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사건, 제주 사건, 여수 순천 사건 등을 사람들은 알지만, '금정굴 사건'에 대해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드디어 1995년 10월, 가을 하늘 아래서 '금정굴(고양시 소재)'이 열렸다. 동시에 '국가범죄'라는 판도라상자도 열렸다. 1950년 '금정굴'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국가범죄'란 단어까지 나오게 되었을까.
200여명의 주민이 총살당한 현장 '금정굴'
1995년 9월에 '금정굴 사건' 유족들의 모금으로 '금정굴'을 발굴했다. 누구도 아닌 유족들의 돈이었다. 그 결과 153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유골 및 유품이 나왔다. 이 사건을 서술하는 이 책에는 당시 발굴한 유골들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 나온다. 그 사진에는 그 유골들이 즐비하게 늘려 있는 모습이 나오고 "유골이 온 산을 뒤 덮었다"는 멘트가 달려있다.
금정굴 사건은 "1950년 10월 6일경부터 10월 25일경까지 고양경찰서 소속 경찰관, 의용경찰대, 태극단이 주민 200여 명을 '금정굴'에서 총살한 사건"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왜 총살했냐고.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런 사건을 통틀어 '부역 혐의자 희생사건'이란다. 이것은 "한국전쟁 중 국군이 인민군 점령지를 회복하기 시작한 1950년 8월 20일경부터 전선이 38선 부근에서 고착된 1951년 3월경까지 인민군 점령지역에서 그들의 점령정책에 협조했다는 의심을 받은 민간인과 그의 가족들이 법적 절차 없이 집단적으로 살해당한 사건"이라고 책은 고발한다.
"'금정굴 사건' 피해자 중에는 부역혐의자 가족 혹은 친척이었다는 이유로 희생당한 경우가 부역혐의자라는 이유로 희생된 경우보다 훨씬 더 많았다."며 마치 조선시대의 연좌제를 연상하게 하는 대목도 있다.
"학살은 정치적 결과물이다"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 인천상륙작전 후 인민군 점령지역에 경찰들의 첫 번째 임무가 부역자 처벌이었단다. 인민위원회 간부, 인민군 환영대회 참석자, 인민군에게 식량을 제공한 주민, 인민군에게 달구지나 배 같은 수송수단을 제공한 주민들을 부역자로 낙인찍었다며 당시의 사건을 증언한다.
사실 한국전쟁을 분석하는 학자들은 '북측의 남침설'과 '남측의 남침 유도설'을 말한다. 어쨌거나 그 전쟁은 북측 정부의 권력자들과 남측 정부의 권력자들의 세력싸움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피해를 보는 건 민간인들이라는 것. 원하지 않은 전쟁 속에서 이리 저리 피해 다니고 고생한 것도 억울한데, 강제에 의해 인민군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학살이라니. 만만한 게 민간인이란 말인가.
어쨌거나 국가든 개인이든 잘못을 범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잘못을 시인하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그런 보편적인 진실을 외치고 있다.
저자 신기철은 이 책의 저자서문에서 "학살은 정치적 결과물이다"라고 주장한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숨도 크게 쉬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빨갱이 가족이라는 누명만 더해질 게 뻔했으니까요."라고 말한 유족 심기호 씨의 증언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유족들은 부역혐의자의 가족,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수 십 년간 마을에서 쫓겨나거나 피신해서 숨어 살았었다. 사실 한국전쟁 이후 '빨갱이'란 단어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아주 많이 아프게 했다.
화해를 위해 과거사 정리는 필수
이 책의 저자 신기철은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일했고,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금정굴 사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가 속했던 위원회 이름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그것은 누구를 골치 아프게 하거나 누구를 처벌하자고 나대는 일이 아니다. 그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 것이고, 진정한 화해는 주어질 수 없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단순히 '금정굴 사건'에만 머물지 않는다. 당시에 있었던 '금정굴 사건'이란 단일 사건을 해부하고, 나아가서 당시의 국가에서 저지른 '부역자 혐의민간인 학살'의 의미와 배경 등을 진단하고, 책의 말미에서는 제노사이드 즉 민간인 학살의 정의, 원인, 유형, 재발방지 방안 등을 다룬다. 좌우익을 나누는 사상 감정, 빨갱이니 뭐니 하는 이데올로기 감정, 유족들의 개인적인 고통 등에만 머물지 않고 좀 더 사회시스템적인 안목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므로 해서 아직도 쉬쉬하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묻어두는 수많은 '국가범죄'라는 판도라 상자를 솔직하게 열어서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사회의 구성원 간의 진정한 화해와 대통합은 판도라 상자를 여는 용기와 그것에 대해 책임질 사람이 책임질 때 이루진다는 걸 역설하고 있다. 아직도 '금정굴 사건'의 유골들은 16년간 서울대 병원에서 방치되고 있다. 과연 이 역사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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