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겨울, 북측 군인들에 의한 연평도 마을 포격 사건으로 남측 민간인과 해병대 군인이 사망하는 등 어느 해보다 혹독하고 불안한 시간을 보낸 작은 어촌 마을에 평화풍어를 기원하는 대동제가 열려 모처럼 주민들의 표정에 환한 미소가 가득 찼다.
"사고 이후로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찾아준 건 처음이지요. 3일 전부터 면사무소에서 주민들과 풍어기원제를 올리면서 기대는 했었는디, 막상 이리 많은 사람들이 오니까 기분도 좋아지네요. 모처럼 외지사람 구경 실컷 하니 연평도도 사람 사는 마을 같네요.(웃음)""안 겪어본 사람은 암것도 모를 겁니다. 시간이 지나긴 했어도 얼마 전에 또 정부에서 훈련한다는 소리에 주민들은 또 불안해했지요. 사격 소리가 나거나 헬기 소리만 들어도 겁부터 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음식도 나눠 먹고 막걸리도 한잔하면서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으니 좋네요. 제발 정부에서 더 이상 연평도를 '전쟁마을'로 내몰지 말았으면 좋겠네요"4월 11일 정오, 평화풍어를 기원하는 대동한마당을 시작하기 전에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주민들이 마련한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눠먹으며 오간 이야기이다. 주민들 대부분이 60대 이상의 노인들로 구성된 작은 어촌 마을에는 아직 포탄 맞은 흔적과 화약 냄새가 여전했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예전의 자연스러움과 고요함, 그리고 평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을 곳곳에 배치된 해병대 순시차량의 행렬대오와 '두두두두' 심하게 요동치는 군 헬기 소리에 마을 전체의 분위기는 아직 긴장이 감도는 듯 보였다. 또한 포탄 세례를 맞았던 몇몇 집의 파괴된 흔적과 본의 아닌 전쟁의 상처로 가족과 생이별을 하며 살아가는 주민들의 아픔도 고스란히 묻어나 있는 듯 했다.
가자! 연평도로, 오라! 평화상생의 지대로유난히도 맑고 푸르른 봄 하늘의 평온함을 안고서 인천연안여객터미널로 시민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오전 8시, 수속을 마친 300여 명은 어린아이부터 백발의 할아버지까지 저마다 바람을 가슴에 품고 대연평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종교인·시민단체 회원·정당인·인천시 공무원·연평향우회 회원·언론사 취재진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모인 사람들로 작은 규모의 배는 1, 2층 자리가 꽉꽉 찼다.
오전 9시, '연평도 가는 길'이라는 부제로 진행된 선상 프로그램은 봄날의 설렘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했다. 서로 자신이 속한 단체를 소개하며 통성명을 하고, 유상호 명창의 '연평도 배치기' 노래를 따라하면서 모처럼 흥겨운 전통가락에 흠뻑 취했다.
그리고 이어진 '평화메시지 작성하기'에는 오색빛깔로 구성된 한지에 서해5도와 인천 앞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드는 것에 대한 바람을 적었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기에 바람은 모두 비슷했지만, 특히 김은서 초등학생이 발표한 "아무런 싸움 없이 예전 그대로 꽃게잡이가 대박 나길 바랍니다"라는 메시지가 진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오전 11시, 2시간이 넘는 항해 끝에 드디어 도착한 연평도 선착장. 기다리던 마을 주민들의 환한 미소와 두 남녀 학생의 꽃다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차가운 바닷바람과 주민들의 환대가 뒤섞여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섬에 발을 들여놓은 시민들은 이내 저 멀리 보이는 연평도 마을까지 도보행진을 벌였다.
길게 늘어진 바닷길을 걸으며 시민들은 각자가 적어 놓은 평화메시지를 소원줄에 걸며 기도를 올렸고, 모처럼 고향을 찾은 연평향우회 소속 회원들은 감회가 남다른 듯 회상에 잠겨 있었다. 또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처음 외딴 섬을 찾은 아이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뛰어다녔다.
아픔을 치유하며 희망을 노래하다마을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정오께, 조선 중기 장군인 임경업 장군을 배향하는 사당인 충민사에서 펼쳐진 평화풍어제와 연평교회에서 진행된 평화기도회에 함께한 시민 중 일부는 동네 어귀 곳곳을 돌며 주민들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체험했다.
