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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보요는 누구에게나 내리는 게 아니었다. 왕실에서 은밀하게 쓰는 건 음양초(陰陽燭)와 머리에 뒤꽂이로 꽂는 금보요(金步搖), 기력이 완전히 허해진 상감을 위해 '벌떡이'라 부르는 오석산(五石散)을 쓴다. 이것은 어느 왕조든 은밀하게 쓰는 방사용품(房事用品)이다.

음양초는 봉황 두 마리가 그려진 황촉이지만, 여기에 그려진 건 봉황이 아니라 암수가 함께 나는 비익조(比翼鳥)다. 이 새는 암수가 각기 날개 하나에 눈이 하나기 때문에 하늘을 날려면 암수가 합해져야 가능하다. 그래서 부부화합을 나타내는 글귀엔 '하늘에 있어선 비익조가 된다'는 게 눈에 띄게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벌떡이'란 이름의 오석산은 또 다른 이름이 있다. 한식산(寒息散)이다. 오석산이라 부른 것은 다섯 가지 광물성 약재를 합했기 때문으로, 단사(丹砂)를 비롯해 웅황(雄黃), 백예석(白譽石), 증청(曾靑), 자석(磁石) 등의 화합물이다. 이 약을 복용하면 정력은 더욱 비상하게 되고 정신은 날아갈 듯 상쾌해진다.

그런데, 왜 한식산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그것은 다섯 가지 약재가 합해진 탓에 지나치게 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열이 나면 부지런히 발산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얇은 홑옷을 입고 차가운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한식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또한 열을 발산시키기 위해 밖으로 돌아다녀야 하므로 '행산(行散)'이란 이름도 있다.

어쨌거나 오석산은 불용해성 광물성 약품이다. 중국의 역사를 볼 때, 장생불사하여 신선에 이를 수 있다는 수은의 화합물인 단사(丹砂)에 중독돼 비명에 세상을 떠난 당나라 황제가 스무 명 중에 여섯 명이니 놀랄 수밖에 없다.

태종이 쉰 넷에 사망하고 헌종이 마흔 둘, 목종이 스물 아홉, 경종이 열일곱, 무종이 서른 둘, 선종이 마흔 아홉이었다.

춘추전국시대 사상가인 고자(告子)는 '식색성야(食色性也)'라 했다.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란 것이다. 그렇기에 올바른 길을 따라 건강을 향상시켜 지속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왕도약(王道藥)을 가까이 하라고 권한다.

일시적인 흥분과 자극을 나타내는 패도약(覇道藥)은 지혜롭게 물리쳐야할 사약(邪藥)이라고 경계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궤보요는 뭔가? 음양초가 미약을 초심지에 묻혀 방사를 돕는 것이라면, 금보요는 나비 모양으로 머리에 꽂는 '뒤꽂이 장식'으로 뱃속에 미약이 들어 있어 사내를 흥분시키는 물건이다.

그렇다 보니 사내에게 필요한 그런 물건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궤보요를 내리자 김주서는 낯을 환히 폈었다.

"아하하하, 이제야 이놈의 실력을 대비마마께서 알아준 모양입니다. 역관 집안이지만 내가 큰일을 하실 걸 마마께선 아신 모양이에요."

연일 그의 사랑채엔 소문을 들은 한량들이 선물을 들고 찾아오는가 하면, 예기치 않게 중인이 아닌 선비들까지 모습을 드러내 그의 위상이 달라보였다.

쇄락한 역관 집안이지만 조선팔도를 찌렁하게 흔들었던 안동 권문(權門)에서 아내를 맞이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남편은 대비전에 출입한 게 자신의 구수한 구담(口談) 때문이라 알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김주서는 하는 일 없이 바쁜 위인으로 거리곳곳을 장돌뱅이처럼 돌아다니는 것도 꽃같은 색시가 집에 있는 데도 새앙 쥐처럼 기방을 기웃거린 것도 안동 권문의 위세 탓이었다.

