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회주의' 발언 후폭풍이 여전하다. 일본 대지진의 뉴스 쓰나미(?) 속에서도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일 이 회장의 발언 이후, 11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삼성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이 때문에 이익공유제를 둘러싼 파문은 더욱 커졌다.
14일에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가세했다. 특히 이 회장의 현 정부 경제성적에 대한 인색한 평가를 두고, 윤 장관은 "매우 실망스럽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윤증현 장관의 그동안 어법을 생각하면, 상당히 센 발언이다.
게다가 보수신문의 대표격인 <조선일보>까지도 이 회장 발언을 두고 "지나치게 나갔다", "헤프게 이야기를 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삼성은 이 회장 발언이 와전됐다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회장은 자신의 말 한마디로 진보 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와 보수언론으로부터 대놓고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정운찬에 이어 윤증현 장관, "대기업 총수 발언 실망"윤증현 장관의 이 회장에 대한 비판은 14일 국회에서 나왔다. 당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윤 장관을 상대로 일본대지진이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열렸다.
이날 여야 의원들은 대지진 사태와 함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윤 장관에게 물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이 정부의 의견을 묻자, "경제학적으로 보면, 대기업이 여러 중소기업을 상대로 하는 수요 독점의 폐해를 시정하고, 공정거래 여건을 조성하자는 취지"라고 윤 장관은 답했다. '(이익공유제에 대해) 경제학 책에서 본 적 없다'는 이 회장의 발언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어 대기업이 중소기업 업종을 침범하는 것에 대해서도, 윤 장관은 "일부 시장에서는 그런(침범하는) 현상이 있어, 정부가 나서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자제하도록 독려하고 있지만, 아직 원만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윤 장관은 이 회장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낙제점은 아니다"라며 인색한 평가를 내린 것을 두고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강길부 한나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윤 장관은 "당혹스럽고,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의 정책 지원을 받은 유수의 대기업 총수가 낙제점수를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프다"면서 "어떻게 이런 인식을 가졌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윤 장관은 또 "그간 경제선진화, 기업환경 개선을 위해 우리 경제팀은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본다"면서 "고작 낙제를 면할 정도의 경제정책을 구사하는 정부의 나라에서 글로벌 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지, 기업 구성원만으로 정부 발전과 관계없이 (기업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9년 재정부 장관에 취임한 이후 신중한 어법을 써왔던 것을 감안하면, 윤 장관의 이날 비판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강도 역시 높았다.
이정우 "순수히 자본주의적 제도", 김상조-전성인 "왜 색칠부터 하나"초과이익공유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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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위원장이 제안한 초과이익공유제는 한마디로 대기업이 거둔 초과 이익 가운데 일부를 생산에 기여한 중소하청 기업에도 나눠주자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지난 2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양극화를 해소하고,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위해 대기업의 초과이익 일부를 중소 협력업체의 생산성 향상과 기술개발, 고용안정을 위해 쓰자는 것"이라며,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또 이미 삼성그룹에서 연말에 임직원들에게 보너스 형식으로 주고 있는 프라핏 셰어링(Profit Sharing, 성과배분제)나, 포스코 등이 시행하고 있고 있는 베네핏 셰어링(Bnefit Sharing, 성과공유제) 등과 유사하다. 포스코의 성과공유제는 협력업체가 신기술 개발 등으로 대기업의 원가가 줄었들었을 때, 절감액의 일부를 해당 업체에게 되돌려주는 제도다.
정 위원장은 "경영자, 노동자, 협력업체가 공동의 노력으로 달성한 초과이익이라면 협력업체에도 그 성과의 일부가 돌아가도록 하자는 성과공유제의 일종"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방법은 정부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협력업체와 배분 등의 규모를 정하도록 한다. 대신 정부는 이를 잘 따르는 기업들에게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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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함께,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경북대 경제학 교수)은 14일치 <한겨레>에서 "이익공유제는 엄연히 경제학 책에 나오는 개념"이라며 "이는 회사에서 발생한 이익을 자본가나 경영자가 몽땅 가져가지 않고, 그 일부를 노동자와 나누는 것을 말한다. 사회주의와는 상관이 없고, 순수히 자본주의적 제도"라고 강조했다.
