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한상률 의혹' 수사로 주목받고 있는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이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청와대와의 교감 하에 이루어졌다"며 '표적 세무조사 의혹'을 제기했다.
<오마이뉴스>에서 입수한 '박연차(태광실업) 조사 관련' 등 2건의 '안원구 문건'에 따르면, 안 전 국장은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BH(청와대의 영문 이니셜)와의 교감 하에 이루어진 조사여서 (세무조사 무마) 로비 시도는 있을 수 있어도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은 지난 2009년 12월 그림강매 혐의로 안 전 국장을 구속할 당시 이러한 문건들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재 검찰(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이 인사청탁용 그림 로비·국세청장 유임 로비 의혹과 함께 태광실업 표적세무조사 의혹도 수사대상에 올려놓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하지만 한 전 청장은 지난 2월 28일 검찰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통상적인 교차 세무조사"라며 '표적 세무조사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교차 세무조사'란 대상기업이 위치한 관할 지방청 대신 다른 지방청에서 진행하는 세무조사를 가리킨다. 지역연고를 둔 기업과 지방청의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실시한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도 "안 전 국장이 '교감'이라는 애매한 단어를 쓴 걸 보면 그의 얘기는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며 "과거 권위주의 정권처럼 청와대가 세무조사를 지시하거나 미리 보고받는 일은 없다"고 '표적 세무조사 의혹'을 일축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때부터 청와대에서 근무해온 이 관계자는 "내가 아는 한 청와대가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지시하거나 그 과정에 개입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세무조사 무마 로비는 있을 수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을 것"<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안원구 문건'은 '박연차(태광실업) 조사관련'과 '한상률 관련 정보'라고 이름 붙여진 2건이다. 이 문건들은 그가 국세청 윗선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던 2009년 5∼6월 이후 작성된 것이다.
먼저 안 전 국장은 '박연차(태광실업) 조사관련' 문건에서 지난 2008년 7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의 '조사라인'을 '한상률(국세청장)-김갑순(서울청장)-조홍희(서울청 조사4국장)' 등을 적시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안 전 국장이 적시한 '조사라인'이 세무조사 이후 모두 영전했다는 점이다. 조홍희 조사4국장은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으로 이동했다가 서울청장을 지낸 뒤 퇴직했고, 그의 밑에서 실무라인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두명의 직원도 각각 지역의 세무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 전 국장은 "실제로는 조사라인에서 김갑순 전 서울청장은 배제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현동 본청 조사국장도 BH(청와대) 보고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들을 조사·보고라인에서 배제한 이유를 이렇게 추정했다.
"이들을 배제했다는 것은 한상률 중심의 핵심라인이 자신들만 알아야 할 내용이 있었거나, 조사내용의 일부가 보고과정에 누락된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지게 만듦."이어 안 전 국장은 태광실업 특별세무조 배경과 관련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서울조사4국장, 본청 조사국장, 서울청장, 본청 차장)을 거쳐 본청장까지 오른 한상률이 새 정부의 신임과 장관 기용을 노리던 중 공을 세워 위치를 확고히 할 목적과 새 정부 주요 인물들과의 연계여부 등을 파악하여 보신용 자료로 쓸 목적으로 조사에 착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전 국장은 "뒷조사를 통해 주요 인물에 대한 자료를 확보해 자신이 필요할 때 보신용으로 쓰는 것이 한상률의 상투적 수법"이라고 덧붙였다.
한 전 청장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11월 전군표 전임 청장의 갑작스러운 낙마로 국세청장에 올랐다. 그러다 정권이 교체되자 한 전 청장은 자신의 유임을 위해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등 정권 실세들을 대상으로 인사청탁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10억 원을 만들어 정권 실세들에게 전달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어 안 전 국장은 "이 조사는 BH(청와대)와의 교감 하에 이루어진 조사여서 (세무조사 무마) 로비 시도는 있을 수 있어도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다만 한상률의 처신 스타일로 추정해 볼 때 무시 못할 특별한 인물이 부탁했다면 오히려 그 사실을 약점으로 확보하여 활용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한 전 청장은 지난 2008년 7월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하면서 그 결과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측도 보고받은 사실 자체를 인정한 상태다. 지난 2009년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우리 쪽 사람 중에도 관련되는 사람이 있겠지만 원칙대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이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정권의 숨은 실세로 통하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게 "형님, 좀 도와주십시오"라며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했다. 이후 천 회장과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이 모여 박 회장을 구명하기 위한 '대책회의'까지 열었다.
