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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주 박사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정치철학 특강'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정치철학 특강'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현 정부보다 노무현 정부 때 훨씬 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분배가 이뤄졌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분배를 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이건희에게 의지하고 한·미 FTA를 지지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분배를 중요시하는 사회민주주의 역시 자본가의 돈이 없으면 분배를 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자본가 그룹이 붕괴되면 같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본가의 손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마르크스가 <고타강령비판>에서 사회민주주의를 비판한 이유가 거기에 있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자신의 지지층 중 상당수가 반대했던 한·미 FTA를 강행하려 했을까? <철학 VS 철학>의 저자 강신주 박사는 자본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민주주의와 분배 사이의 본질적인 관계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강 박사는 지난 3월 2일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정치철학 특강 -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철학 비판'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를 교재로 진행된 이날 강의에서 "정치인들이 외치는 '분배하자'는 말들은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이하면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순간이 오면 그들은 노동자들의 적대세력이 된다"며 "노동자가 스스로 지금이 '비상상태'임을 느끼고 돌파하려하지 않는다면 억압 없는 사회는 미래에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회민주주의 모순 부르는 '분배'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에서 갈라져 나온 정치 사상 중 하나로 혁명 보다는 의회 민주주의 정치를 통해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성향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강 박사는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에 대한 설명에 앞서 마르크스가 쓴 <고타강령비판>을 거론하며 강의를 열었다.

"1890년에 만들어진 '고타강령'은 사회민주주의의 행동강령입니다. 고타강령의 두 가지 핵심 취지는 '노동이 부를 낳는다'는 것과 '노동자에게 공정한 분배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있었어요. 마르크스는 고타강령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두 가지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고타강령비판>을 썼습니다. 그리고 발터 벤야민은 마르크스가 쓴 <고타강령비판>을 철학적으로 가장 강하게 끌어안은 사람이지요. 지금도 보면 마르크스의 많은 글들을 진보진영에서 인용하는데 유난히 인용을 안하는 글이 <고타강령비판>이에요. 그 느낌을 벤야민이 정확하게 잡아낸 것이지요."

마르크스는 '노동이 부를 낳는다'는 것과 '노동자에게 공정한 분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의 어떤 점이 문제라고 생각했을까? 강 박사는 "마르크스는 <고타강령비판>에서 '노동력 이외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물질적인 노동조건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허락 하에서만 노동할 수 있으며 그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사회민주주의적인 시각과는 달리 사실상 노동만 가지고는 부가 창출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벤야민 역시 <역사철학테제>11에서 이러한 마르크스의 견해를 그대로 인용했다. 강 박사는 두 번째 주장인 '공정한 분배'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마르크스는 '이른바 분배를 중시하고 거기에 중점을 두는 것은 대부분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회민주주의 비판의 키워드는 이 '분배'라는 단어에 있어요. 분배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세금을 걷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건데,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만약 세금을 걷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현격하게 경제력이 떨어져도,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져도 과연 분배를 할 수 있을까요? 논리적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지요. 자본주의 경제발전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회민주주의 분배의 문제입니다."

강 박사는 "분배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자본이 축적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억압당하는 구조가 인정되고 유지되어야한다"며 "이것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갖는 결정적인 한계"라고 설명했다. 모든 민중이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에서 노동자들이 억압받는 모순이 발생하는 셈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분배가 제대로 작동해야만 사회민주주의자가 대표자의 자리를 유지하며 '분배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권력구조에서 생긴다. 강 박사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부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에는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고 독려하지만 노동자들의 파업은 싫어한다"고 지적했다. 사회민주주의자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 억압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억압받는 노동자, 스스로만이 구원할 수 있어"

 강신주 박사가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신주의 정치철학 특강' 강연을 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신주의 정치철학 특강'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벤야민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회민주주의가 노동자들의 구원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강 박사는 "벤야민이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이유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역사는 진보한다'고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며 "<역사철학테제>를 좁히면 그대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봐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벤야민은 무엇이 노동자를 억압에서 풀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는 <역사철학테제>12에서 '역사적 인식의 주체는 투쟁하는, 억압받는 계급 자신이다'라고 말했다. 강 박사는 이 구절을 가리켜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억압을 인식하고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사회민주주의에서 노동은 '당신의 노동이 당신의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 것이니 열심히 일해라'정도의 의미였습니다. 벤야민은 노동에 대한 이런 낙관적인 생각이 노동자를 가진 게 노동밖에 없어서 자본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보았습니다."

강 박사는 "그런 점에서 벤야민은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실천에 대한 능동성을 심어주려고 했던 독일의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벤야민이 <역사철학테제>를 쓴 후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고 설명했다. 19세기 자본주의와 20세기 자본주의에서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 해서 진보의 이념이 얼마나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것이었는지 일깨워주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강 박사는 "억압이 없는 미래 사회는 막연하게 기다린다고 해서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며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를 억압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는 우선 억압의 역사를 보고 분노할 줄 알아야한다"고 강조하며 강의를 마쳤다.


#강신주#벤야민#역사철학테제#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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