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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가장 물이 많이 빠진다는 음력 2월 영등시를 맞아 화양면 이목에서 한 아낙네가 키조개(게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중 가장 물이 많이 빠진다는 음력 2월 영등시를 맞아 화양면 이목에서 한 아낙네가 키조개(게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심명남

봄비가 주룩주룩 바닷물 위로 내려 앉습니다. 갯가에 조개를 파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분주합니다.

 

"아~아,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오늘과 내일 이틀간 마을 앞 양식장에 영을 트니 주민 여러분께서는 맘껏 조개를 캐시기 바랍니다. 이상 마을 어촌계에서 알려드렸습니다."

 

방송을 타고 마을 어촌계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마을 어촌계장은 일 년 중 물이 가장 많이 빠진다는 2월 영등시를 맞아 조개를 캐라는 방송을 합니다. 현장용어로 마을에 조개잡이 영(領)을 튼 것입니다.

 

음력 2월 영등시는 어촌에서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현상을 일컷습니다. 특히 여수는 국내에서 모세의 기적이라는 불리는 공룡섬 사도의 영등시 갯마을 체험행사로 유명하죠. 사도와 가까운 이곳 역시 연등시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 어촌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이목에서 캔 조개들 좌측 위,아래(백합과 개맛) 우측 위,아래(새조개 껍질과 알맹이)
이목에서 캔 조개들 좌측 위,아래(백합과 개맛) 우측 위,아래(새조개 껍질과 알맹이) ⓒ 심명남

"영등시에 찾아온 슈퍼문 신기하네!"

 

지난 20일 국내에서 19년 만에 관측된 슈퍼문(Super Moon)으로 '슈퍼문 재앙설'이 관심을 끈 가운데 이곳 어촌마을에서 슈퍼문의 신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곳 바닷물이 예전 영등시보다 눈에 띄게 물 빠짐 현상이 많이 일어난 것입니다.  밀물과 썰물은 지구와 달의 인력으로 조수간만의 차가 생기고 이로인해 물이 빠지고 들기를 반복하는 현상입니다. 올해는 그 여느 해보다 썰물이 많이 빠져 바닥을 덜렁 드러낸 갯벌은 슈퍼문의 영향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슈퍼문<관련기사>은 달의 중심과 지구 중심사이의 거리가 평소(38만km)보다 3만km 가량 가까워져 지구에서 가장 큰 달(Super Moon)을 볼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론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일 오전 4시 10분부터 16분 사이에 가장 큰 달을 관측할 수 있다고 보도되어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후 누리꾼 사이에는 인도네시아 쓰나미나 호주 다윈 지역사이클론이 쓰나미가 발생하기 전 슈퍼문이 일어났고, 일본에서 발생된 대지진과 맞물려 슈퍼문이 대재앙의 전조가 아니었냐는 논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흥미를 끕니다. 만에 하나 우리도 발생가능한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공교롭게도 슈퍼문과 영등시가 맞물린 물때는 20일(8물)입니다.

 

화양면 이목리 구미와 신기마을 사람들은 양식장을 따로 관리하지만 이틀에 걸쳐 동시에 영을 텃습니다. 영등시 맞이 스페셜 이벤트인 셈입니다. 어촌계에서 공동으로 양식장을 관리하는 탓에 이곳은 일년에 딱 2~3번 조개를 파는데 그날이 바로 어제와 오늘(21일)인 것입니다.

 

200여 명이 몰린 마을 사람들은 한 손에는 호미와 다른 한 손에는 그릇을 걸치고 조개를 캐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때를 놓칠세라 바로 갯가로 달려갔습니다.

 

 마을 주민 이영춘(이목 신기 53세)씨가 채취한 백합을 들어 보이고 있다.
마을 주민 이영춘(이목 신기 53세)씨가 채취한 백합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심명남
 손이 날래 이 마을에서 조개캐기 달인으로 소문난 한 아낙네가 키조개를 캐고있다.
손이 날래 이 마을에서 조개캐기 달인으로 소문난 한 아낙네가 키조개를 캐고있다. ⓒ 심명남

"이번 영등시는 물이 엄청났어요, 이 바구(바위)위로 배가 댕기는(다니는) 뱃길인데 물이 다 빠진것 좀 봐요, 이 갱본(갯가)이 이래뵈도 엄청 건 갱본입니다"

 

영등시로 평소보다 물 빠짐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이영춘(이목 신기 53세)씨는 갯벌에서 막 파온 백합을 들어 보이며 이곳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소라를 잡은 할머니가 사진을 찍자 쑥스러워 하고 있다.
소라를 잡은 할머니가 사진을 찍자 쑥스러워 하고 있다. ⓒ 심명남

허리가 구부러진 팔순의 할머니는 조개를 캐다가 찰칵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랍니다.

 

"할머니 많이 캐셨어요?"

"오늘 개맛은 팠는디 새조개는 꼴로 못 봤어."

"이쁜 사람이나 찍지 나 같이 늙은이를 뭐 하러 찍어?"

 

오염되지 않는 천연갯벌과 모래는 조개들이 살기 좋은 어족자원의 보고입니다. 이곳 갯벌에서는 키조개(게지), 개불, 개맛, 고막, 새조개, 반지락, 그리고 나데기라 불리는 백합이 주로 채취되었습니다.

 

어패류 캐는 법을 공개합니다

 

 새조개를 캐고 있는 어촌 사람들
새조개를 캐고 있는 어촌 사람들 ⓒ 심명남

개조개와 개불을 파는 요령은 비슷합니다. 둘은 뻘 밭에서 주로 흔적을 남깁니다. 구멍이 뽕글뽕글 나있거나 빨판격인 입이 두 개가 나와 있습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사정없이 뻘 속으로 들어가 버리지요.

 

하지만 새조개는 다릅니다. 생김새가 새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요즘에는 새조개가 귀해 40kg에 약 80만 원을 호가합니다. 조개 모양의 노란 껍질에 털이 나있는 새조개는 마치 새의 머리 모양입니다.

 

필자도 즉석에서 조개를 까보니 깜짝 놀랬습니다. 마치 부화직전의 새 모양과 흡사한 탓입니다. 그런데 개조개와는 파는 방법이 다릅니다. 물속에 잠겨 있는 새조개는 사람이 물에 들어가서 손으로 더듬거리면 손에 걸립니다. 이것을 주우면 됩니다. 한마디로 봉사 문고리 잡기식인데 이들은 한곳에 많이 모여 살기 때문에 잘 걸리면 대박입니다.

 

또한 바닥을 드러낸 갯벌 위로 질피라는 바다풀이 덮여 있습니다. 장어와 게를 잡기 위해 어민들이 설치해 둔 통발은 물이 빠져 갯벌 위에 늘어져 있습니다.

 

 조개캐기에 나선 어르신이 많이 캤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활짝 웃고 있다.
조개캐기에 나선 어르신이 많이 캤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활짝 웃고 있다. ⓒ 심명남

어느새 바닷물이 서서히 밀려들기 시작합니다. 조개를 파던 아낙네와 촌부들은 이제 조개잡이를 중단해야 합니다. 밀려드는 파도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열여섯 나이에 시집온 할머니는 이제 80을 넘었습니다. 평생 바다를 껴안고 욕심 없이 살아가는 어촌마을 사람들은 자꾸만 늙어 갑니다. 그릇에는 조개가 반쯤 담겨 있습니다. 나머지 반은 텅 비어 있습니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즐기는 그들의 삶에는 고스란히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이 묻어 납니다.

덧붙이는 글 | 전라도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연등시 #슈퍼문#모세의 기적#화양면 이목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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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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