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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니(小手尼)는 어린애처럼 손이 작았지만 의술에 뛰어나 애칭으로 붙여준 이름이었다. 일본 황실에서 그림을 보는 신기한 재주가 있었다는 게 납득되지 않았지만, 상감의 예상대로 그녀는 벌써 대비전에 들어와 여장(旅裝)을 푼 상태였다.
두 명의 종자가 뒤를 따르고 여느 사신관 다르게 넉넉한 여유를 풍기고 있었다.

"대비마마, 소인은 의관(醫官)이신 부친을 따라 일본 황실로 몸을 피한 소수니이옵니다."

무슨 일로 일본으로 몸을 피했는진 말하지 않았어도 이미 그녀에 대한 내용은 전해 받은 터였다.

정순왕후는 왜국에서 온 참새 새끼처럼 여린 계집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열여섯쯤으로 뵈는 계집은 깜찍하고 당돌해 여간 당차뵈는 분위기가 있었다.

조선에선 눈을 '마음의 창'이라 하여 상대의 마음을 어렵지 않게 헤아린다. 눈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뱉어낸 말과 달리 흉중에 품은 생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뿐이 아니다. 눈은 마음을 허공으로 띄우는 연(鳶)과 같은 역할을 하니 나랫짓 하는 새의 이름이 붙는 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서봉안(瑞鳳眼)처럼 말이다.

그러나 왜인들은 눈을 '계략의 창'이라 했다. 중국인들의 영향으로 손자(孫子)의 술수를 배우고 마의선사(麻衣禪師)의 상법을 익혀 상대방 농락하길 즐긴다. 그들은 평범한 낯보다 계략이 숨어있는 걸 좋아한다. 그렇기에 웃더라도 기쁘거나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고, 눈물을 흘린다고 슬프거나 애통해서 우는 건 아니다. 그들은 마음을 자유자재로 조정해 상대를 속이는 계략을 즐긴다.

마음을 속이는 '계략의 창'이 있으니 주변의 모든 것도 그것들에게 맞추어 혼란을 가중시킨다. 마루를 '꾀꼬리울음'으로 만드는 게 그것이다. 소수니는 마룻장을 기웃거리는 사내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 한 폭을 내놓았다.

"대비마마, 이 그림을 보옵소서. 왜나라의 도쿠가와(德川) 막부 고택입니다. 이 마루는 한결같이 꾀꼬리울음 구조랍니다."
"꾀꼬리 울음이라, 그런 마루가 있던가?"

"예에, 마마. 마룻장이 흔들리거나 어딘가 빈 곳이 있어 그런 게 아니지요. 마루를 걸으면 삐비빼배 하는 울음소리가 납니다. 거칠게 걸어가면 더 큰 새울음 소리가 나느냐 하면 그도 아니지요. 새 울음소리가 잘 들리는 건 가장 빨리 달릴 땝니다. 도둑이나 자객이 들어와 살금살금 걷는다면 소리의 파장도 약하나 빨리 걸으면 새 울음소리도 빨라집니다. 이게 '꾀꼬리 울음' 구좁니다. 대비마마, 주변이 어수선해 믿을 자가 없을 때엔 이렇게 마루를 고치는 것도 좋으리라 봅니다."

"마루에 관해서라면 추내관이 있으니 걱정할 바 없네. 추내관을 향랑공(響廊公)이라 부르지 않는가."
"향랑공이라니오?"

"중원엔 서시(西施)란 여인이 제왕의 사랑을 얻고자 옹기 묻은 복도 위를 나막신 신고 걸었다는 복도가 있다 들었네. 이곳 대비전에도 나의 수하들만 아는 요대(瑤臺)를 짓고 쓸만한 나인(內人)을 선별해 왔다네. 전임 상선(尙膳)을 지낸 이공수 내관이 자신의 재간을 추내관에게 물려주었으니 궁인을 감별하기 충분하다 하였네. 하니, 안심하게."
"하오면, 안심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수니는 다시 그림 한 장을 넘겼다. 거기엔 여러 모양의 사람들이 제각기 스스로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정순왕후가 그림을 휘둘러 봤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그저 평범한 잡인들의 모습이었다.

