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범죄현장에서 피 묻은 칼 한 자루를 발견하고 그동안 이 현장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종결하려고 하는 수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이즈음이면 천성산 늪 주변, 혹은 계곡의 웅덩이에서 도롱뇽 알을 발견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천성산뿐 아니라 물 대인 논이나 개울, 심지어 서울 도심의 계곡에서도 도롱뇽 알은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 (<중앙>이) 두 번이나 반론 보도를 쓰고 사과까지 했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여전히 사실이 아니다."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이 "천성산은 도롱뇽 알 천지였다"는 <중앙일보> 기사(3월 11일자)에 대해 이와 같이 지적했다. 지율 스님은 13일 언론사에 낸 자료를 통해 "당시 이와 같은 기사가 나갔으면 천성산 문제는 지금과는 퍽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천성산에 도롱뇽은 없고 개구리만 있다고 해놓고는...
천성산 문제는 경부고속철도(대구~부산) 원효터널 공사를 둘러싸고 일어난 논란을 가리킨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금곡리~경남 양산시 웅상읍 평산리 사이 천성산을 관통해 총 13.28km 구간에 걸쳐 터널이 뚫렸고, 2003년 11월부터 공사를 벌여 KTX가 지난해 11월 개통했다.
지율 스님을 비롯한 '천성산대책위'는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주장하며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을 상대로 '천성산터널공사금지가처분소송'(일명 도롱뇽 소송)을 냈다. 도롱뇽을 소송 주체로 했는데, 1심, 2심, 대법원에서 모두 원고 패소했다.
천성산대책위는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대표적으로 도롱뇽을 내세웠다. 도롱뇽은 법적보호동식물이다. 천성산대책위는 천성산에 도롱뇽이 지천으로 서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측은 도롱뇽이 없다고 했다.
1994년 나온 환경영향평가서에 보면 양서·파충류 가운데 개구리만 있고 도롱뇽은 없다고 했으며, 문제 제기 뒤 한국지질학회에서 2003년에 낸 보고서에도 양서류는 개구리만 조사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당시 보수 언론들은 천성산에 도롱뇽이 지천으로 있다는 천성산대책위의 주장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또 보수 언론들은 도롱뇽소송과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주장하며 벌인 지율 스님의 단식 등으로 공사가 지연되었다며 공사 중단 등으로 '2조5000억 원 손실'을 주장하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 뒤 상당수 언론사들이 이 보도가 잘못됐다며 '정정보도'를 했다. <중앙일보>도 두 차례(2008년 9월 26일, 2009년 6월 6일) 정정보도를 하며 "지율 스님께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중앙일보 "천성산은 도롱뇽 알 천지였다"
그러나 보수 언론들은 그후로도 '천성산 문제'를 사례로 들면서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환경단체의 반대는 잘못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번에 <중앙>도 "천성산은 도롱뇽 알 천지였다"라고 보도하면서, 인천국제공항, 사패산터널, 통영케이블카, 새만금사업, 4대강사업을 사례로 들었다.
<중앙>은 "2004년 도롱뇽 보호를 이유로 지율 스님이 단식까지 하며 KTX 터널공사의 중단을 요구했던 천성산.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1월 KTX 천성산 터널이 완공되어 고속열차가 질주하지만 올봄 천성산의 늪 풍경은 여느 해와 다름없다"면서 "천성산 대성늪 물속에 10일 도롱뇽 알들이 도르르 말린 고추모양으로 주렁주렁 달려 있다"고 보도했다.
또 이 신문은 "KTX가 지나는 원효터널 위 해발 750m에 위치한 밀밭 늪. 여기저기 움푹 팬 웅덩이마다 봄의 전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롱뇽 알 천지다. 기다란 알 주머니 아래 도롱뇽이 느릿느릿 헤엄친다"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터널공사 발파음에도, 질주하는 KTX 굉음에도 도롱뇽은 계속 번식하면서 자신의 세대를 늘려가고 있었다. 자연의 놀라운 생명력이고 자생력이다"고 보도했다.
<중앙>은 "도롱뇽과 개구리가 짝짓기를 마친 웅덩이 위로 이름 모를 적갈색 나비도 짝을 찾아 날고 있었다. 마치 인간의 자연에 대한 무지(無知)와 아집(我執)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대한민국이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도롱뇽 파동은 허무하게 종말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중앙>은 사설에서도 이 문제를 언급했다. 이 신문은 사설 '천성산 도롱뇽이 주는 교훈'에서 "지율 스님이 '도롱뇽의 친구들'로 자처하며 공사를 집요하게 방해했지만, 우려했던 생태계 파괴는 기우(杞憂)로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역시 '지율 스님은 천성산 도롱뇽 알 보고 무슨 생각할까'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지율 스님 "터널공사 전후 지하수 유출 조사 해야"
지율 스님은 줄기차게 천성산에 도롱뇽이 살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도롱뇽소송' 1심 재판부인 울산지방법원 민사10부가 2003년 12월 15일 천성산 화엄늪에서 현장검증을 벌였는데, 그 때도 지율 스님과 원고측 이동준 변호사는 "늪에 도롱뇽이 살고 있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지율 스님은 당시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지적하면서 "천지에 널려있던 도롱뇽 알도 보지 못한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라고 물었다. 지율 스님은 "도롱뇽은 두 번에 걸쳐 진행 된 환경영향평가에서 누락된 환경 지표종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천성산의 화두는 중앙일보 기사 표제처럼 천지에 널려있는 도롱뇽 알도 보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더구나 환경영향 평가서에 도롱뇽은 물론 천성산에 살고 있는 30여 종의 법적보호동식물이 단 한 종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고, 람사 습지인 무제치늪과 화엄늪도 전혀 기록에 없었다"면서 "그러하기에 당시 이와 같은 기사가 나갔으면 천성산 문제는 지금과는 퍽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서는 질문이지 답이 아니다"고 한 지율 스님은 "문제는 그 흔한 도롱뇽도 보지 못한 환경영향평가에 있었지만 그들은 질문이 무엇인지 모른 채, 지난 10년 동안 그러했듯이 산을 오르기 전부터 설정되어 있던 한 방향을 바라보며 몇 시간 동안 산을 걸어 올라가 도롱뇽 사진을 찍고, 몇 시간 동안 인터넷을 뒤적거린 뒤 기사를 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율 스님은 "만일 천성산 환경 문제에 대하여 기사를 쓰려한다면 도롱뇽 알 사진이 아니라 적어도 24곳의 습지 지표수 변화의 모니터링 조사 결과나 12계곡 수량의 증감 관계를 알 수 있는 정리된 수치의 자료가 나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율 스님은 이어 "천성산의 지하수 유출관계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자료는 공사 중, 그리고 공사가 끝난 후 지하수가 유출된 현황을 알 수 있는 오폐수 관리 대장일 것"이라며 "그러나 오폐수 관리대장은 사실조회 과정에서 비공개 처리되고 있는 사안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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