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번도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
1953년 5월 9일 태어난 한 노동자가 2007년 4월 15일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사인은 패혈증.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1953년 경기도 안성에서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39세가 되던 1991년 택시회사인 한독운수에 입사했다. 1994년, 살고 있던 봉천동에서 강제 철거 문제를 겪으면서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995년 관악주민연대에 가입하였다.
월 120여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 소년소녀 가장을 후원하기도 하고 가입한 단체의 회비를 꼬박꼬박 내는 것은 물론, 택시 노동자로 바쁜 일상을 살면서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집회,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희생자 추모 집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당시 국민경제비서관이었던 정태인의 강의를 두 번이나 듣고, 그에게 공짜로 택시 태워준 일화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50대 중반의 이 택시 노동자는 2007년 결단을 내린다. 그저 순박한 사람으로 반백년을 살아온 이 사내는 작은 쪽지를 남기고, 주머니에 오백원짜리 두 개를 담고 한미FTA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 호텔 정문으로 향한다. 그리고 불이 타올랐다. 타오르는 불덩어리가 소리를 질렀다. "한미FTA 폐기하라!" 불덩어리가 시꺼먼 재가 되고 그을음이 되었고 중년 남성의 팔뚝질과 구호는 구조대원이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로 잦아들었다.
몸에 불을 지르는 그 찰나에도 비정규직 생각한 그
4월 1일, 스스로 불태워 세상을 두드린 그의 편지가 공개되었다.
망국적 한미FTA 폐지하자. 굴욕 졸속 반민주적 협상을 중지하라. 나는 이 나라의 민중을 구한다는 생각이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비열한 반통일적인 단체는 각성하고 우월주의적 생각을 버려라.졸속 밀실적인 협상 내용을 명백히 공개 홍보하기 전에 체결하지 마라. 우리나라 법에 그런 내용이 없다는 것은 곧 술책이다. 의정부 여중생을 우롱하듯 감투쓰고 죽이고 두번 죽이지마라 여중생의 한을 풀자.토론을 강조하면서 실제로 평택기지이전, 한미FTA 토론한 적 없다. 숭고한 민중을 우롱하지 마라. 실제로 4대 선결조건, 투자자 정부제소건, 비위반제소권 합의해주고 의제도 없는 쌀을 연막전술로 펴서 쇠고기 수입하지 마라. 언론을 오도하고 국민을 우롱하지 마라.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은 싫다. 나는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 저 멀리 가서도 묵묵히 꾸준히 민주노총과 같이 일하고 싶다. - 민주택시 조합원 2007.4.1 허세욱 드림.그가 세상을 떠난 4월 15일, 두 번째 유서가 세상에 나왔다.
한독식구. 나를 대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읍니다. 나는 절대로 위에 설려고 하지 안았읍니다. 모금은 하지 말아 주세요. 전부 비정규직이니까.동지들에게 부탁(나를 아는 동지)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전국에 있는 미군기지에 뿌려서 밤새도록 미국놈들 괴롭히게 해주십시요. 효순미선 한을 갚고. 돈 벌금은 내돈으로 부탁. - 2007. 4. 1.문인들은 가난하니 장례식에서 부의금을 받지 말라던 게 박완서 선생의 말이던가. 이 노동자는 스스로의 몸에 불지를 준비를 하는 그 찰나에도 비정규직의 주머니를 걱정했다.
괴로워하지만 말고, 무엇이든 하자또 한번의 4월 15일이 돌아온다. '나는 나를 버린 적이 없다'던 그의 고결한 영혼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우리를 버리고 살고 있을까.
수십 년을 해고노동자로 살고 있는 한 노동자(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는 한진중공업이 법원에 낸 가처분신청(크레인 퇴거, 사업장 출입금지)이 받아들여지면서, 하루에 벌금 100만 원을 내야할 처지에 놓였음에도 85호 크레인 위에서 100여 일을 보내고 있다. 또 한 하청노동자(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조직위원회 강병재 의장)는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탑에 올라 맨 몸으로 '우리'를 버리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다.
황사와 방사성물질로 '외출'을 자제하는 일상에서 거리로 거리로 나서는 재능교육 선생님들이, 발레오 공조 노동자들이, 전주 버스 노동자들이, 롯데 손해보험 청소 노동자들이 또 수만의 노동자들이 일상의 무심함 속에 싸우고 있다.
날라리 외부세력들이 청소 노동자의 편이 되고, 가수와 의사와 레슬러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상처를 함께 씻어내기 위해 난장을 벌이고 있다. 가슴 저리는 또 하나의 이름 앞에 괴로워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기보다, 무엇이든 하자. 소주 한 병 값의 후원도 좋고, 응원의 글도 좋으니 뭐든 좀 하면서 부채를 씻자. 그것이 그들이 그토록 원한 '내일'을 우리가 사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