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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 올해도 어김없이 일제고사는 실시되었다. 다만 교육감이 바뀐 이후 담임의 자체평가가 인정이 되었다. 나는 전교에서 유일하게 자체평가를 본 교사가 되었다. 국어는 10문제의 독해 문제와 간단한 글쓰기를 평가하는 서술문제, 수학은 간단한 계산 문제, 그리고 간단한 심리검사를 내용으로 하였다.

비록 거액의 돈을 들인 국가적인 수준의 평가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의 평가만으로도 충분한 진단이 되었다. 나는 3월의 일제고사가 국가적인 수준의 부진아를 선정해 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우리 반에는 다행히도 국가적인 수준의 부진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도 학부모님 중 누구도 자체평가에 반대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가르쳐본 교사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이들의 얼굴을 가만히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먼저 평가해야 할 것이 아이들의 국어와 수학 성적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밝고 환하게 자라고 있지 않고 작은 그늘이라도 드리워져 있다면 그 까닭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어제는 모둠으로 수학수업을 진행했다. 한 아이가 함께 모둠학습을 하지 않고 혼자 하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잠시 후 아이는 책을 찢고 엎드려 울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밥을 먹지 않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일어나 급식을 받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얼마 후 화가 풀렸고 다시 모둠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했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과 함께 모둠학습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이후로 ○○이가 혼자 공부하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 주겠다고. 내가 ○○이를 모둠학습도 함께 하지 못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라고 진단해 냈다면, 그 아이는 앞으로 얼마나 힘든 학교생활을 하게 될 것인가.

어제는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던 ○○이가 오늘 3월 생일잔치에서는 사회를 보았다. 사회를 어찌나 잘 보던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출근길에 학교 근처 베이커리에 들어가 3월 생일을 맞은 아이들을 위한 작은 케잌 하나를 샀다. 교실에 들어가 빈 책상 위에 작은 식탁보를 깔고, 케잌을 놓고, 옆에는 학부모 공개수업 이후 우리 반 아이 아빠에게서 받은 노란색 꽃다발을 화병에 꽂고, 아이들의 나이만큼인 작은 초 11개를 꽂았다.

아이들을 위한 생일상을 차리면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국가적인 수준의 진단을 받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교사의 칭찬조차도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바로 그들 자신에 대한 존중인 것이다.


태그:#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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