안 전 국장이 '추정'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이 문건에 적시한 내용은 그동안 언론보도와 야당의 추적 등을 통해 드러난 내용과 대체로 일치한다.
"한 전 청장이 '2주에 한 번씩 MB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또한, 안 전 국장은 '한상률 관련 정보'라는 문건에서도 거듭 '표적 세무조사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 문건에서 "(문건의 내용은) 한상률과 같이 근무한 국세청 1급들의 대화내용에서 나왔다"고 전제했다.
안 전 국장은 "박연차 조사 시작 당시 본청 조사국장, 서울청장, 서울청 조사4국장 등은 모르는 상태에서 사무관 1명을 데리고 한상률의 직접 기획 하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면서 '본인이 알고 있는 사실'을 이렇게 제시했다.
'- 2008년 7∼8월경 휴가 중에 당시 서울청 세원관리국장이던 본인을 국세청장실로 불러서 박연차 조사에 투입하여 대통령에게 보고 해서 명예를 회복시켜줄 수 있으니 지시하는 임무를 수행하라고 하였음.- 그 후에 베트남 국세청장 한국 방문 시(2008년 8∼9) 구면임을 활용하여 베트남에 있는 박연차의 신발공장 관련계좌를 확보해줄 것을 요청.'특히 안 전 국장은 "한상률 전 청장은 '2주에 한번씩은 대통령님을 독대 보고한다'는 얘기를 하였다"며 "당시에 같은 내용의 얘기를 대구청의 다른 직원에게서도 들은 바 있어서 한상률이 과시하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한 전 청장은 김갑순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장을 배제한 채 조홍희 조사4국장으로부터 세무조사 결과를 보고받았다. 조 국장은 국세청 안에서 '한상률의 오른팔'로 불렸을 정도로 한 전 청장과 가깝다. 이를 바탕으로 한 전 청장은 이 대통령에게 세무조사 결과를 직접 보고했다. '독대'에 가까운 '직접보고'였는데, 이 대통령은 "국세청이 대단하다"고 큰 만족감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그 시작부터 '표적 세무조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관할인 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니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서 재계 600위권의 중소기업인 태광실업을 대상으로 특별세무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심층세무조사를 맡고 있는 일종의 '세무사찰조직'이다.
하지만 조 국장은 지난 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태광실업 세무조사 배경과 관련,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 "모른다", "개별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 "(정치적 고려없이) 기술적으로만 생각했다"고 즉답을 회피했다.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광재·서갑원·정상문 등의 소환조사와 구속으로 이어졌고, 노 전 대통령의 장남인 건호씨와 조카사위인 연철호씨도 수차례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 부부도 소환조사를 받았고, 결국 2008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까지 불러왔다.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배경을 두고 몇 가지 해석이 나왔다. 하나는 촛불집회의 배후로 노 전 대통령을 지목하고 친노진영을 고사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이상득 하명설'이다. '이상득 하명설'은 지난 2009년 4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것이다.
박 의원은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이 한상률 국세청장에게 촛불시위문제와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들의 정치자금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박연차 회장의 관계회사 세무조사를 지시했고, 한 청장은 조사결과를 민정수석실을 통하는 보통의 경우와 달리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 "세무조사 의혹 풀리지 않아... 국정조사 요구할 것"현재 민주당은 '한상률 의혹'을 '한상률 게이트'로 규정하고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 3일 "한 전 청장은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실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며 세무조사 내용에 대한 의혹이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라며 "국회 기획재정위·법제사법위 등에서 국정조사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에게 직보됐다는 '한상률 리스트'와 검찰에 전달됐다는 '한상률 리스트'의 차이는 무엇인지, 당시 대통령 직보에 왜 민정수석은 화를 냈는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억울한 서거가 밝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연차 게이트 일지] 태광실업 세무조사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까지 |
2009년 정치권 안팎을 뒤흔든 '박연차 게이트'의 뿌리는 태광실업 세무조사였다. 검찰은 '한상률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구속했다. 박 회장의 세금탈루 혐의가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확대되면서 '박연차 게이트'라는 이름을 달았다.
