면죄부?
이에 앞선 4일, 행안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예정에 없던 정치자금제도개선 소위원회를 열어 현행 정치자금법의 3개 조항을 수정한 개정안을 전체회의에 상정해 의결했다. 여야 위원 15명의 만장일치로 10분 만에 치러진 '긴급 처리'였다.
'누구든지 국내외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는 내용의 31조는, '관련된'을 삭제해 '단체의 자금'으로 고쳤다. 32조는 '공무원이 담당·처리하는 사무에 관해 청탁 또는 알선하는 일에 정치자금을 기부 받을 수 없다'는 내용에서 '공무원'을 '본인 외의 다른 공무원'으로 변경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자신의 관할 업무와 관련해 정치 자금을 기부 받아도 처벌받지 않게 된다. 사실상의 입법 로비를 허용했다는 비판이 이는 이유다.
31조와 32조는 검찰이 청목회 사건에서 여야 의원 6명을 기소할 때 적용한 법률이기도 하다. 이 조항이 개정되면, 단체에 속한 다수의 이름으로 10만 원씩 쪼개서 기부한 행위에 대한 처벌 근거가 사라져 청목회 사건에 대한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대로 조항이 바뀐다고 해도 법 개정 이전에 발생한 청목회 사건에 대해 소급처리가 되지는 않지만, 개정안 통과 시 법원이 면소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33조는 '누구든지 업무·고용 등의 관계를 이용해 부당하게 타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방법으로 기부를 알선할 수 없다'는 조항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를 이용해 강요하는 경우에 한해 기부를 알선할 수 없다'로 수정했다. 즉, '강요'해 모금했다는 사실을 검찰이 밝혀내지 못할 경우 처벌이 어렵게 된다.
누리꾼 비판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이란성 쌍둥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정치개혁특위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를 거쳐야 한다. 여야 합의 아래 처리된 개정안이니만큼 본회의 통과는 기정사실로 보였지만 난관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우선, 당내 반대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법사위 한나라당 간사인 주성영 의원은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법사위에서 기다리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주 의원은 "개정안은 '청목회 로비 면제법'이자, 국회의원이 받은 돈은 치외법권 지대로 설정한 '방탄용 특례법'"이라며 "이는 국회의원이 입법으로서 정당한 사법절차를 폐기하는 꼴"이라고 밝혀 개정안의 법사위 통과가 녹록치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주 의원은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공동발의자로 서명한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검찰수사를 통해 기소된 당사자로, 청목회 입법로비보다 더한 처사(를 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더 큰 문제는 여론이다. 청목회 사건 이후 소액 정치후원금이 뚝 끊긴 현실에서, 법의 모호한 부분을 개정해 소액 정치후원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순기능은 갖고 있지만 예정에 없던 '긴급 처리'에 부정적인 여론이 증폭되고 있는 것. 지난해 말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부정적인 여론에 밀려 무산된 바 있다.
누리꾼 'yunasalsera'는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입법 로비를 합법화하는 정치자금법을 여야 만장일치로 기습처리했다"며 "라이언 일병 구하기 하나?"라고 비판했다.
누리꾼 'TOBEmodeling' 역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이란성 쌍둥이다, 하는 짓이 비슷하다"며 "드디어 자살골하나 넣었는데 정치자금법을 몰래 날치기하다 딱 걸린 것, 도둑질하다 걸린 표정이 우습다"고 힐난했다.
물론, 옹호 여론도 소수있다. 누리꾼 'coperni'는 자신의 트위터에 "정치자금법 관련 정치인들 욕하시는 분들 많던데 소액정치기부금의 활성화는 필요한 부분"이라며 "올바른 국민의 의사를 대변할 올바른 정치인에게 기부하는 문화의 양성화가 필요하다"고 글을 남겼다.
누리꾼 'leastory'은 "현행 오세훈 정치자금법은 문제가 많다, 깨끗한 정치인도 범죄자 만들 수 있다"면서도 "개정의 필요성이 있다면 공청회를 통해 여론수렴을 하고 이참에 지방선거 후보자에게도 합법정치자금 모금의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기습개정은 잘못"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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