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대학에 합격한 뒤 대학생이 되었다는 즐거움, 난생 처음 보는 술자리 문화 그리고 연애에 빠져 한 학기를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분명 입학금이나 등록금을 낼 때 부모님이 얼마나 힘드셨는지를 뻔히 봤으면서도 다들 밥먹듯 수업을 빠지기에, 또 다들 D, F 받아도 그냥 웃기에 저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나니 남은 건 평점 2.5라는 부끄러운 성적표였죠.
부모님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꾸중을 듣는 것이 싫어 성적을 알게 된 지 한참 후에야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제게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으셨습니다. 초라한 성적을 받아온 것에 대한 실망보다 학자금 대출도 받지 못하고 등록금조차 내줄 수 없다는 미안함이 더 크셨다고 합니다. 결국 1학년 1학기만 끝마친 채로 휴학을 해야만 했습니다.
"미안하다, 내 줄 등록금이 없구나..."
처음 휴학을 했을 땐 철없는 마음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벌자'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보다 '아르바이트하면서 공부하고 시간 보내다 보면 부모님께서 등록금을 마련해주시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학교에 복학을 하려 했지만, 상황은 일년 전하고 하나도 변한 게 없었습니다. 전 모아둔 돈이 단돈 백 원조차 없었고 부모님은 집 때문에 졌던 빚에 한달 한달 이자 내는 것도 버거워하고 계셨습니다. 결국 휴학. 아니, 1년 밖에 하지 못하는 휴학제도 때문에 저는 결국 미등록 제적을 당했습니다.
'제적'이라는 말은 제게 너무 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돈을 못 냈으니 넌 우리학교 학생이 아니다"라고 절 내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전 그냥 넓은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는것 같았고, 내 미래가 바닥일 것만 같은 불안감뿐이었습니다.
제적 당한 뒤 6개월 정도는 레스토랑에서 월 150만 원 정도의 고수입 일을 했습니다. 주 6일 하루 13~15시간씩 서서 일하려니 몸은 몸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지쳐갔습니다. 레스토랑 일을 그만 둔 뒤 친척 언니네서 반 년 정도 살면서 조카를 봐주었습니다.
이땐 몸은 힘들지 않았지만, 빨리 공부하고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나도 다시 대학생이 되고 싶다" 이 생각만 끊임없이 했습니다.
칠판만 보고 다닌 대학생활, 남은 건 학점뿐?
겨우 복학. 아니 제적 당했으니 재입학을 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입학금도 다시 내야 해서 예상했던 금액을 초과했습니다. 결국 부모님이 돈을 빌려 절 다시 대학생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복학한 뒤에 선배들에게 듣는 "휴학하는 동안 뭐했어?"라는 질문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아르바이트 했어요, 등록금 모았어요" 이런 말이 꼭 "우리 부모님은 등록금도 못내줍니다, 저희집 힘들어요"라는 말처럼 받아들여질까 봐, 그게 부모님을 욕보이는 것 같아 "그냥 놀았어요" 하고 다녔습니다. 그 질문을 들을 때면 저는 한없이 초라해졌습니다.
처음 복학해서 학교에 다닐 땐 주위에 사람들은 쳐다도 안 봤습니다. 오로지 교수님, 칠판 그리고 내 책상. 수업 전에 등교하고 수업 끝나면 하교하는 그런 생활이 전부였습니다. 그렇지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다시 들어간다고 해서 제 등록금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직 3년이나 더 다녀야 하고 그리고 6번이나 더 등록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 매시간 부담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복학 이후로는 장학금을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습니다. 5번 중 3번은 학과에서 1등도 했지만 학과 인원도 적고 인원의 25%까지 장학금을 주자는 취지 때문에 100만~150만 원 정도의 장학금밖에 받지 못해 200만~300만원 정도의 등록금을 따로 채워야만 했습니다.
결국 1학년 2학기부터 지금 4학년 1학기까지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어 이젠 아르바이트 이력서도 두 장이 되었습니다. PC방, 이탈리안 레스토랑, 교수님 조수, 커피숍 등까지 시급 4000원부터 많게는 4600원까지 제 시간을 팔아가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르바이트비는 보험비, 휴대폰비, 학자금 이자비, 버스비, 학식비까지 생활비로 나가다 보니 결국엔 매 학기 학자금대출을 받아야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학기, 졸업 후엔 또 피고름을 짜야겠지요
졸업 학년이 되었지만 그만큼 빚은 늘었고, 장학금 때문에 잘 관리해둔 학점 말고는 저를 내세울 게 하나도 없더군요. 나름 성실하게 대학 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없는 예비 취업생입니다. 토익점수조차 자격증 시험 조건의 커트라인인 700점도 안 되는 '무늬만' 4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친구가 또 아르바이트 하냐며 공부에 집중하는 게 어떠냐고 묻더군요. 괜한 자존심에 "나는 아르바이트를 항상 해왔지만 공부에 타격 입은 적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친구가 대단하다고 부러워하더라구요. 그러나 전 친구들이 부럽습니다. 부모님 용돈을 받지만, 술값하기 모자라 아르바이트한다는 친구들을 보면 철없게 느껴지면서도 부러운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실은 항상 아르바이트를 해와서 공부에 타격을 입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아르바이트 안 하고 등록금 걱정없이 학교를 다니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선, 결국 돈 있는 친구들이 더 잘 취직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더 돈을 잘 벌겠지? 그럼 그 자식들도 내 자식들보다 더 잘 살 테지, 하는 생각만 하게 됩니다.
등록금, 전 이제 한 번 남았습니다. 여덞 번째 한맺힌 한숨을 쉬고 졸업을 하면 학자금대출 상환이라는, 몇 번일지 모를 피고름을 짜내야겠지요. 그 자리엔 큰 상처가 남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