[2008년]
5월 서울지검 특수2부, 태광실업의 농협 자회사 휴켐스 헐값 인수 의혹 내사
7월 31일 국세청, 태광실업·정산실업 세무조사 시작
7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 '박연차 대책회의'
9월 노건평씨-추부길 전 홍보기획비서관 회동(세무조사 무마 로비 청탁)
11월 한상률 국세청장, 이명박 대통령게 세무조사 결과 보고
11월 25일 국세청,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탈세 혐의로 검찰 고발 / 대검 중수부 본격 수사 착수
12월 4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 구속: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로비 관련 금품 수수 혐의
12월 8일 검찰, "박연차 회장이 정대근 전 농협 회장에게 건넨 20억원은 세종증권 주식 매각 시세차익의 일부"
12월 10일 대검 중수부, 박연차 회장 소환조사
12월 12일 박연차 회장 구속: 290억원대 세금포탈-정대근 전 농협 회장에 20억원 뇌물공여 혐의
12월 25일 한상률 국세청장, 이상득 의원 측근과 MB 동서 등과 골프회동
12월 29일 검찰, 노무현 전 대통령 15억원 차용증 확보
[2009년]
3월 14일 박연차 회장 정관계 로비 의혹 본격 수사
3월 15일 한상률 전 국세청장 미국으로 출국
3월 19일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구속: 5억원 수수 혐의
3월 20일 송은복 전 김해시장 구속: 3억여원 수수 혐의
3월 21일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 체포: 2억원 수수 혐의 / 이광재 민주당 의원 소환조사
3월 22일 이광재 민주당 의원 2차 소환조사
3월 22일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장인태 전 행자부 2차관 체포 / 추부길 전 비서관 구속: 알선 수재 혐의
3월 25일 박정규 전 수석 구속: 특경가법상 뇌물수수 혐의 / 장인태 전 차관 구속: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3월 26일 이광재 민주당 의원 구속: 박연차 회장 등으로부터 15만달러-2000만원 수수 혐의 / "정계를 떠나겠다" 선언
3월 27일 박진 한나라당 의원 소환조사: 수만달러 수수한 혐의
3월 28일 서갑원 민주당 의원 소환조사: 수만달러 수수한 혐의
3월 30일 서갑원 민주당 의원 2차 소환조사
3월 31일 장인태 전 차관 기소
4월 2일 박정규 전 수석 기소
4월 3일 이정욱 전 원장-송은복 전 시장 기소
4월 6일 박관용 전 국회의장 소환조사(대검 중수부) /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소환조사(대전지검 특수부) / 김덕배 전 열린우리당 의원 체포 / 검찰, 홍콩현지법인 APC 계좌 자료 확보 및 분석 시작
4월 7일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체포: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수억원 수수한 혐의 / 노무현 전 대통령, 개인 홈페이지에 사과문 올려: 권양숙씨 100만 달러 수수 관련 / 김원기 전 국회의장 소환조사 / 박관용 전 국회의장 2차 소환조사
4월 9일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영장기각
4월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조카사위 연철호씨 체포: 500만 달러 수수 혐의 / 이광재 의원 기소 / 강금원 회장 구속 수감: 횡령(266억) 및 조세포탈(16억) 혐의
4월 11일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 비공개 조사(부산지검): 100만 달러 수수 관련 / 노무현 전 대통령 장남 건호씨 귀국
4월 12일 노건호씨 1차 소환조사: 500만 달러 운용 관련 / 연철호씨 석방
4월 13일 연철호씨 2차 소환조사
4월 14일 노건호씨 2차 소환조사 / 연철호씨 3차 소환조사
4월 16일 노건호씨 3차 소환조사
4월 17일 노건호씨 4차 소환조사
4월 19일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긴급 체포 / 검찰 "권양숙씨, 3억원 거짓진술"
4월 20일 노건호씨 5차 소환조사
4월 21일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구속 수감: 뇌물수수(2억) 및 청와대 특수활동비 횡령(10억)
4월 22일 대검 중앙수사부, 노무현 전 대통령에 '서면질의서'(7쪽) 발송
4월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에 '답변서' 제출
4월 26일 검찰, 노무현 전 대통령측에 30일 소환조사 통보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조사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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