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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물가문제의 실상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해 가을부터 3%를 상회하더니 금년 들어서는 4%를 넘어섰다. 1월에 4.1%, 2월에 4.5%, 3월에는 4.7%를 기록하며 5%를 넘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무상교육과 무상급식의 효과를 차감한다면 이미 3월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5.1%가 되었을 터이다. 특성화고교의 납입금을 면제해준 것과 무상급식 정책의 확산으로 학교 급식비가 내려간 것이 물가상승률을 0.4가량 줄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자들이 생활 속에서 직접 체감하는 물가의 상승률은 더욱 크다. 통계청이 작성하는 생활물가지수는 2월에 이미 5%를 넘어서서 5.2%를 기록했다. 이상한파와 구제역 등의 영향으로 신선식품 가격이 특히 급등한 탓에 소위 장바구니 물가는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소비자물가만 오른 것이 아니다. 원유를 포함해서 국제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수입물가 또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이를 반영하여 생산자물가지수도 2월에 6.6%나 상승했다.

정부는 식품가격 상승폭이 꺾이는 등 점차 물가상승세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식품이나 유류처럼 일시적 등락이 심한 품목을 제외한 근원물가지수 또한 꾸준히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까지도 1%대를 유지하던 근원물가지수가 2월에는 3.1%, 3월에는 3.3%까지 올랐다. 이는 향후 물가상승세가 상당히 지속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3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중기 물가 안정 목표의 중심치인 3%를 '상당 폭'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하였으며,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내놓은 <아시아경제전망>에서는 한국경제가 올해 4.6% 성장하고, 물가는 3.5%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일부 민간연구소들은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을 4%대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정부가 앞으로 강력한 안정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 한 올해 물가상승률은 4%를 상회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각종 물가지수 상승률
각종 물가지수 상승률 ⓒ 코리아연구원

물가상승은 경우에 따라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모든 명목가격이 같은 비율로 증가한다면 소위 '화폐중립성'이 성립하여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적 허구이고, 현실경제에서는 각 품목마다 가격상승률이 달라지고, 금리나 환율 등도 반드시 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어서 물가상승은 대개 상당한 상대가격의 변화를 수반한다. 이는 곧 소득분배의 변화를 의미하며, 이러한 변화가 심할 때에는 이에 대처하는 일이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에 비해 더욱 중요해지면서 심각한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림 1. 임금상승률과 명목성장률>
 임금상승률과 명목성장률
임금상승률과 명목성장률 ⓒ 코리아연구원

물가상승이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우선 명목금리가 충분히 따라잡기 이전까지는 실질금리가 낮아짐에 따라서 채무자에게 유리하고 채권자(자산가 혹은 금리생활자 포함)에겐 불리하게 작용한다. 임금노동자의 경우는 인플레이션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노동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임금상승이 주도하는 물가상승 국면이라면 임금노동자가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의 경우나 통화증발 혹은 부채폭증으로 수요가 확장되면서 물가상승이 촉발되는 경우는 노동자에게 불리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플레는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경우가 유리했던 경우보다 훨씬 많았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현재도 <그림 1>이 보여주는 것처럼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임금상승률이 명목성장률보다 낮은 상태가 2007년 4/4분기 이후 지속되고 있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형태의 인플레라는 것이다.

물가상승이 가속화되면 그 악명 높은 하이퍼인플레이션까지 갈 수도 있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리어카 한 가득 지폐를 싣고 빵을 사러 가던 끔찍한 날들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단 인플레의 가속화가 시작되면 이를 억제하기 위한 안정화 정책 혹은 긴축정책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긴축정책에 의한 경기위축과 실업을 초래하게 된다.