평소 자주 이곳 마을에 놀러 왔었다는 김종현씨는 폭격 맞은 작은 동네를 설명하면서 "여기가 연평도의 명동 거리였어요. 여기 폭격 맞은 집이 바로 미용실이었고요, 저기 보이는 다음 집이 바로 식당이었어요. 아직 원상복구가 안 돼 그날의 참혹함이 그대로 간직돼 있지요"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김씨의 설명대로 작은 동네 곳곳에는 웬만한 상점들의 간판이 즐비해 있었고, 유독 여관 간판이 눈에 띌 정도로 많았다. 아마도 작은 어촌 마을에 놀러와 연휴를 즐겼던 관광객들과 해병대 군인들의 숙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길을 가다 삼삼오오 걸어가는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기원제 소식에 음식을 마련하고 도움을 주러 운동장으로 향하는 주민들이었다. 여느 시골 마을 어머니들의 모습 그대로다. 연평면사무소를 지나 수협을 돌아나오는 길목에 공사 기계음이 귀를 때린다. 이곳도 하루 빨리 제 모습을 찾아 옛날의 그 평온함을 되찾기를 바란다.
일시적, 위장적 평화가 아닌 진정한 평화를마을 주민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정겨운 담소를 나눈 시간을 뒤로한 채, 오후 1시께 본 무대인 평화풍어기원제의 막이 올랐다. 기원제가 치러진 연평종합운동장 대운동장에는 주민 200여 명을 포함해 총 500여 명이 형형색색의 풍선 꽃을 피우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평화풍어 기념식, 4대종단 평화염원의식, 추모 및 평화음악회, 진혼굿, 평화풍어선포식 그리고 평화풍어대행진 등으로 진행된 본 마당에서는 유주희 무용단ㆍ박준영 국악단ㆍ잔치마당예술단 등이 참여해 문화예술로 평화를 염원하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4대 종단 평화염원의식을 진행한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 종교인들은 각각 "서해5도 인천앞바다가 평화의 섬, 평화의 바다로", "일시적 위장적인 평화가 아닌 진정한 평화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평화통일을 위해 힘쓰는 민족으로 거듭나는", "서로 화합하고 일체감을 느껴 평화공동체, 민족공동체적인 통일을 위해 다 함께 노력하자"라는 염원을 전해 주었다.
이어 마지막으로 진행된 평화선언문 선포식에는 해병대 장병, 연평도 주민과 학생, 인천시 공무원, 기원제 추진위원회 공동대표단 등의 선언문 전달식이 진행됐다. 또한 선착장 출구에서는 띄배 보내기와 해상 퍼레이드, 평화풍선 날리기 등으로 모든 기원제가 마무리 됐다.
서해5도와 인천 앞바다를 영구적 평화지대로참가자들은 평화선언문을 채택하고 "남과 북이 이러한 군사적 갈등이 계속된다면 서해5도와 연평도 주민들은 불안, 원망, 증오 속에서 또 다른 남북충돌이라는 위기의식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고 전망하고 "이는 곧 주민들의 슬픔이 국민 모두의 아픔으로 회귀될 수밖에 없기에, 국가적으로나 민족적으로 큰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며 "그러하기에 남과 북은 대화와 이해를 통해 평화를 모색하는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이에 남과 북은 우발적 전쟁참화를 불러올 수 있는 긴장고조를 중단해야 하고, 적대적 관계를 풀며, 상호존중과 배려의 원칙하에 평화로운 상생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 '주한미군 내보내는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운동 추진위원' 확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인천 평통사 유정섭 사무국장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원인을 모두 제거하자면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폐기, 북핵 포기를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 남북군축을 함께 해결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해안 풍어제인 연평도 풍어제의 유래는 조선 16대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이 명나라를 통해 청나라를 치고자, 중국 산동성을 향하던 중 연평도를 통과하게 될 무렵, 선원들의 식수와 부식을 얻기 위해 연평도에 정박한 과정에서 유래됐다. 연평도 풍어제는 이때부터 매년 음력으로 1월 15일께를 전후로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