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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운영, 그림 같은 일이 아닙니다

 

헤이리 9번게이트에서 내리막길을 300미터쯤 내려오면 좌측 산자락에 겸손하게 몸을 묻은 3층 건물이 있습니다. 헤이리 솔마을의 그 건물의 1, 2층에 갤러리퍼즈(Gallery Puss)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1층에는 아트샵, 2층에는 갤러리로 운영되는 '갤러리퍼즈'는 2009년 6월 21일 첫 개관전을 한 이래 2주마다 전시를 바꾸어 거는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갤러리퍼즈는 헤이리의 여러 갤러리 중에서도 색다른 점이 여럿 있습니다.

 

첫째는 두 도예가가 운영하는 도예전문 갤러리라는 점입니다. 갤러리퍼즈의 운영을 맡고 있는 두 분, 홍승호, 이은정 선생님은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여전히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예가의 안목으로 작가와 작품을 정선합니다.

 

 버려진 사소한 물건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이은정작가의 작품들. 이 작가는 약병, 카세트테이프, 플라스틱 컵, 골프공, 전구 등 쓰임을 다하고 폐기된 하찮은 것들을 캐스팅하여 정교하게 도자기로 되살려냅니다. 이 작가는 모자람이 없는 풍요의 시대에 우리가 간직해야할 소중한 것들에 대해 발언하고 싶어 합니다.
버려진 사소한 물건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이은정작가의 작품들. 이 작가는 약병, 카세트테이프, 플라스틱 컵, 골프공, 전구 등 쓰임을 다하고 폐기된 하찮은 것들을 캐스팅하여 정교하게 도자기로 되살려냅니다. 이 작가는 모자람이 없는 풍요의 시대에 우리가 간직해야할 소중한 것들에 대해 발언하고 싶어 합니다. ⓒ 이안수

 

둘째는 두 도예가가 교대로 책임전시기획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기획을 이어나간다는 것이 아무나 넘볼 일이 결코 아닙니다. 소위 '팔리는 작가'들을 이미 전속으로 묶어둔 유명갤러리와는 달리 수많은 신생갤러리들이 개관 당시의 열정을 1, 2년 뒤까지 계속 이어가기가 어려운 이유입니다.

 

셋째는 꼬박꼬박 2주마다 전시를 바꾸어 건다는 것입니다. 한 번의 전시기획에 소비되는 기획비용과 품을 생각하면 신생의 작은 갤러리로서는 결코 싶지 않은 일입니다. 더구나 서울의 갤러리 밀집지역과는 달리 아직 전문컬렉터가 지속적으로 찾는 환경이 확립되지 못한 덜 익은 환경 속에서라면 전시를 지속적으로 바꾸는 이 일이 특별한 철학을 가진 열정에 기대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넷째는 공간을 임대해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더 크고 화려한 공간의 소유주이며, 더 오랜 연륜의 상업 화랑의 갤러리스트Gallerist들도 통성痛聲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 갤러리의 임대비까지 부담해야하는 입장의 어려움은 눈앞에 타고 있는 불을 보듯 적력的歷한 것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갤러리퍼즈는 다른 갤러리의 기획에도 솔선해서 손을 보태는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즘 많은 사람이들이 갤러리에서 작품과 일할 수 있는 '그림같은 직업'으로 여기고 있는  큐레이터와 갤러리리스트가 감당해야하는 일이 실제 결코 그림 같은 일만이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갤러리의 봄은 언제 오는가

 

지난 3월 1일 이은정선생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봄기운 담은 새로운 전시를 오늘 오픈합니다. 계룡산에서 작가들도 오시니 시간되시면 얼굴 뵈어주세요."

 

전시 오프닝의 초대전화였습니다. 저는 오프닝 당일, 휴일을 맞아 모티프원을 찾아오신 분들이 적지않아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필리핀으로 출국하기 전에 처와 함께 잠시 퍼즈에 들렸습니다.

 

홍승호 관장께서는 다섯작가 연합전인 '계룡산의 봄'이라는 전시의 한 작품도 빠짐없이 작품하나하나가 얼마나 힘겨운 과정을 거쳐 태어났으며 그 작가의 산고를 담보한 작품들이 얼마나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인가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다섯 작가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내심 무엇보다도 아직도 명백하게 열정이 조금도 식지 않은 그 모습이 안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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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작품 관람을 마치고 1층 아트샵에서, 지난겨울을 이길 수 있었던 좋은 차가 있다며 구태여 의자에 저희 부부를 앉혔습니다. 찻물이 끓을 동안 이은정선생님을 모셔왔습니다.