즉, 안정화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물가상승의 가속화를 매개하는 핵심고리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이다. 물가상승 -> 기대인플레이션율 상승 -> 임금인상 및 가격인상 -> 비용 상승 인플레의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기대인플레이션율도 점차 상승하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그림 2. 기대인플레이션율의 최근 추이>
 기대인플레이션율
기대인플레이션율 ⓒ 코리아연구원

Ⅱ. 물가상승의 근인: 비용 상승 수요견인

정부에 따르면 최근 물가 상승의 주범은 비용 상승이다. 여기엔 해외요인도 있고, 국내요인도 있다. 해외요인은 수입물가 상승에 반영되는데, 환율효과와 더불어 원유, 곡물 및 원자재 등의 가격상승이 초래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본격화 된 세계경제 회복세에 따른 수요증가에 더해서, 최근 아랍정정의 불안이나 기상이변에 의한 작황부진 등 공급측 애로가 겹쳐서 이러한 비용 상승이 발생했다. 게다가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양적완화정책에 따른 달러화 가치 하락과 글로벌 유동성 확대도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고,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물가가 빠르게 오름에 따라 중국발 인플레이션이 세계로 퍼지는 효과도 있다.

<그림 3. 2011년 품목별 물가상승륭>

 물가상승률
물가상승률 ⓒ 코리아연구원

해외요인이 다는 아니다. 비용 상승을 유발하는 국내요인으로는 구제역 파동과 이상한파 등으로 인한 농축수산물 공급차질이 큰 영향을 미쳤고, 전세난이 가중되면서 집세가 상승한 것도 영향이 있었다. 이러한 공급요인 혹은 비용 상승요인의 영향력은 <그림 3>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3>은 금년의 물가상승은 농수축산물과 석유류, 집세 등이 주도한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림 3>은 유달리 공공요금만 거의 오르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곧 추후에 큰 폭의 인상요인이 잠재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급등은 "beyond control"이라고 한 것은 곧 해외요인 때문에 물가가 오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부분적으로는 맞는 얘기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해외요인이나 이상한파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요인이 다라면 우리나라 물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빠른 상승을 해야 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금년도 물가상승률의 국제비교를 해보면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에스토니아 다음으로 2위이며, 유로존의 2.3%, 미국의 1.6%, 일본의 0%와는 비교가 안 되게 가파른 상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뭔가 다른 얘기가 더 있다는 것이다. 우선 비용 상승 중에서도 전세난은 불가항력이 아닌 정책실패의 문제임이 분명하고, 비용 상승 외에도 수요 견인의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확실하다.

<그림 4. 총수요 압력>
 총수요 압력
총수요 압력 ⓒ 코리아연구원

<그림 4>는 통계적 기법을 이용하여 KDI가 추정한 총수요 압력의 추이를 보여준다.  KDI 외에도 여러 기관에서 추정한 것들을 보면 대체로 2010년 하반기부터 수요가 공급을 넘어섰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이미 작년부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함으로써 발생하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근원물가나 서비스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현상이다.

Ⅲ. 물가상승의 원인: 정책요인과 경제구조

앞 절에서 최근 물가상승이 비용 상승, 즉 공급측의 문제와 수요 견인, 즉 수요측의 문제가 함께 작용해서 빚어진 결과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일찍이 칼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뻔 한 사실이다.

정작 중요한 분석의 대상은 수요와 공급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요인,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렇게 물가상승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하면 정책과 구조, 두 가지 문제가 등장한다. 고환율, 저금리, 적자재정으로 나타난 성장지상주의적인 거시경제정책이 그 하나요, 수출지향적 독점대기업 위주로 형성된 경제구조가 또 하나의 원인이다.

<그림 5. 이명박정부의 고환율 정책>
 환율
환율 ⓒ 코리아연구원


<그림 5>는 이명박 부 출범 이래 고환율정책이 지속되어 모든 주요 통화에 대해 원화가 큰 폭으로 평가절하 되었음을 보여준다. 달러처럼 약세를 보인 통화에 대해서도 2007년 말과 2010년 말 사이에 명목환율이 23.4%나 상승했다. 한국과 미국 사이의 물가상승률 격차를 감안한 실질환율의 변화를 보더라도 원화가치가 17.3% 하락한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고환율은 수입물가 상승을 초래하여 전반적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며, 가계에서 수출기업으로 소득을 이전하는 효과를 지닌다. 실제로 이명박 부 아래서 국민소득의 증가에 비해 가계소득의 증가는 크게 뒤졌으며, 수출대기업들을 거느린 거대재벌들의 성장은 눈부신 것이었다. 물가비상이 걸린 최근에야 정부는 환율 하락을 용인하고 있으나, 이는 실기한 후의 뒤늦은 대응이라 할 것이다.

