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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철 사장
김종철 사장 ⓒ 이규찬

한눈에 봐도 다부진 몸, 악수 하면서 손을 잡아보니 마치 쇠뭉치를 잡은 듯하다. 이런 게 바로 고수의 기운일까? 그렇다. 고수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포스(force) 였다.  

무림의 고수를 만났느냐고? 아니다. 쇠 덩어리를 엿가락처럼 가지고 노는 철판 고수를 만났다. 김종철(60) 사장은 강철 막대기 하나로 5mm 두께 철판을 구부리는 괴력의 소유자다.

24일 오후, 그가 운영하는 공장(한성공업사, 안양7동)에서 김 사장을 만났다. 육중한 공장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침 두꺼운 철판이 막 구부러지고 있었다. 

"5mm는 신의 경지에 들어야 구부릴 수 있어요. 지금 구부러지고 있는 게 3.2mm입니다. 보기엔 쉬워 보여도 힘들어요. 위험하기도 하고요. 만약 쇠를 구부리지 못하면 사람이 나가 떨어집니다"

'작전 변경'. 이 말을 듣고 한번 해 보자고 덤벼들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고수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건방지고 무척 위험한 일이라는 약삭빠른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이 일을 하셨어요?"
"한 40년 됩니다. 스무 살 때부터 한 거죠.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했고 나중에는 먹고 살려고. 그러다 보니 평생직장이 된거죠. 다른 일에 비해서 힘은 들지만 보수가 좋았어요."

김 사장이 하는 일은 '헤라 시보리(へら しぼり)'라는 작업이다. 글자대로 풀이를 해보면 '구두 주걱으로 누르다'라는 뜻이다. 긴 강철 막대기 끝이 구두 주걱처럼 생겼다. 그 부분으로 쇠를 눌러 구부려서 원형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  김 사장에게 주로 어떤 제품을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원형으로 된 제품은 다 만듭니다. 판문점에서 쓰는 1미터 20센티미터짜리 스피커 통도 만든 적이 있지요. 공장 설비에 들어가는 것이나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것은 다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김 사장이 하는 일은 한눈에 봐도 3D 업종이다. 괴력이 필요 할 만큼 힘이 들고 늘 기름때를 묻혀야 하며 정신 줄 놓고 일하다가는 다치기 십상일 듯하다. 평범한 아버지라면 당연히 이런 일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싫을 법 한데. 뜻 밖에도 김 사장은 이 일을 대학 물 먹은 장남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가 해 본다고 하니까 시켜 보려 고요. 요즘 애들 힘든 일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기특하지요. 요즘 젊은 애들 데려다 놓으면 석 달 안에 도망가요. 외국인은 1년 정도 버티다가 다른 데로 가고요. 한 5년 정도만 배우면 기술자 되는데 그걸 못 참아요."

 김종철 사장과 아들 김민규
김종철 사장과 아들 김민규 ⓒ 이규찬

김 사장 장남 김민규(31)씨는 신학대학을 다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수학 학습지 만드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도와주다 보니 아버지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한 번 해 보겠다고 나섰다고.

"음~ 재미있어요. 아직까지는요. 기술이 안돼서 힘든 일은 하고 싶어도 아직 할 수가 없어요. 지금은 주로 힘이 덜 드는 얇은 철판을 구부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벌이요? 하하 아직 많이 못 받아요. 아직 기술자 아니라고 용돈 밖에 안줘요."

월급은 적지만 불만은 없어 보였다. 아들 김민규씨는 얼른 기술을 배워서 늙은 아버지를 쉬게 해주고 싶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2년 안에 모든 기술 배워서 혼자 힘으로 공장 운영해 보려고요. 기술을 배운 다음에는 경영을 배울 겁니다. 그래야 아버지가 은퇴 하고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헤라 시보리라는 일은 김 사장에게 있어서 뼈아픈 현실이면서 동시에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그는 이 일을 하다가 손가락을 하나 잃었다. 하지만 이 일을 해서 아들 둘을 키웠고 남에게 손 벌리고 살지 않을 만큼 재산도 모았다. 그래서 김 사장은 지금도 공장에서 일 할 때가 행복하다고 한다.

"둘째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어요. 큰 애가 이 일을 해 본다고 할 때 '그래 한번 해봐' 하고 선뜻 대답하지 못했어요. 사실 좀 더 편한 일 하면서 살기를 바랐거든요.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 해 보니 이 일이 제겐 은인이었어요. 이 일 해서 애들 둘 다 대학 보냈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안 할 만큼 벌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그래서. 저는 여기서 땀 흘릴 때가 행복해요. 언젠가는 아들도 그럴 때가 오겠지요? 뭐 그렇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김 사장이 힘을 쓸 때마다 3.3mm 철판이 함석 조각처럼 구부러졌고 김 사장 얼굴엔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김 사장은 진정한 고수였고 괴력의 소유자 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노동자 였다. 그가 두꺼운 철판을 구부릴 수 있는 힘과 기술을 얻게 되기까지는 일에 대한 열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었으리라. 이것이 그가 아름다운 노동자인 이유다.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요즘, 아름다운 노동자 김종철 사장과 그의 아들 김민규씨에게서 이 시대 희망을 본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헤라시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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