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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별호 '심오(深梧)'는 천주교 세례명 '막시모'에서 연유한 것이므로,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호라고 감히 생각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이름이 다 하느님의 뜻이겠지만….

 

20대 청년 시절 처음 '심오'라는 이름을 취할 때 '깊을 심(深)' 자와 '오동 오(梧) 자'에 신경을 많이 썼다. 심(深) 자는 '심오(深奧)'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면서 이상한 부담감을 주었다. 내가 너무 주제넘고 건방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천주교 세례명에서 연유하여 '심오'를 취하기로 했으니 심(深)자는 제쳐둘 수 없는 글자였다. 오(梧) 자는 각별한 매력을 주었다. 나는 오동나무의 성질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체투지 순례기도 참여 환갑을 먹던 해인 2008년 10월 25일 오후, 충남 논산시 상월면의 한 지점에서 '오체투지 순례기도' 중 잠시 휴식하는 문규현 신부님과 함께. 내 아이들과 함께 오체투지 순례기도에 처음 참여한 뜻 깊은 날이었다.
오체투지 순례기도 참여환갑을 먹던 해인 2008년 10월 25일 오후, 충남 논산시 상월면의 한 지점에서 '오체투지 순례기도' 중 잠시 휴식하는 문규현 신부님과 함께. 내 아이들과 함께 오체투지 순례기도에 처음 참여한 뜻 깊은 날이었다. ⓒ 지요하

 

세 번이나 잘리고 다시 자라는 나무

 

옛날 현명한 아버지는 딸을 낳으면 마당가에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오동나무는 빨리 자라는 나무라 15년에서 20년 정도 자라면 장을 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벼우면서도 목질이 단단하고 고울 뿐만 아니라 독특한 향으로 벌레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으니 장롱 등 가구를 만들기에는 가장 좋은 나무였다.

 

하지만 그냥 막 자란 오동나무는 너무 가볍고 부실하여 별로 쓸모가 없다. 잘 트고 부서져서 지저분한 느낌도 준다. 오동나무를 단단한 나무로 키우는 비결이 있다. 사람 키만큼 자랐을 때 잘라버린다. 잘린 자리에서 나무는 다시 자란다. 그 나무가 또 사람 키만큼 자랐을 때 다시 자른다. 그렇게 세 번을 자르면, 그 후에 다시 자란 오동나무는 이 세상 어떤 나무보다도 단단하고 질기고, 독특한 향을 지닌 나무가 된다. 

 

세 번이나 잘리고도 다시 자란 나무, 가벼우면서도 단단하고 질기고 결이 고운 나무, 거기에다가 벌레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독특한 향을 지닌 나무이니, 그것만으로도 오동나무는 매력 만점이다.

 

또 오동나무는 거문고와 가야금 등 전통 악기의 재료로도 쓰인다. 가볍고 고울 뿐만 아니라 트거나 휘지 않는 데다가, 공명(共鳴)하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악기 재료로도 쓰인다는 것은 '음악 소리를 내는 나무'라는 의미도 지닌다.

 

오동나무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나무의 중심부에 구멍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나무의 크기에 따라 구멍의 크기도 다르지만, 중심부에 구멍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각별하다.

 

경쾌하지만 구부러지지 않는 '공명'의 나무

 

갖가지 약재(藥材)로도 쓰이는 오동나무가 자라는 과정에서 세 번을 잘리면 더욱 단단하고 질긴 나무가 된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당연히 불굴의 정신과 단련의 의미를 내포한다. 우선 그런 특성을 지향하고자 했다.

 

가볍고 고우면서도 단단하고 질긴 오동나무의 특성을 닳고 싶었다. 경쾌함과 명쾌함을 지니되, 쉽게 구부러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성질을 지니고자 했다. 

 

독특한 향 때문에 벌레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오동나무처럼 나도 향기를 지니고 싶었다. 비록 혼탁한 세상 속에서 속인으로 살아가되 결코 오염되지 않는 영혼을 지닌 채 살고 싶은 소망이었다.

 

악기 재료로 이용되어 음악소리를 내는 오동나무처럼 나도 '맑고 고운 소리'를 내며 사는 삶을 지향하고자 했다. 음악 전문가는 되지 못하더라도, 내 목소리를 맑게 다듬고 정감을 심어 시도 읊고 노래도 부르며, 더불어 음악성을 지닌 글을 쓰며 살자는 다짐이었다.

 

또한 공명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세상의 바른 이치들을 헤아리고 올바른 소리들에 귀를 기울일 뿐만 아니라, 그 소리들에 기꺼이 화답하고 힘껏 부합하는 삶을 추구하자는 생각이었다.

 

오동나무의 중심부에 있는 구멍처럼 나도 빈 마음이고자 했다. 욕심이 없는 마음, 허허로운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자는 다짐을 되새기곤 했다.

 

천박한 세상... 오늘도 새 세상을 갈망하면서

 

천주교 세례명 '막시모'에서 연유한 별호 '심오(深梧)'를 사용하며 살아오는 동안 자괴감이 없지 않았다. 별호를 지니고 사용한다는 사실이 너무 주제넘고 뒤넘스럽다는 생각이 무겁게 따라오곤 했다.

 

하지만 내게 있어 별호는 사치품 같은 것이 아니었다. 허장성세를 쫓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별호가 필요해서 사용을 하게 되었고, 쉽게 생각하거나 반대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여 지은 것도 아니었다. 20대 문학청년 시절 신춘문예에 응모하면서 천주교 세례명 막시모를 '마심오(馬深梧)'로 표기를 바꿔 쓴 것에서 연유하여 '심오'라는 별호를 가지게 된 것일 뿐이었다.

 

별호를 사용하면서 스스로 챙기고 갈무리한 의미들, 그 '가치지향'들을 자주 마음에 담곤 했다. 비록 별호를 내세울 만한 위인은 못 되더라도, 그 가치지향들에서 일탈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내 나름으로는 열과 성을 다했다.

 

하느님 신앙에서 연유한 내 별호 '심오(深梧)'가 함축하고 있는 가치지향들을 가슴에 뜨겁게 끌어안고 나는 오늘도 험난한 세상을 살아간다. 천박하지도 않고 치졸하지도 않고 추악하지도 않은 자세로 범부의 삶을 살아간다.

 

오늘 세상은 더욱 적극적으로 천박하고 치졸하고 추악하다. 너무도 거짓이 많고, 음영이 짙다. 철학을 지니지 못한 한 시절의 권력자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음험한 부산물들이 세상 곳곳에 쌓여 있다. 그것을 식별하고 분별하면서, '분별의 눈'으로 새 세상을 갈망하면서 오늘도 내 몫의 삶을 십자가처럼 지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간다.


#별호#오동나무 #深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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