이 전 실장은 특히 "이 제도가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의심받는데, 실은 사회주의와는 정반대"라며 "실제 구 소련에서 어떤 회사가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을 올린 경우에 계획당국은 그 다음해 생산 할당량을 높임으로써 기술혁신 인센티브를 말살했고, 그것이 사회주의의 몰락의 한 원인이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기득권층에서 조금만 색다른 이야기만 나오면 '좌파', '사회주의'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이 거의 버릇처럼 돼 버렸다"면서 "중소기업은 강제적 납품단가 인하, 다른 대기업과의 계약방해, 신기술 탈취 등 대기업 횡포아래 신음하고 있다"고 적었다.
정운찬 위원장의 제자그룹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와 전성인 홍익대 교수 등 진보진영 학자들도 마찬가지.
김 교수는 지난 8일치 <경향신문> 칼럼에서, "특정 대기업을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면서 "업종별 특성에 따라 기업이 도입과 시행방식을 자율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적었다. 이어 "한두 개 대기업이 성공모델을 만들어 내면, 다른 기업들도 이를 모방, 수정하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더 좋은 방식 있으면 제안하면 되는데, 왜 보수진영은 색깔부터 칠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전성인 교수도 지난 10일치 <매일경제> 기고에서 "우리 대기업들은 수많은 하도급 중소기업을 거느리고 있고,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기여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문제는 고정 대가 방식으로는 이런 의욕을 제대로 고취시킬 수 없다는 점"이라며 "여기에 초과이익공유제가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조선>마저 "너무나 헤프게 이야기해"... 당혹스러운 삼성진보진영 학자들의 비판과 함께, 보수언론 가운데서도 <조선일보>의 비판도 눈에 띈다. <조선일보>는 지난 12일치 '이익공유제 둘러싼 빈말과 지나친 말'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익공유제는) 기업의 이익 잉여금이나 주주들 몫을 강제로 빼앗아 협력업체와 근로자들에게 분배하겠다는 내용이 아니다"고 썼다.
이어 "누구나 조금만 주위를 둘러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에 빈부격차가 극명하게 갈라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목격할 수 있다"면서 "이익공유제가 등장한 현실적 배경이 이런데도 공산주의 말까지 등장시킨 것은 조금 지나치게 나갔다"고 적었다. 이건희 회장의 '공산주의' 발언을 에둘러서 비판한 것이다.
<조선> 사설은 특히 워런 버핏 회장이 "나같은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가난한 자들에게는 감세를, 이것이 부자인 내가 정부에 보내는 긴급한 요청"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물론 신문은 정 위원장의 설익은 정책 발표에 대한 따끔한 지적과 함께, "정 위원장이나 이 회장이나 자신들의 말이 불러올 파장을 헤아리지 않은 채 너무 헤프게 이야기한다는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신문의 김기천 논설위원은 15일치 <태평로> 칼럼에서, 이익공유제의 애매한 개념을 비판하면서도,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사회주의적 발상 운운하는 것도 지나친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특히 "정부가 작년말 조세특례기준법을 바꿔, 대기업이 협력업체의 연구, 인력개발, 생산성향상 등을 지원하기 위해 대중소기업 협력재단의 동반성장기금에 출연하는 돈 7%를 법인세에서 공제해 주기로 했다"고 소개하고, "정 위원장의 구상과 별로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동반성장기금 출연에 대한 세제혜택 방침을 밝혔을 때는 잠자코 있던 재계가 정 위원장의 제안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삼성쪽은 이번 논란이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자, 부담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이 회장의 정부 경제정책 평가 발언에 대해선 "이 회장 특유의 화법일 뿐"이라며, 해명하느라 바쁘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은 그동안 칭찬보다는 늘상 위기의식을 강조해 왔다"면서 "이번 경제성적에 대한 답변도 현 정부가 과거보다 성장해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해석해 달라"고 말했다.
이익공유제 논란에 대해서도, 삼성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은 그동안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위한 시스템 장착 등 개선 노력을 꾸준히 해 왔다"면서 "(정부가 나서) 대놓고 기업 이익을 직접 나눠주라고 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지 않느냐"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