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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0일이 넘게 농성을 하고 있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노동자들. 2010년 9월, 농성 돌입 1000일째를 앞두고 있던 때의 모습.
1200일이 넘게 농성을 하고 있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노동자들. 2010년 9월, 농성 돌입 1000일째를 앞두고 있던 때의 모습. ⓒ 유성호

"학습지 교사 황당한 월급 560만 원."

한 신문을 넘기며 나는 기사 제목만 읽고 있었다.

'오! 학습지 교사 월급이 560만 원? 꽤 쏠쏠하네. 이참에 학습지 회사에 원서 좀 넣어볼까? 하긴 학습지 교사가 회원관리비도 자기 수입에서 써야 한다면 560만 원이 그리 큰돈은 아니지. 그런데 그 월급이 왜 황당하지? 이상하네.'

이미 신문 다른 면을 보면서 내 머리에 스친 생각이다. 신문을 다시 넘겨 '월급 560만 원' 기사를 찾았다. 잘 보니 이런, 기사 제목을 잘못 읽었다. 원래 제목은 "어느 학습지 교사의 황당한 월급 560원"이다. 56만 원도 5만6000원도 5600원도 아닌, 560원. 월급이 56만 원이어도 황당한데, 그 천분의 일인 560원이란다. 정말 '껌값'이다.

어떤 학습지 회사가 껌값을 월급이라고 주는 걸까? 기사를 읽어보니 '스스로학습'의 재능교육이다. 이 기사의 주인공인 김소정(가명)씨가 받은 월급명세서에는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귀하가 받으실 금액은 560원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단다. 기막혔다. 560원 주면서 무슨 노고에 감사까지 함께 주는지.

학습지 교사는 수업 수가 적으면 학생이 낸 회비의 38%를 수입으로 받고 수업 수가 많아지면 학생이 낸 회비의 최고 55%까지 받을 수 있다. 자신이 관리하는 회원 수가 많아질수록 자신이 받는 수수료 비율도 누진해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수수료 차가 이렇게 크니 유령회원을 만들어서 좀 더 높은 비율의 수수료를 받으라는 지국장의 설득이 교사에게 먹힌 것이다.

소정씨도 효녀가 되고 싶었겠지

김소정씨는 스물일곱이다. 스물일곱이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삼사 년 지난 나이다. 나에게도 소정씨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 17년 전, 나는 대학을 막 졸업하고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얻지 못해 이리저리 원서를 내고 다녔다. 어느 날인가 늦게 일어난 나를 보고 아버지가 한 말씀 하셨다.

"늙은 부모는 등골 빠지게 일을 해서 돈을 버는데, 대학까지 나온 젊은 네가 방구석 차지하고 지금 뭐하는 거냐?"

아버지의 한마디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두 분 모두 환갑을 넘긴 나이에 건물 청소 일을 하러 다니시는데, 그런 부모님 앞에서 찬밥 더운밥 가려가며 입사원서를 내고 있었으니 내 꼴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길로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취업을 했다. 회사에 들어가 일하면서 더럽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버지가 했던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내복을 사다 드렸다.

"이번 달부터 학자금대출 상환도 제가 하고 생활비도 조금씩 보탤게요."

그간 나 때문에 마음고생 몸 고생 하신 부모님은 내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셨다. 나는 으쓱해졌다. '진짜 효녀가 되면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적은 월급에 적금을 부어 만든 돈으로 결혼도 했다. 세상에 부모님께 효자 노릇 하기 싫은 자식이 어디 있겠나? 어쩌면 소정씨도 재능교육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처럼 '효녀 노릇 해야지' 하고 야무진 꿈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정씨는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돈을 모으기는커녕 집안의 돈을 쓰며 일했겠지. 소정씨는 얼마나 좌절했을까? 그런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도대체 누구 탓일까?

