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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츠오 미야지마(Tatsuo Miyajima)의 Time Train전(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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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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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누구나 한 번씩은 기차를 타 본 적이 있을 것이고, 또 기차여행과 관련한 재미난 추억거리나 또 어떤 이는 슬픈 이별의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꼼데가르송 갤러리 한남 six에서 지난 2월 25일(금)부터 오는 5월 1일(일)까지 약 2달 간 전시되고 있는 일본인 세계적 미디어 설치작가 다츠오 미야지마(Tatsuo Miyajima)<Time Train>전(展)은 일상 속 친근한 교통 수단인 기차를 전시장으로 가져와 전시장을 가득 채운 레일 위를 달리게 하고 있다.
평소 점멸하는 발광다이오드(LED) 디지털 카운터가 보여주는 1에서 9까지의 숫자를 통해 인간 각 개개인이 가지는 삶의 시간의 속도 차이, 죽음을 상징하는 0을 제외한 나머지 숫자들의 깜빡임을 통해 생명과 자연의 윤회사상까지를 표현하고 있는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총 길이 62m의 종착역도 시발역도 없는 무한궤도(한바퀴 도는데 대략 5분 소요)를 달리는 미니어처 기차를 통해 또 다른 죽음과 삶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전시장에 설치되어 레일 위를 달리고 있는 이 미니어처 기차는 실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2년~45년까지 독일 이곳저곳을 누비며 군사 물자와 인력들을 실어나르던 증기기관차를 정교하게 축소해 놓은 것으로, 종착역인 아우슈비츠까지 수많은 유태인들을 죽음의 장소로 이동시켰던 기억을 떠올리도록 고안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장 안은 매우 어두컴컴한 가운데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을 연상토록 하는 매개물인 조명이 음산한 느낌을 주며 매달려 있다. 어둠 속,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를 보고 있노라면 창밖으로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는 캄캄한 한밤중을 어디로 가는지, 대체 끝은 어디인지 도무지 기약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냥 무심히, 아주 막연히만 달리고 있는 그런 인상마저 보여준다.
제목인 'Time Train'이 말해주는 듯, 기차는 끝도 없는 레일 위를 무수한 시간과 공간 속을 누비며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 아우슈비츠 등 대규모 인종 학살을 자행한 나치 독일과 함께 2차 대전 패전국으로 원자폭탄의 악몽까지를 익숙하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일본 작가가 그 어둔 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독일과 일본 전시를 거쳐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 가지는 이번 전시는 그런 측면에서 상당히 어둡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개념미술(Conceptual Art) 설치작품은 꼭 작가의 의도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작가는 모형 기차 위에 실어놓은 그 자신의 애용물인 점멸하는 LED를 통해 시간과 삶의 순환개념을 무한궤도를 누비는 열차를 통해 공간적으로도 확장하는 다소 철학적인 개념을 제시하고 있지만 관객들은 얼마든지 이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훨씬 더주관적인 감상 체험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인 부분일 수 있다는 거다.
전시회 오픈 전날 저녁 있었던, 프리오픈 행사에서 우연히 만난 한 지인은 이 모형기차가 달리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보며 "기차를 정말 많이 좋아하시는군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솔직히 나 자신도 그런 말을 들는 그때까지 기차가 내게 얼마나 익숙한 오브제인지에 대해 전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열세 살까지 기차역에서 불과 100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 철도 레일 위를 따라 온종일을 거의 무한정 걸어본 기억도 있는 데다, 입시 스트레스가 한창일 때는 역시 비둘기호 완행 열차를 타고 아무 계획도 지니지 않은 채 한나절을 훌쩍 떠나본 적도 있는 나이기에, 단지 요즘은 전혀 볼 수 없게 되어버린 모형 증기기관차가 화차를 잔뜩 끌고서 씩씩하게 달려가는 그 모습만 바라보고 있는 데도 웬지 알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게 되면 그 누군들 기차와 관련한 추억 한 가지쯤 과연 없을까? 작가의 의도야 어떠하건 무슨 상관이랴. 삶과 죽음, 자연의 시공간적인 순환이란 무거운 철학적 주제 따위는 그냥 잊어버리면 또 어떠랴? 그냥 그대로 바라만 보고 있어도 온갖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을... 먼 나라 아우슈비츠의 어두운 기억 따위보다는 내 어린시절 기차와 관련한 스쳐지나가는 아련한 이런 저런 기억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덧붙이는 글 | 전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