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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옷섶에서
가만히 내어주신 선물
싸고 싸고 또 싸서
보드러이 감초아 두셨던
옥비녀!

파릇 산듯 눈부실 그 빛
조름낀 눈이 총명스레 밝아집니다.
말없는 이 비녀
어느 날 내 머리에 꽃으리까?

- 모윤숙 시 <옥비녀> 중에서

"엄마도 파마머리 하란 말이야!"

돌아가신 어머니는 비녀머리를 좋아하셨다. 파마머리를 하셨다가도 이내 푸시고 비녀머리하고 계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집 안에서도 비녀머리에 어울리는, 불편한 한복을 입고 계셨던 것이다. 이런 어머니의 화장대 서랍 속에는 별의별 비녀가 다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낳으신 나이는 40대 중반. 그래서 어머니와 나의 나이 차이는 너무 많아서, 초등학교 시절에 어쩌다 어머니께서 학교에 찾아오시면 내 친구들은 "너희 할머니니?" 하고 물어볼 정도였다.

어린 나는 어머니가 늙어 보이는 것이 비녀머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의 비녀머리를 너무 싫어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엄마도 다른 엄마처럼 파마머리 하란 말이야. 할머니 같다 말이야"하고 졸라대곤 했다. 그러나 세월이 이만큼 흘러 생각하니, 단아한 은비녀를 쪽진 어머니의 모습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없는 것이다.

 단란했던 한때. 오른쪽 끝에 앉은, 하얀 저고리에 비녀머리를 한 이가 나의 어머니다.
단란했던 한때. 오른쪽 끝에 앉은, 하얀 저고리에 비녀머리를 한 이가 나의 어머니다. ⓒ 송유미


요즘 같은 봄날(보릿고개 시절의 봄)이었지 싶다. 어머니 바깥에 일 보러 나가시고 개구쟁이 남동생이 그만 어머니 화장대 서랍 속에 있는 비녀(은비녀인지 구리비녀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를 몇 개나 가지고 나가 엿장수에게 엿을 바꾸어왔다. 그런데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철부지 어린 동생이 가지고 나타난 그 엿을 아무 생각도 없이 맛나게 나누어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야 어머니께서 돌아오셔서 얼마나 어처구니없어 하셨던지, 잘 드시는 회초리도 들지 않고 멍하니 우리 남매의 얼굴만 쳐다보시던 그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이 지금에야 찡한 가난처럼 다가온다.

어머니 금비녀가 내 학비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는 돌아가실 무렵에도 비녀머리를 고수하셨는데, 점점 머리숱이 적어지면서 비녀가 힘없이 흘러내릴 때면, 놋숟가락을 비녀 대신 꽂고 계시던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새삼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의 비녀는 장식품 이상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 입학금이 엄청 모자라 어머니가 여기저기 돈을 빌리시다가 아끼시던 장롱 속의 금비녀를 꺼내 파셨다. 그 금비녀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남기신 유품이셨는데 말이다.

가세가 기울어가면서 어머니의 비녀 숫자는 더 적어지고 어머니가 아끼시던 옥비녀와 은비녀, 금비녀들은 계속해서 우리 남매들의 학비가 돼갔다. 어려울 때 전당포에 맡기셨다가 제날짜에 찾지 못해, 결국 그 많던 어머니 비녀는 하나둘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열세 살의 나는 어머니께 약속을 했다. "엄마, 내가 이다음에 돈 잘 벌면 더 멋지고 큰 금비녀 사 드릴게요" 하고 말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금비녀의 약속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가시고 마신 것이다. 그래서 효도는 살아생전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영화 <집으로...>의 한 장면. 어머니에게는 은비녀, 옥비녀, 칠보비녀 등 비녀가 많았지만, 나이가 많이 드셔서는 숟가락 비녀를 편해하셨다.
영화 <집으로...>의 한 장면. 어머니에게는 은비녀, 옥비녀, 칠보비녀 등 비녀가 많았지만, 나이가 많이 드셔서는 숟가락 비녀를 편해하셨다. ⓒ 튜브픽처스

요즘은 나이가 아무리 많은 할머니라도 비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비녀 머리만큼 한국 여인에게 어울리는 머리형이 있을까 싶다. 나의 어머니는 옛날 분. 그래서 늘 조선 여인의 매력은 비녀에 있다고 생각하고 사셨다.

그래서 항상 새벽에 일찍 일어나시면 맨 처음 하시는 일이 세수하고 머리 빗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가 나들이할 때면 그 곁에 바싹 다가앉아 어머니가 머리 빗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했다.

어머니의 머리 빗기, 마음 빗기

어머니의 머리 빗는 일은 성스러운 의식 같았다. 긴 머리카락이 흐르지 않게 하얀 종이나 신문지, 혹은 보자기를 넓게 펴 놓고 긴 삼단 머리채를 풀어 얼레빗 참빗 등으로 번갈아가며 오랜 시간 거울 앞에서 빗으셨다. 그렇게 빗은 머리를 정성 들여 땋아 단단히 쪽진 후에, 그날 나들이의 성격에 맞는 비녀를 찾아 찌르시곤 했다.

그래서 항상 화장대 위에는 머리에 바르는 기름(동백기름)이 있었고, 긴 머리를 곱게 빗기 위해 빗도 참 다양하게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항상 머리가 단정해야 마음이 깨끗하고 단정해진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으면 어머니 시집올 때 가지고 오셨다는 오래된 나무 화장대의 서랍 속에는 옥비녀, 은비녀, 나무비녀, 구리비녀, 칠보비녀 등 갖가지 비녀와 한복 장신구가 가득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우리네 여인들은 계절에 따라서 그리고 모임의 장소에 따라 머리 모양에 맞게 비녀를 사용했다고 한다. 2월에는 모란잠(비녀 머리에 모란꽃을 새긴 비녀), 3월부터 9월까지는 은매죽잠, 10월에는 용잠을 꽂았다고 한다.

꽃이 피는 환한 이 봄의 나들이에는 한 번쯤은 양장보다 한복을 입어야겠다. 푸석한 파마머리를 풀고 단아한 비녀 머리를 하고서 어머니의 산소에 다녀와야겠다. 어머니 산소 가는 길에는 흥얼흥얼 어머니 좋아하시던 백년설의 <찔레꽃> 노래가 내 입가에서 절로 흘러나올 것도 같다.

돌아가신 어머니,
거울 속에서 삼단 머리채 빗습니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눈부신 햇빛 올올이 빗습니다.
어느 해 모진 보릿고개를 이기기 위해
싹둑 자른 삼단 머리채와 바꾼
쌀 한 되로 가마솥에 밥을 안쳐놓고
그 삭발한 머리 흰 수건에 감추고
뒤주 놓인 대청마루에서
흩어진 하얀 햇살 한올 주워서 내게 보이십니다.
(얘야, 이렇게 하얗고 긴 머리카락이 누구 것이냐?)
오래 오래 촘촘한 참빗으로 
삼단채 머리 빗어 은비녀 꽂은 어머니 
아득한 봄날처럼 멀어져 갑니다.

- 송유미 시 <머리 빗는 어머니>


#비녀#하얀 저고리#어머니#말기#빗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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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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