그렇다 보니 날마다 술에 곤죽이 돼 들어와서는 역관이 어쩌니 저쩌니 고래고래 악을 쓰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아들의 악다구니에 양념을 치듯 그의 어머니 푸념이 잇대어졌다.

"빌어먹을 자슥아 밥 줘! 니들만 처먹고 어민 굶겨죽일 셈이냐! 에잉, 고얀 것들."

한쪽 귀가 먼 시어머니는 하루 종일 군것질에만 관심 있었다. 품앗이로 채마밭 잡초를 뽑아주고 개떡 두어 개와 고구마를 가져와도 잽싸게 자기 쪽으로 챙겨 그걸 먹느라 정신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갓 시집 온 처녀가 무슨 일을 얼마나 하여 남편과 시어머닐 먹여 살릴 것인가. 쌀 한 톨 들어있지 않은 옹기그릇을 볼 때마다 한숨부터 쏟아져 나왔다.

하루하루 산다는 게 도무지 희망없는 짓거리였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던 남편이 흠씬 얻어맞고 반송장이 되어 업혀 오더니 입만 살아 버럭버럭 악을 썼다.

남편을 간병한다고 삯일을 않다 보니 그나마 먹을 것까지 떨어져 옹기그릇은 거미줄 친 지 오래였다.

"이년아 밥 줘! 니년만 먹구 나는 굶기냐? 이 고약한 년!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년 같으니!"

품을 팔아야 먹을 것이 있어 그나마 모닥 숨이라도 쉴 것인데 손을 놓고 있으니 앞이 캄캄했다. 남편은 하루 종일 잠만 자다  깨어나면 소리소리 고함이었다. 이런 때엔 정신없는 시어머니까지 식욕이 살아 돋는지 입맛을 쩝쩝대며 배고프다 투정만 늘어놓으니 팔자 좋은 역관 집안이라는 게 헛말 같았다. 그러던 차에 왼쪽 눈가에 작은 점이 있는 방물장수 아낙이 찾아들자 한숨부터 몰아쉬었다.

"이보게, 자네가 보긴 어떤가. 비록 망했다곤 하나 그래도 양반가의 피를 받고 태어났는데 잘 나가는 역관 집안이란 말에 시집왔더니 이게 뭔가. 대비전을 출입한다는 남편은 기세 좋게 떠들어대다 지금은 반병신이 돼 자리에 누운 채 소리소리 고함만 지르고, 시어머닌 걸신이 들린 듯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으니 갓 시집 온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한 많은 이 세상 미련 없이 떠나고 싶네."

방물장수 아낙은 두 손을 펼치며 펄쩍 뛰었다.

"아이구 아씨, 그런 게 아닙지요. 아씨가 죽다니요! 그런 소리 마십시오. 어떻게든 살아야지요."

"자네가 보다시피 방법이 없잖은가. 뭘 먹고 산단 말인가? 차라리 미련없이 훌훌 떠나고 싶네."

"아씨, 그래도 그런 게 아닙지요. 사는 사람은 모닥숨이 붙어있는 그 순간까지 아득바득 살아야 합니다. 아씨, 내가 사는 방법을 하나 가져 올까요?"

"사는 방법이라니?"

"이리 사나 저리 사나 세상사는 것은 마찬가집지요. 그러니 아씨께선 내가 방법을 마련해 올 때까지 눈 딱 감고 기다립시오."

방물장수 아낙은 어디서 뭘 하는지 닷새나 소식이 없더니 해질녘에야 나타나 보자기에 든 쌀 닷 되를 내놓고 은근히 목소릴 깔았다.

"아씨는 인물이 반반하니 눈 딱 감고 치마 한 번 올려요. 상대는 가까운 곳에 사는 박초시랍니다. 한때는 관직에 나가 운 좋게 재물을 모았다는 소문인데 서른하나에 상처하고 이제껏 혼자 살아왔답니다. 그동안 혼처가 여러 곳에서 나왔으나 눈 한번 깜짝 하지 않았는데 아씨 얘길 꺼내자 후끈 몸이 달아 애걸복걸 합디다."