금리정책도 물가불안을 초래한 주요 요인이다. 현 정부는 성장에 집착한 나머지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면서 저금리정책을 강요했다. 글로벌금융위기로 인한 저금리 정책을 경기회복 이후에도 지속했다. 전례 없는 재정부차관의 열석발언권 논란부터 시작해서, 비서관 출신 측근을 한은총재로 임명하고 한국은행의 청와대 직보를 일상화하는 등 한은의 독립성은 땅에 떨어졌다. 그 결과 작년 성장률이 6.1%를 기록하고 물가상승세가 뚜렷이 나타나는데도 불구하고 금리인상 시기를 놓침으로써 이제는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가 되고 말았다(<그림 6>).

<그림 6. 명목성장률과 정책금리>
 명목성장률
명목성장률 ⓒ 코리아연구원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미 2009년말 기준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44%로서 금융위기를 낳은 미국보다도 20% 이상 높았고, 지난해에는 이 비율이 더 상승했다. 가계부채 대부분이 변동금리를 적용 받고, 만기 일시상환 부채 비율도 높아 금리상승기에 경제 불안의 뇌관이 될 수 있다.

가계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의 부채 증가도 심각한 양상이다. 부자감세정책으로 세수가 줄고, 4대강 업 등 세출이 확대됨으로써 재정적자가 커지고 결과적으로 정부부채가 OECD국가 중 최고속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공기업의 부채 문제도 심각하다. 공기업 부채는 지난 8년 간 민간기업 부채에 비해 두 배 이상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정부가 토지주택공사나 수자원공사 등 공기업에게 무리한 사업을 강요한 결과다. 

<그림 7>은 물가불안의 이면에 있는 부채증가 문제를 한 눈에 보여준다. 개인, 비금융기업, 정부의 이자부 금융부채 총계는 작년 말 현재 약 2586조 으로서 2002년 말의 1249조 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 명목GDP 대비 비율을 보더라도 2002년 말의 1.68배에서 작년 말 2.21배로 대폭 상승하였다.

<그림 7. 이자부 금융부채의 증가>
 금융부채
금융부채 ⓒ 코리아연구원

성장지상주의적 정책과 함께 고물가의 이면에는 경제구조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수출지향적인 대기업들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산업구조와 이와 맞물려 있는 분절화된 노동시장이 만들어낸 경제구조가 고물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환율은 곧 교역재(공산품, 농산품)의 상대가격이 비교역재(서비스)에 비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 임금이 낮은 빈국일수록 노동집약적인 서비스가격이 낮기 때문에 교역재를 기준으로 형성된 환율로 평가한 국민소득에 비해 구매력을 기준으로 평가한 국민소득이 상대적으로 높고, 반대로 부국일수록 서비스가격이 높아 구매력기준 국민소득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는 것은 경제학의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수준에 비해 임금이 낮고 특히 서비스업 임금이 더욱 낮다. 따라서 구매력기준 국민소득이 높은 편이며, 교역재의 상대가격이 높다. 이러한 고환율 구조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비정상적인 생산성 격차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림 8>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생산성의 미국 대비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8. 제조업과 서비스업 생산성의 미국 대비 비율>

 제조업과 서비스업 생산성
제조업과 서비스업 생산성 ⓒ 코리아연구원


(자료: 생산성본부 국제생산성 비교 통계)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미국의 30%가 채 되지 않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반면, 제조업은 200년에 미국의 약 45%수준을 보이고 점차 상승하여 2008년에는 약 55%수준에 이르렀다.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임금수준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으로서 이러한 대폭적인 격차와 격차의 증가는 서비스업 임금상승의 부진을 반영하는 것이다.