"왜나라나 조선이나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건 한 가지 모습입니다. 이들은 그저 하루하루가 편안하면 그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귀천이 있듯 재물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그들의 골격은 편벽되어 교만하고, 성격이 포악한 돼지 눈(猪眼)이지 않습니까. 더욱이 휘하에 두는 사내라면 조심해야 할 자가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자라니?"
"바로 '노루 머리에 쥐의 눈'을 한 장두서목(獐頭鼠目)입니다. 이런 자는 지저분한 일에 끼리끼리 어울리고 세상 사람의 눈치에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어려운 때가 오면 제 한 몸 살자고 날뛸 것이니 결코 가까이 둬선 아니 될 것입니다."

물론 그런 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의리가 박약하고 탐욕스런 노루 코가 있는가 하면 턱이 둥글고 이마가 좁으면 조심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상(相)이다.

일반인이라면 모르되 궐 안 내명부의 가장 윗전인 대비가 상법(相法)에 의지해 사람을 살핀다는 게 옳은 일은 아니라 보았다. 그렇기에 소수니가 내민 화폭의 그림 두 장을 넘기고 나서도 달갑잖은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튀어나온 말도 곱지 않았다.

"자네가 왜국에 온 사신에게 나를 만나 비방을 주고 싶다한 게 이것이었나? 관상이라면 관형찰색(觀形察色)을 살피는 술가가 조선에도 있네."

관형찰색은 한방 의원들이 자주 쓰는 듣고(聞) 묻고(問) 얼굴 색을 살피고(望) 맥을 짚는(切) 네 가지 진단법에서, 이 중 세 번째인 진찰법을 독립시킨 것이다. '관형찰색'은 많은 여인을 상대하고 술(術)을 즐기는 제왕의 용안에 사후(死候)가 깃드는 것이므로 의원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러시겠지요. 소인이 그 같은 말을 한 것은 대비마마께서 상법에 관심 있는지를 살피기 위함이었습니다. 마마의 마음을 알았으니 이제 비방을 일러드리겠습니다."

다시 화폭을 넘기자 거기엔 왜색(倭色)이 풍부한 두 명의 기녀가 반쯤 몸을 드러내 보이며 앉아 있었다. 그 중 한 여인의 손엔 작은 악기가 들려 있었다. 서 있는 여인은 '복숭아 눈(桃花眼)'이었고 악기를 든 쪽은 '비둘기 눈(鴿眼)'이었다.

"소인이 대비마마께 권하고 싶은 여인은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복숭아 눈'과 '비둘기 눈'입니다. '복숭아 눈'은 음탕하나 '비둘기 눈'은 사랑만 찾아다닙니다. 계략으로 쓰기엔 다시없는 여인입니다. 대비마마, 동서고금의 승리자들은 이러한 여인들을 찾아내 훈육을 시키는 걸 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훈육의 방법은 설교가 아니라 계략에 쓸 여인의 몸을 훈련시키는 일이었다. 평소 먹는 것도 가볍게 구분했다.

"지금까지는 배가 고프면 먹었습니다만, 지금은 목표가 있으니 함부로 먹어선 안 됩니다. 봄엔 율무쌀, 여름엔 녹두고(綠豆羔), 가을엔 연육(蓮肉), 겨울엔 낙화생(落花生)을 먹어야 합니다. 제가 조선에 들어오기 전에 대비마마께선 열 네 명의 처녀를 골라놓았다고 했습니다. 장차 왕비가 될 사람이니 명문가의 여식이겠지요. 그러나 나의 계책은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마마, 우선은 상대를 안심시켜야 합니다. 대비전에서 사대부가의 계집을 가려뽑은 건 이 나라 조신이면 누구나 알 일입니다. 그들은 대비마마께서 옳지 않은 일에 사용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점부터 바꾸어 생각해야 합니다."

