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성구미 포구를 찾은 3월의 봄날, 주인을 잃은 빈집 앞마당에 널어 둔 미역을 보면서 이상화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린 건 지나친 감상일까.
100가구에 이르던 주민들 중 70여 가구가 떠난 성구미 포구에는 창문이 뜯겨 나가고 허물어진 빈집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와 미처 고향을 떠나지 못한 이들의 온기가 한데 섞여 흐르고 있었다.
봄 간재미로 유명한 충남 당진 성구미 포구는 현대제철의 '송산일반지방산업단지' 추가확장지역에 포함되었다. 주민들은 2013년 10월 전까지 모두 성구미를 떠나야 한다.
그 중에서도 성구미 포구에 정박해 두었던 배들을 3월말까지 빼주기로 현대제철과 약속한 터라 포구 상인들도 덩달아 성구미 포구를 떠나야 한다. 배들과 상인들은 등대선착장이라 불리는 신 선착장 부근으로 임시 거처를 마련해 당분간 장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 21일, 마지막 봄을 맞은 성구미 포구를 찾았다.
평일 오후, 성구미 포구는 비교적 한산했다. 포장마차 앞에 벌여 놓은 대야에는 광어, 우럭은 물론이고 아직은 때가 일러 수확량이 많지 않은 쭈꾸미와 간재미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손님을 기다리는 사이 상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풍경인 듯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이들은 모두 다음 달이면 십여 년 간 장사를 해왔던 포구를 떠나야 한다.
"다 나가고 몇 집 안 남았어요. 생활 터전 다 뺏기고 직업도 없어지게 생겼으니 걱정이에요. 포장마차가 등대(선착장)로 옮겨간다고 해도 계속 장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성구미포구에서 포장마차를 20년 가까이 해왔다는 송영례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송씨는 예전에는 밥도 못 먹고 장사를 할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다고 번창했던 옛 시절을 추억하기도 했다.
광명호 횟집 김정란씨도 마음이 뒤숭숭하기는 마찬가지다. 등대선착장으로 자리를 옮겨간다고 해도 2년 후면 성구미를 모두 떠나야 한다. 하지만 그 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우선은 성구미 이름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구미 이름은 살려야지 않겠어요. 잃어버려서는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계속 성구미에서 물고기를 건져 올리고 팔아야 해요."
포구 상인들 말로는 현대제철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성구미포구에서 내다보이는 건 오로지 바다뿐이었단다. 지금이야 현대제철 C지구가 포구 앞을 가로 막고 있어 졸지에 포구가 갇혀 버린 모양새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탁 트인 전망이 장관이었단다.
그 시절에는 통발에 나무판을 얹어 상을 만들어 광어며 쭈꾸미, 간재미 등 싱싱한 횟감을 안주 삼아 술 한 잔 기울이는 사람들로 포구는 늘 북적였단다. 불과 십여 년 전 일이다.
"앞 바다가 막히면서 다 망가졌어요. 고기도, 우리네 마음도 몸도... 이제는 가족처럼 지내던 이웃들과 뿔뿔이 흩어져야 하니 마음이 안 좋지요."
고향 떠나지 못하는 주민들 마음
횟집 포장마차와 한쪽 끝을 맞대고 자리 잡은 건어물 좌판에서는 할머니들이 숭어를 손질하고 있었다. 좌판에는 볕에 꾸덕꾸덕 말린 우럭이며 간재미가 진열되어 있다.
건어물 좌판 할머니들 10여명은 지난해 당진읍 주공 원당마을아파트로 함께 이사를 갔다. 고향 잃은 슬픔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이웃까지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떨어져 살기 싫어서 한데 모여 살기로 했어. 그래서 다 같이 원당마을로 이사를 간 거야. 어차피 성구미는 떠나야 한다고 하니까..."
할머니들은 이사를 간 뒤로도 매일 성구미를 찾아 포구에서 건어물 좌판 장사를 계속 하고 있다. 먹고 사는 일도 일이지만 무엇보다 평생을 매일 바닷바람 쐬며 일해 왔던 터라 아파트에서 우두커니 앉아만 있다가는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아서다.
"여기가 좋지, 암. 말해 뭐하나. 아파트는 답답하잖아. 여기서 바람도 쐬고 우리끼리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할머니들은 매일 아침마다 모여 버스를 타고 성구미에 들어와 포구에 물이 차는 오후가 되면 다시 버스를 타고 성구미를 떠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직 장사가 계속되고 있는 포구와는 달리 마을 안쪽은 머지않아 사라질 마을이라는 분위기가 여실히 드러났다. 곳곳에 창문이 뜯겨나간 빈집들이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다. 고철 장사꾼들이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뜯어간 흔적들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빈집들 사이,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누렁이 한 마리가 나와 꼬리를 흔든다. 누렁이를 따라 들어간 집에서 박범수씨를 만났다. 박씨는 어수선하고 심란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적적하나마나 심란해 죽겠어요. 우리도 내년에는 나갈 거예요. 이제 죽으러 가는 거지... 도시로 나가면 뭐 할 게 있나."
마을을 돌다 만난 우동파(69)씨는 다음 달이면 당진읍내로 이사를 나간다고 했다.
"집은 지난 12월에 얻었는데 가기 싫어서 버티고 있었어요. 막상 가려니까 서운해서 영 못 떠나겠어요. 나가면 답답해서 어떻게 사나 싶어요."
우씨가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2년 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성구미
보상을 받아 이사를 나가고도 성구미를 온전히 떠나지 못하는 이들은 포구 좌판 할머니들뿐만이 아니다. 이규성 가곡2리 새마을지도자의 말에 따르면 이사를 나간 뒤에도 주민들 대부분이 성구미를 잊지 못해 찾아오고 서로 연락하며 왕래하고 있다고 했다. 청년회며 번영회, 노인회도 매달 정해진 날이면 주민들이 마을로 돌아와 회의를 연다.
성구미 마을 주민들의 정이 끈끈한 데에는 오랜 세월 대를 이어 한데 어울려 산 탓도 있지만 주민 70%가 친인척 관계인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얼마 전 공개돼 화제가 됐던 1952년 전 성구미 사진을 보면 성구미에는 김광운 이장을 비롯해 유상철씨, 이규성씨네 집 등 십여 채가 전부였다. 그 후로 이들의 직계촌들이 하나둘 성구미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성구미 마을을 이뤘다는 것이 이규성씨의 설명이다.
송산면 가곡2리 성구미는 예부터 가을 젓을 담그는 새우와 봄 간재미로 유명한 포구다. 1990년대초만 하더라도 간재미, 새우, 농어, 우럭, 광어, 도다리 등을 잡았다.
그중에서도 4월이면 간재미회를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하지만 개발이 시작되면서 어촌계에 등록되어 있던 배도 절반으로 줄어 지금은 26척만이 남았다.
새우를 잡아 올리던 배 2척밖에 남지 않았다. 57명 번영회원 중 21명이 등대가 있는 신선착장에 조성될 포장마차에 참여하기로 했다.
나머지 이들은 2년 후면 그마저도 접어야 하기 때문에 고심 중이란다. 이미 이주대상자 98가구 중 현재 71가구가 집을 비우고 성구미를 떠났다. 텅텅 비어버린 성구미의 마지막 봄은 그렇게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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