4대 학습지 회장, 모두 100대 주식 부자 

유득규 학습지노조 사무처장은 "지국에선 영업목표를 유지하려다 보니 교사가 그만둘 경우 퇴회 회원의 비용을 교사들에게 전가하고, 이마저도 안 되면 지국장이 자신의 돈을 쏟아붓는 경우도 있다"며 "재능교육은 노동조합이 사실상 와해된 상태여서 이런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2011년 3월 1일자 <한겨레>

생각해보니 재능교육 노동조합이 천 일 넘게 투쟁하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서 본 적이 있다. 재능교육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았다. 한때는 재능교육 교사의 절반 이상이 노동조합원이었던 적도 있었단다. 그런데 2007년에 임금체계 개악에 맞서 시작된 천막농성이 지금껏 계속되면서 조합원이 100명 이하로 줄었다. 노조가 이렇게 와해되지 않았다면 소정씨가 월급으로 560원을 받는 상황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의 오수영 사무국장의 말에 의하면, 소정씨가 560원의 급여를 받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2008년에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도입한 임금제도에 있다고 한다. 회원이 회비를 안 내면 교사 급여에서 전액을 충당하게 하는 제도라고 한다.

이 제도는 현장에서 악용된다. 교사가 학생의 퇴회 서류를 작성해서 지국에 제출해도 지국에서 퇴회 처리를 의도적으로 안 해주면 퇴회회원이 미납회원으로 바뀐다. 그러면 교사들은 퇴회회원의 회비만큼 차감된 월급을 받게 된다. 그런 회원의 수가 열 명이면 교사의 월급에서 35만 원 정도 빠진다고 한다.

그리고 회원이 많이 탈퇴해서 순수 증가 회원 수가 마이너스가 되면 그 명수만큼 교사 월급에서 7000원씩 차감하는 제도도 있단다. 지국에서는 영업목표를 맞추기 위해 2008년에 새로 도입된 이 두 가지 제도를 악용한다고 한다. 결국 이 때문에 소정씨처럼 황당한 액수의 급여를 받는 일이 생기게 된다는 말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정규직이었던 학습지 교사의 신분이 특수고용직으로 바뀌게 되면서 근로조건이 나빠졌다. 4대 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역시 받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학습지 교사의 근로조건이 형편없이 나쁠까? 학습지 회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그 대답은 '절대로 아니다'이다.

2009년 <포브스코리아>가 발표한 100대 주식 부자 순위에 4대 학습지 회사 회장님 네 분이 사이좋게 들어 있다. 2005년 발표에는 10대 부자에까지 이름을 올린 학습지 회사 회장도 있다. 깜짝 놀랐다. 물론 재능교육의 박성훈 회장님도 100대 부자 안에 들어 있다. 이것만 보아도 회사가 돈이 없어서 교사를 그리 대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 네 분의 공통된 특징은 다른 재벌들과 달리 부모에게서 부를 물려 받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대에만 이 놀라운 부를 쌓았다는 점이다. 30~4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 네 분이 비약적으로 부를 쌓는 데에는 분명 본인의 노력이 중요하고 꼭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본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함께 일하는 학습지 교사들과 학습지 소비자의 도움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재능교육 박성훈 회장님은 그동안 그 막대한 부를 쌓기 위해 열심히 일한 교사들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반자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1200일간 계속된 노동조합의 외침에 이제라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교육사업으로 100대 부자 반열에 오른 회장님의 위상에 걸맞은 행동이 아닐까?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자기가 과거에 공부한 학습지를 만든 분을 유일한 박사처럼 존경스런 인물로 기억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서울 지하철 종각역 재능교육 광고판 앞에서 "재능교육 불매" 1인시위를 하고 있는 향린교회 신도.
서울 지하철 종각역 재능교육 광고판 앞에서 "재능교육 불매" 1인시위를 하고 있는 향린교회 신도. ⓒ 강정민

우리 아이들은 재능교육 안 합니다

7일로 재능교육 노조의 투쟁이 시작한 지 1204일이 되었다. 벌써 두 해가 바뀌었다. 새해가 와도 새 달이 와도 그들에게는 달라진 것도 새로운 것도 없기에, 그 징글징글한 숫자 세기를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유명자 지부장은 단식을 한 지 14일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재능교육 노조를 응원하는 릴레이 동조단식이 진행되고 이제는 1인시위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향린교회 신도들이 이들의 투쟁을 응원하고자, 한 달 계획으로 서울 종각역 지하도에 있는 재능교육 광고판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 중이다. 물론 재능교육은 노동조합 지도부에 20억 손해배상 소송을 했듯이, 향린교회에도 공문을 보내 지금과 같은 1인시위를 중단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째는 중학교, 둘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아이 엄마인 나의 인맥을 백분 이용해 내가 재능교육을 불매한다는 사실을 떠들고 다닐 생각이다. 더 이상 소정씨와 같은 젊은이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한 내 나름의 작은 실천이다.


#재능교육#학습지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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