산업은 독점적인 대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는 반면 노동조합은 조직률이 미미하고 협상력도 약한 데서 나오는 자본과 노동 간의 힘의 비대칭성도 물가문제의 이면에 있는 구조적 문제의 주요한 측면이다. 시장지배력이 있는 대기업들이 주력을 이루는 산업분야에서 비용 상승은 곧바로 제품가격으로 이전되지만, 물가상승에 따른 임금인상은 더디고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노동시장이 분절화되어 비정규직, 중소기업, 서비스업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으며 물가상승에 더욱 속수무책이다. 이러한 노동시장 분절화 구조와 수출대기업중심의 산업구조 사이에 일정한 조응관계가 성립하고 있다.

거시경제적 구조의 문제와는 별도로 가계의 지출구조에도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과거의 정책실패가 누적되어 가계지출에서 교육비와 주거비 부담이 과중하다는 점이다. 최근 증가율은 둔화되었지만 사교육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대학 등록금은 지난 10년 간 다른 물가에 비해 2.2배에서 3.2배 빠른 속도로 상승하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 되어버렸다. 또한 주거안정보다 건설업자와 투기세력에 휘둘린 주택정책으로 인하여 소득 대비 집값이 터무니없이 높고, 전세난 등으로 주거비가 더욱 상승하고 있다.

Ⅳ. 물가안정 정책

물가불안이 가시화되자 정부는 금년 초에 종합물가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한계가 있는 정책이었다. "5% 성장, 3% 물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불가능한 거시적 목표를 그대로 둔 채 농산물, 공공요금, 석유제품, 등록금 등에 대해 품목별 대응책만을 마련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기업을 압박하는 어이없는 현실이 전개되고, 실효성을 결여한 전월세 대책도 발표되었다.

하지만 물가안정보다는 성장목표에 집착하는 거시정책기조를 유지함에 따라 이러한 미시정책은 별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 물가상승률이 계속 상승하고 이것이 민심이반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정부도 거시정책기조를 물가우선정책으로 선회하였다. 3월 10일 제81차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에 … 국정의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후 뒤늦게나마 금리 및 환율정책이 변화하고 있다.

정부의 물가대책은 만시지탄이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은행이 독립성을 상실함으로써 물가불안심리를 잠재우는 역할에 근본적인 한계가 생겼고, 공정위는 본연의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못하면서 여타 부처와 함께 구시대적 관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사실 이명박 부 초기부터 통신요금 인하 압력, MB물가지수 등 물가대책이랍시고 시장원리와 배치되는 관치 행태를 반복해왔다. 최근 정유사 팔 비틀기로 휘발유가격 인하를 얻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공공요금 동결처럼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고 추후에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단기적으로 물가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안정 최우선으로 하는 과감한 거시정책 선회가 필수적이다. 환율의 대폭 하락과 금리의 현실화를 단행하고, 재정건전화도 도모해야 한다. 이로써 인플레 기대심리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단기적인 대책과 아울러 중장기적인 정책도 중요하다. 중장기적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 물가문제는 언제라도 다시 서민가계와 경제안정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장기적 정책으로는 다음의 여섯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안정, 분배, 성장을 균형 있게 추구하는 거시정책기조를 확립해야 한다.
둘째, 식량 및 에너지 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요구된다. 국내 농업생산기반 포기정책을 수정하고, 에너지 정책도 강력한 소비 증가 억제 정책으로 선회하여야 한다.
셋째, 철저한 독과점 규제 및 경쟁촉진정책으로 독점가격 형성을 방지해야 한다. 물가상승 국면에 일시적으로 기업을 압박하는 정책이 아닌 상시적인 경쟁정책 추진이 중요하다.
넷째, 노동시장 구조개혁으로 노동자 가계의 실질소득을 지지하는 정책도 중요하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사용제한 및 보호강화, 노동조합 조직 및 활동 원활화 등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다섯째, 교육비와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한 과감한 정책변화도 필요하다. 서열화 교육을 철폐하고,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재개발정책 전환, 전월세 인상 상한제 도입 등 주거안정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정책변화를 담보하기 위한 제도개혁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은행과 공정위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제고해야 할 것이며, 빈사상태에 처해있는 노사정위원회도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추진체로 재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집필한 코리아연구원 현안진단188호입니다. 홈페이지(www.knsi.org)에서 원문 및 다양한 정책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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