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판', 굿을 하는 곳을 말한다. 우리는 흔히 이 굿판이라는 것을 두 가지로 해석한다. 첫째는 신령을 맞이하는 '맞이굿'판을 이야기 하는데 이는 무의식의 절차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두번 째는 풍물판을 말한다. 아주 오래 전에는 이 두 가지를 혼용해서 사용한 듯도 하다.
지난 9일 토요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있는 한 집을 찾았다. 이 집에서 '기자(祈子, 복을 빌어주는 사람)'인 만신이 자신이 섬기는 신령들을 위한 '맞이굿'을 한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일년에 한 번, 혹은 삼 년에 한 번씩 자신의 신령들을 위한 굿을 한다. 이 굿을 '맞이굿'이라고 한다. 신령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이날 맞이굿을 하는 당사자인 주무(主巫)는 고성주(남, 55)이다.
스스로를 만신이라 부르는 '신령과 결혼한 남자'고성주는 자신을 '무녀(巫女)
혹은 '만신(萬神)'이라고 즐겨 부른다. 만신이란 많은 신령들을 모시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고성주는 그렇게 스스로를 부르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남을 위해 기원을 해주고, 신령들의 말인 신탁(神託)을 전하는 남자, 고성주는 신령과 결혼한 남자다.
벌써 무신의 집제자로 둥지를 튼 지 38년이 훌쩍 지났다. 어려서부터 신병이 와 집에서 내쫓기기도 했다. 그저 춤이 좋고 소리가 좋아,
발탈(발에 탈을 씌워 갖가지 동작을 행하는 탈놀이)의 명인 고 이동안 선생을 쫓아가 춤을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신어머니에게서 경기도의 전통 무녀제 굿을 이어받았다. 고성주의 굿은 늘 질펀하다. 음식을 차려도 그냥 질펀하게 차린다.
남들은 3년에 한 번씩 하는 맞이굿도 버겁다고 한다. 그러나 고성주는 일년에 두 차례 빠트리지 않는다. 봄에는 '꽃맞이 굿'으로, 가을에는 '단풍맞이 굿'으로 하늘을 연다. 그리고 자신의 신자들에게 하늘의 복을 끌어다가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맞이굿을 하고 난 다음에는, 마을 어르신들을 모셔다가 술과 고기를 대접하며 푸짐하게 경로잔치를 벌인다.
벌써 그렇게 한 지가 28년이 지났다. 그래서 많은 표창장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것보다 남들에게 베푸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일년에 한두 차례 쌀을 모아다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신령과 결혼을 한 남자'기 때문이란다.
고성주의 집 이층으로 올라가면 뒤편에 화성이 보인다. 바로 근처에 화성의 봉수대가 있다. 이렇게 화성이 보이는 집안에서 굿을 한다. 남들은 주변에서 시끄럽다고 하는 것이 두려워, 굿당이라는 산 속으로 숨어든다. 그러나 고성주는 늘 당당하다. 매년 한 번도 집을 떠나서 맞이굿을 한 적이 없다.
9일 아침부터 신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모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천궁맞이'를 할 상 옆에 마련한 촛대에 불을 켠다. 오늘 굿에서 좋은 복을 받아가기 위해서다. 고성주는 자신이 모시는 신령을 위하는 굿에는 항상 악사들을 초청한다. 한두 명이 아니라 삼현육각을 잡힌다. 부정을 가시게 한 후 먼저 신령들을 모신 전안에서 인사를 드린다. 모든 신령들에게 자신이 오늘 신령들을 위한 굿을 한다는 것을 고하는 의식이다.
14시간 동안 이어진 굿판, 열린 축제의 장마당에 차려진 천궁맞이 상은 신들을 모셔 내리는 곳이다. 신격을 상징하는 무복을 갈아입으면서 차례대로 접신이 이루어진다. 고성주의 굿은 '열린 굿판'이다. 누구나 굿판에 들어올 수가 있다. 그곳에서는 빈부귀천이 없다. 신령 앞에서는 모두가 동일하다. 남녀노소도 없다. 그래서 굿판을 '열린 축제'라고 한다.
천궁맞이 상 앞에 작은 안주상이 하나 마련이 되었다. 창부신(예능신)이 강림을 한다. 이때부터 굿판은 흥으로 치닫는다. 악사들의 음악소리에 맞추어 쇠를 들고 신명나는 춤을 한바탕 펼친다.
"내가 누구냐 하면 창부씨요. 내가 저 아래 남도 끝에서 경상도를 거쳐, 전라도 지리산을 거치고, 충청도 계룡산에 들러 경기도 삼각산을 한 바퀴 돌아, 이 터전에서 굿을 한다고 해서 들렸다오.""잘 오셨습니다.""그런데 이제 얼른 한 잔 마시고 한양 성내로 들어가려고 하오.""아니 한양은 왜 가세요?""내가 거길 가서 춤 배우고 소릴 배워와야겠소." "아이고 그런 말씀 마세요. 춤과 소리는 이곳이 더 잘해요.""하기야 이곳은 도당창부의 근본이니 그럴만도 하오."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잔을 비운다. 막걸리를 따라 이사람 저사람 골고루 나누어 준다. 지나가던 구경꾼도 한 잔 얻어마신다. 이것이 바로 열린 굿판의 모습이다.
재담이 점점 농익어간다. 소리 한 자락이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고, 절로 어깨춤들을 춘다. 굿은 그렇게 고조되어 간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굿은 오후 12시가 다 되는 시간에 끝이 난다. 그 때까지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도와줄게 걱정마라, 일이 잘 되게 해주마'라는 덕담을 듣는다. 그 소리만으로도 사람들은 용기를 갖는다. 굿판은 흥이 넘친다. 그런 푸짐한 웃음이 있고, 춤과 소리, 반주음악이 하루 종일 이어지는 곳. 그것이 바로 '열린 축제의 장' 굿판이다.
경기도 전통 안택굿을 4대째 이어오고 있는 고성주. 전안에 모신 무신도(巫神圖) 역시, 4대를 대물림한 것이다. 굿을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던 고성주. 뼈 있는 말을 한다.
"굿은 정말 신명나는 축제죠. 괜히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죠. 우리의 굿은 하늘을 열어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신령한 행위입니다. 뛸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해야죠. 올해는 모두가 많이 힘들어 해요. 그래서 더 열심히 빌어주어야죠. 그것이 무녀의 할 일이란 생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