"허어,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모르겠네."
"열일곱 명의 계집 가운데 정작 전하를 향해 미인계를 쓸 인원은 셋이라 봅니다."

"셋이라?"
"모아놓은 열일곱 명을 모두 미인계로 쓰겠다는 건 아니겠지요?"
"그야 그렇네만···."

"왜국에서도 계집을 이용한 미인계는 왕조마다 써온 걸 볼 수 있습니다만, 제왕을 상대로 쓰는 데엔 등급이 있습니다. 이른바 진선미(眞善美)라는 것이지요. 첫째 등급인 '진(眞)'은 사내에게 가장 이로움을 주는 그릇(鼎)으로 '갓 자란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문>에 의하면 기러기는 수양제안지대자(隨陽鳥雁之大者)라 적고 있다. 한마디로 양(陽)을 따르는 새니 사내에게 첫손을 꼽아 내세울 수 있는 새다. 그게 '진'이다.

"둘째 등급은 '선(善)'으로 '비로소 길이 열렸다'는 걸 나타냅니다. 이것은 월경이 시작돼 사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것으로 '기러기가 길을 찾아 날아갈 수 있다'는 걸 뜻합니다. 그리고 셋째 등급인 '미(美)'에 해당하는 게 '기러기가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어도 출산경험이 없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진선미의 기준이었다. 굳이 문자적으로 쓰면, 첫째가 홍상미판(鴻潒未判)이요, 둘째가 수경이촌(首經已忖)이며, 셋째가 미경산육(未經産育)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등급이지 사내를 손 안에 잡아들이는 몸은 아니었다. 사내들이 좋아하는 몸을 만들려면 당연히 그에 걸맞는 훈련이 따라야 한다. 중원의 책자가 전해진 왜나라엔 은근하고 끈끈한 놀이가 전해졌는데 그것은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였다.

요희의 얼굴 꽃과 같아
이슬을 머금고
옥수(玉樹)의 유광(流光)이
후정(後庭)을 비추네

'옥수후정화'는 남색을 나타낸 것으로 그녀는 그림을 넘기며 뒷말을 넌지시 꺼내들었다.
"이 그림의 하단부에 쓰인 글을 보옵소서. 한때 왜국의 황실을 들쑤신 <첩박명(妾薄命)>의 마지막 글구입니다."

그것은 몸을 던져 계략을 꾸미는 자의 비참한 모습을 그린 내용이었다. '색으로 남을 섬기는 자(以色事他人) 좋은 시절 얼마나 가랴(能得幾時好)'였다.

정순왕후는 혼란이 왔다. 소수니는 대비전에 들어와 이곳에서 훈련시키는 열일곱 명의 여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중 세 여인을 진선미(眞善美)로 가려뽑을 듯 하더니 뒷문치기를 의미하는 '옥수후정화'를 들먹이며 살그머니 웃는 것 아닌가.

'이런, 고약한.'
당장에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는 뜻하지 않은 말들이 흘러나오면서 이상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대비마마, 미인계를 쓰기 위해서는 천하절색의 가인이 있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은 하책(下策)이지요. 당장 실권을 잡아야 하는 촌각을 다투는 경우가 아니면 계략은 음미하듯 써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알아야 상대에 맞는 책략을 쓸 수 있으리라 봅니다. 마마, 마마께선 세 명의 여인만 제가 훈련시킬 수 있도록 하옵시고 나머지는 이 나라를 위해 애 쓰시는 중신들에게 상으로 내리십시오."

"아이들을 상으로 내려요?"
"그렇습니다, 시파든 벽파든 어디에 속했든 상관하지 말고 내리십시오. 또한 상감의 허약한 곳이 뭔지를 알기까지 일체의 행위를 중단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소인이 비방(秘方)을 마련하겠습니다."

[주]
∎향랑공 ; 궁인을 고르는 데 뛰어난 사람
∎상선(尙膳) ; 내관의 가장 우두머리
∎관형찰색(觀形察色) ; 한의사의 진단법


#추리,명탐정,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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