큼직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었습니다. 홍승호 관장님이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제 새벽까지 작품 디스플레이를 하고 어제 오프닝 후 작가들과 다시 밤늦게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틀 밤낮을 무리한 탓에 몸이 많이 상했나봅니다. 그래서 차에서 잠시 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큼직한 선글래스로 수척해진 얼굴을 가리고 차에서 몸을 쉬어야하는 이 작가의 모습이 애석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분들이 몸을 상해가며 도달하고자하는 목표와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구태여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세상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라도 박수쳐주고 싶었습니다. 도토陶土가 1300도의 불길을 만나면 전혀 다른 모습의 순수로 남듯 설혹 그들의 목표가 무엇이더라도 이런 열정으로 소성하면 순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홍승호 갤러리퍼즈 관장님과 큼직한 선글라스를 끼고 모습을 보인 이은정선생님. 선글라스를 낀 이유가 '멋'이 아니라 무리한 노동으로 인한 발병을 감추기 위함이라니…….
홍승호 갤러리퍼즈 관장님과 큼직한 선글라스를 끼고 모습을 보인 이은정선생님. 선글라스를 낀 이유가 '멋'이 아니라 무리한 노동으로 인한 발병을 감추기 위함이라니……. ⓒ 이안수

 

퍼즐은 조각들이 함께 함으로 마침내 완성될 수 있다

 

퍼즐은 홀로 존재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 조각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면 드디어 조화로운 한 그림이 만들어집니다. 이어서 맞추어야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퍼즐처럼 흙을 만지는 험한 예술노동자들과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도예가들을 격려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도예 갤러리의 문을 연 갤러리퍼즈를 지날 때 마다 저는 이 갤러리를 향한 연모戀慕의 정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헤이리에서 갤러리를 운영한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고초를 전제로 해야 합니다. 외진 시골에서 작품을 팔아서 공간을 운영한다는 것이 결코 녹녹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헤이리에 가장 먼저 생긴 갤러리가 도예갤러리였습니다. 한향림갤러리가 그것입니다. 도예전문갤러리로서의 사명감으로 활발하게 기획전시를 펼치던 그 갤러리가 한향림옹기박물관으로 기능을 전문화하면서 갤러리기능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테이블웨어 공모전'까지 개최하며 비빌 언덕을 찾는 신진 도예가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한향림갤러리가 기능을 전환하면서 저는 내심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헤이리에서의 도예전문갤러리 운영이 정착되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될까, 하는 의구심이었지요. 갤러리퍼즈가 고마운 것은 공백 없이 도예전문갤러리를 이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예술가가 갤러리 없이 작품을 지속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것은 갤러리를 통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을 통해 그들은 쌀을 사고 다음 작품을 이어갈 힘을 얻습니다. 일군의 도예가들이 계룡산속에서도 흙을 만지며 자신들의 세계를 계속 탐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갤러리퍼즈는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에도 발길이 끊긴 갤러리의 문을 계속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눈길을 걸으면서도 불 켜진 그 갤러리를 보면 홍성호, 이은정 선생님이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한없이 고마운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홍성호관장님이 내온 차를 마시며 고개를 들어 시선을 창밖 노을동산으로 가져가다가 1층 아트샵의 출입문위에 붙여진 '立春大吉 萬事如意亨通(입춘대길 만사여의형통)'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입춘날에 붙여놓은 입춘축
입춘날에 붙여놓은 입춘축 ⓒ 이안수

 

올해 2월, 입춘날에 붙여놓은 입춘축立春祝이었습니다. 이 춘첩에 담은 소망처럼 헤이리의 봄과 함께 이 갤러리에도 봄이 가득 밀려와서 더 좋은 전시가 어려움 없이 계속될 수 있었으면 싶습니다. 

 

 

 갤러리퍼즈의 기획전 '계룡산의 봄'
갤러리퍼즈의 기획전 '계룡산의 봄' ⓒ 이안수

작년 봄의 초입에 있었던 첫 번째 전시에 이어 계룡산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도예가들을 모시는 두 번째 전시입니다.

 

임희승, 최홍일, 박정우, 양미숙, 송인길 작가는 계룡산이라는 곳에 함께 지역적 기반을 두고 있지만 각기 하는 작업은 모두 다릅니다. 접시와 화기를 만들기도 하고 분청항아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가스 가마를 사용하기도 하고 장작 가마에 직접을 불을 붙여 작품을 만들기도 합니다.

 

다섯 작가가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박한 이야기가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장소 | 갤러리퍼즈

기간 | 2011.3.1 _ 3. 19

문의 | 031_942_4377, 010_5100_7602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www.travelog.co.kr)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갤러리퍼즈#홍승호#이은정#계룡산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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