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치하의 서글픈 역사가 빚어낸 만주의 비극은 지금도 진행형이라고 주장하는 박영희 시인이 한중수교(1992년) 이후 한국 취업 바람이 불면서 '부모 따로 아이 따로'가 되어버린 조선족 사회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하는 책 <만주의 아이들>(문학동네 펴냄)을 펴냈다.
박 시인은 지난 25일 대구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우리는 조선족에게 작은 빚을 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제하에서 만주로 건너간 200만 조선족 중 60%는 먹고살기 위해, 30%는 독립운동, 7%는 상업, 3%는 일제 앞잡이였는데, 60%와 7%가 독립운동을 도왔고 조선족은 그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것.
"부모님들이 왜 한국으로 가는지 리해가 되지 않는다. 이곳에도 일할 곳이 많고도 많은데··.우리 조선족은 지금 허망 들떠 있다. 신생 사물에 대한 접수는 좋은데 눈앞의 리익만 따지면서 무조건 '간다 바람'을 따르는 것도 문제다···"(화룡 제1실험소학교 6학년 허애령)"우리 가족은 원래 해, 달, 별이 밝게 웃는 행복한 가족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한국에 가야 한다고 무겁게 말씀하셨다. 나는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 아버지도 말끝을 흐리면서 돈 많이 벌어 공부시켜주겠다며 가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오늘도 쪼각달을 동무하며 밤길을 간다. 쪼각달은 한 달에 한 번씩 둥글어지지만, 우리 아빠 얼굴은 언제 둥글어질까? 우리 가정은 언제면 보름달처럼 둥글어질까?" (훈춘 제1실험소학교 4학년 박진의)
박 시인은 2010년을 전후로 중국 요녕성 심양, 길림성 집안·통화·유하·매하구·용정·왕청, 흑룡강성 하얼빈·해림·목단강의 조선족 학교와 집단 합숙소를 찾아가 만난 만난 교사·학생들과 나눈 대화를 중심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만주의 아이들 세계를 현장감 넘치는 사진과 함께 책에 담았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교역이 활발해지고 취업 바람이 불면서 한국으로 돈 벌러 나온 조선족에 대한 논의는 이따금 있었다. 그러나 가족도 친척도 없이 만주에 홀로 남은 자녀들의 고통스러운 삶은 관심 밖이었다.
"어째 온다는 소식도 없이 이리 불쑥 나타나셨슴까. 교장 선생이 찾는다고 해서 대따 놀랐단 말임다.""아저씨 저 미예예요. 밥은 잡쉈는지요? 그새 또 보고 싶어서 해봤슴다. 방학해서 한국 가면 꼭 연락할게요."위는 조선족 강미예(초 5학년) 학생이 갑자기 학교 교장실로 찾아온 박 시인을 보고 반가워하는 대목이고, 아래는 방학 때 한국에 나오면 연락하겠다는 전화 메시지 내용이다. 부모는 있되 집에서 부를 엄마 아빠가 없어 외로워하는 학생의 짧은 목소리에서 애틋한 사랑과 정이 묻어난다.
박 시인은 3년 전 흑룡강성 해림의 어느 하숙집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물면서 강미예 학생을 알게 되었다며, 10년 만에 아버지를 상봉한 가슴 미어지는 얘기를 듣고 르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후 만주를 찾을 때면 아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곤 했다고.
만주의 홀로된 아이들은 생일날만이라도 엄마가 곁에 있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이 가장 먹고 싶다고 말한다. 목욕 갈 때, 몸이 아플 때 엄마가 생각난다며 울먹이는가 하면 아예 부모를 그리워할 감정조차 메말라버린 아이도 있었다.
박 시인은 만주에 혼자 남은 조선족 학생 대부분은 부모 중 어느 한 쪽이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 거기에 따른 파장이 곧 자신에게 미칠 거라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전한다. 한국은 절대 안심할 수 없는 나라로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자식도 모르게 한국으로 취업을 떠나는 바람에 아빠 얼굴을 사진으로만 보았다는 아이,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아이들이 가장 멀게 느끼는 나라는 미국도, 일본도, 아프리카도 아닌 한국이라는 내용은 가슴을 뜨끔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방학을 맞이해 한국에 나와 공사판 노동자나 식당 등 소위 3D업종에 종사하는 부모를 보고 가면서 한국에 환멸을 느낀다고 한다. TV 드라마나 뉴스를 통해 보는 한국은 화려하고 멋있는 나라로 생각했는데 허름한 셋방에서 사는 부모를 보고 크게 실망한다는 것.
박 시인은 한중수교 이후 '한국 취업 바람'은 조선족의 대이동을 불러일으켰으며 얼마 가지 않아 만주 조선족 자치주가 해체될 거라는 풍문이 떠돌기 시작했다고 우려한다. 200만 조선족 중 40만이 한국에 나와 있으니 해체설을 부인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요녕성 '집안시'(集安市) 같은 경우 14개 조선족 학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교육 방침도 한족 교사가 주도하면서 역사는 물론 한글교육을 받지 못해 우리말을 못하는 아이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단다.
"놀라지 마시라요. 우리 학교 전체 학생 70퍼센트의 학부모가 한국에 나가 있습네다. 그중 이혼한 경우는 절반에 가깝고요. 이 모든 게 윗물인 어른들 탓입네다. '한국 바람', '간다 바람'이 먼저고 자녀들 돌보는 일은 안중에도 없단 말입네다."중국 요녕성 집안시에 있는 어느 조선족 학교 장혁문 서기가 전하는 학교 사정이다. 그는 한국에 나간 부모들이 '고생'이라면 만주에 남아 홀로 보내는 자녀들은 '고통'이라고 말한다. 학기마다 열리는 학부모회의 때는 할머니나 친척, 심지어 한족이 참석하는 때도 있다고.
부모 이혼은 한 지역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만주 아이들은 한국으로 돈 벌러 나간 부모가 이혼만은 말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조선족 자치주 주도인 연길시는 최근 노래방 수에 이어 이혼율까지 1위를 차지했단다.
"엄마가 한국에 나간 뒤부터 무섭단 말임다. 저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봐설랑 쪼매 아꼬망. 한국은 절대 안심할 나라가 아이잖습네까. 이혼을 마치 금메달 따는 대회처럼 한단 말임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한국 사람들이 낳고설랑 버린 입양아를 본 적 있는데 그런 거이 무섭단 말임다. 내도 나중에 그 아처럼 내버려지면 어찌합네까?" (집안시 조선족 중학교 2학년 영)조선족 부모들의 '한국 바람' 부작용은 가정파탄은 물론 자녀의 정서와 교육을 망가트리는 회오리바람이 되어 타격이 엄청나다. 첫째로 대화 상대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늘면서 학급당 조선어를 쓸 수 있는 학생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것.
한국 바람이 언제나 훈훈한 남풍으로 변해서 만주의 아이들이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지, 책을 읽으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저버릴 수 없었다. 조선족들이 즐겨 부른다는 노래를 소개한다.
모두 다 갔다아내도 갔다. 남편도 갔다. 삼촌도 갔다. 모두 다 갔다.한국에 갔다. 일본에 갔다. 미국에 갔다. 러시아로 갔다.잘살아 보겠다고 모두 다 갔다. 눈물로 헤어져서 모두 다 갔다.산다는 게 뭐이기에 산산이 부서져그리움에 지쳐 가며 살아야 하나오붓하게 살아갈 날 언제나 올까 손꼽아 기다린다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