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에서 독재자 카다피를 쫓아내기 위해 시민들이 시위를 시작한 지 한달 반이 지났다. 그동안 리비아 상황은 숨가쁜 변화를 거듭했고 세계는 긴장 속에서 상황 변화를 지켜봤다. 세계인들은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은 시민저항의 승리를 기대했지만 리비아는 달랐다. 카다피는 악명 높은 어떤 독재자에 못지않게 잔인하고 독했으며 봉기한 시민들은 목숨을 내놓고 독재자와 대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독재자와 시민들의 극심한 힘의 불균형 속에서 대량 학살의 위험이 감지되었고 국제사회는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인도적 재난을 막기 위한 군사개입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지난 20일 다국적군의 공습이 시작된 이후 반군은 임시정부를 구성했고 트리폴리가 있는 서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며칠간 다국적군의 공습이 잠시 뜸해진 틈을 타 카다피 군이 반군이 장악한 도시들을 재탈환하기 시작했다. 반군은 빈 자와드와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원유항 라스 라누프를 잃었고 알 브레가에서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알 브레가는 동쪽의 아즈다비야로 이어지는 도시고 아즈다비야는 임시정부와 반군의 근거지엔 벵가지와 가까운 도시다. 트리폴리에 가까운 서쪽의 미스라타에서도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도시의 절반이 파괴된 상태며 매일 발생하는 사상자들 때문에 병원은 의약품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다국적군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카다피 군이 항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지상전을 수행하는 반군의 화력이 절대적으로 약한 가운데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군사개입을 주도한 국가들 사이에서는 반군에 대한 무기 지원 여부가 논의되고 있다. 31일 작전지휘권을 인수한 직후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이런 논의를 염두에 둔듯 카다피 군과 반군 모두에 대한 무기 지원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반군 무기 지원 방안 놓고 고심<뉴욕타임스>는 미국 내에서 반군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놓고 격렬한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가와 군 내에서는 반군의 절대적 열세 때문에 다국적군의 공습만으로 카다피를 쫓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카다피 군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는 반군의 화력이 향상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반군에 무기를 지원할 경우 리비아 내전이 장기화되고 거기에 미국이 말려들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반군이 신형 무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훈련까지 제공해야 한다는 부담도 지적하고 있다. 지원한 무기가 후에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집단이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는 점 중 하나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무기 지원을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시민보호를 위한 군사 행동을 허락한 유엔 결의안을 적용한다면 리비아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에도 불구하고 반군에 무기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 또한 지난 화요일 엔비씨(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무기 지원 가능성을 고려하지도 완전히 배제하지도 않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카다피 군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계속 평가를 하고 있다. 군사 작전이 시작된 지 9일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에 반응하듯 데이빗 카메론 영국 총리도 이번 주 수요일 리비아 반군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은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유엔안보리 결의안은 시민과 민간인 거주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을 허락하고 있다. 우리는 특정 상황에서 민간인들을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결의안에 명시한 수단에서 배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뉴욕타임스>는 유럽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해 프랑스 또한 반군에 실질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미국 정부와 논의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압력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려진 무기고와 이탈한 카다피 군인들을 통해 얻은 열악한 무기에 의존하고 있는 반군 또한 간접적으로 무기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무기 지원보다는 정치적인 지지를 요청한다. 그러나 무기 지원도 함께 이뤄진다면 좋을 것이다"고 마흐무두 샤만 반군 대변인은 말했다.
내전을 국제사회가 부추기는 꼴그러나 반군에 대한 무기 지원 논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위험성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민간인 보호를 위한 목적으로 이뤄진 국제사회 개입의 정당성을 훼손시킬 것이다. 유엔안보리가 극적으로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진격을 거듭하던 카다피 군이 저항세력을 노골적으로 협박하면서 벵가지에서의 대량학살이 예고됐기 때문이었다. 다른 말로 인도적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이뤄진 것이었다.
그러나 무기 지원은 시민보호가 아니라 결국 리비아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는 내전을 국제사회가 지원하게 되는 것이므로 시민보호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반군에 무기를 지원할 경우 내전의 장기화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카다피 군과 반군 모두 무력을 사용한 승리에만 의존하게 될 것이고 반대나 자성의 목소리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결국 계속되는 전투의 한 가운데서 희생하는 것은 총도 포도 없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전투 때문에 목숨을 잃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국제사회의 무기 지원은 임시정부까지 구성한 반군의 합법성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이다. 학살을 막고 경각에 달한 민간인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을 요청한 것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리비아 인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무기를 지원받는 것은 리비아 국내는 물론 아랍세계에서도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다. 정당성의 문제 때문에 반군 내부의 비판과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반군에도 결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카다피 군과 반군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취할 다음 행보는 군사개입만을 강화하는 문제해결이 아니라 카다피 군과 반군 사이의 휴전을 돕고, 시민들의 최소한 안전이 보장될 수 있도록 평화지대를 설정하고, 유엔평화유지군을 파견해 휴전상태를 감시하는 것이다. 그것이 카다피의 몰락을 지연시키고 리비아의 분단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외부의 개입으로 결코 내부의 변화가 달성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살펴본다면 가장 현명하고 윤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