방물장수는 힐끗 고개를 틀어 입맛을 쩌업 다시더니 뒷말을 이었다.

"이참에 아씨께서 일을 잘 처리하면 좋은 일 만들어 주겠수. 내가 넌지시 알아보니 박초시 그 사람 이제껏 혼자 산 것은 씨 뿌릴 계집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던 차에 아씨 집안에 대비마마가 내린 '궤보요'가 있다는 말에 후끈 몸이 단 거지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으니 아씨께선 옷섶을 나비 모양으로 오려 문밖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이른바 십첩(拾妾)이었다. 당시의 유행으로 보면 조선사회는 처녀가 시집을 가 남편이 일찍 죽었을 경우, 남의 첩의 되기를 희망하는 경우 옷섶을 나비 장식으로 올려 문밖이나 동산에 올라 들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홀로 사는 사내나 한량들이 여인을 받아들여 첩을 삼았기 때문에 이를 '습첩'이라 했는데 그것은 '첩을 줍는다'는 뜻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권씨 아낙 역시 옷섶을 나비 모양으로 오려 들고 있게 한 것은, 만약 이 일이 들통 나 사내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이 날 권씨 아낙은 집 문 앞에 다가온 가마를 탄 채 앞길을 인도하는 방물장수를 따라갔다. 이윽고 가마에서 내리자 방물장수가 소곤거렸다.

"아씨, 바로 이 집이우. 대문에 빗장을 걸지 않았으니 가만이 밀기만 하면 열릴 거유. 안으로 들어서면 안방에 불이 켜져 있으니 밖에서 낮게 기침하면 방안의 불이 꺼질 거유. 그러면 안으로 들어가 사내 품에 안기면 되우. 이런 말 하긴 그렇긴 한데, 아씨도 오랜만에 남자 냄새 맡는 것 같겠수."

게슴츠레 눈을 뜨고 금방이라도 '오호호호!' 웃을 것 같았기에 권씨 아낙은 걸음을 재촉해 방문 앞에 이르러 낮게 헛기침을 뿌렸다. 기다렸단 듯이 방안에 불이 꺼지며 방문이 열렸다.

이날 권씨 아낙은 사내의 무한한 힘을 느끼고 또 느꼈다. 고래고래 악을 쓰는 남편의 연약한 힘과는 전연 다른 거친 호흡이 어우러진 황소같은 사내의 몸놀림을 느꼈다.

사내는 잠시도 틈을 주지 않았다. 저녁 11시 경인 해시(亥時) 어림에 시작한 놀이는 새벽 다섯 시인 인시(寅時)가 되어서도 기칠 줄 몰랐다.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온 뜨겁고 묵직한 것이 서둘러 나가지 않기를 권씨 아낙은 마음 속으로 바랬을 뿐이었다. 사내는 지치지 않은 용력으로 닭이 두 번이나 울 때까지 몸놀림을 계속했다.

"이제···, 이제 그만 가야··· 해요."

권씨 아낙은 겨우 그 말을 하고서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사내는 한식경쯤 더 방아를 찧고서 '푸우 푸' 단숨을 몰아쉬며 힘차게 알을 까고 내려왔다. 사내가 호흡을 추스렸다.

"언제 다시 오겠소?"
"예?"

"나는 방물장수 아낙에게 이녁을 세 번 만나고 싶다 하여 쌀 서른 가마를 줬소. 자네에게 얼마나 갔는지 모르지만."

"닷 되요."
"엥?"

사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어이없는지 입맛을 쓰게 다셨다. 이내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세. 쌀섬이야 내게 넘칠만큼 있으니 서른 가마는 다시 자네에게 주겠네. 그 대신 자네가 우리 집에 몇 번은 와줘야겠네. 어떤가, 그리하겠는가?"

권씨 아낙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상대의 말을 받아들였다. 한 달에 두 번 삭망(朔望)에 오기로 하고 헤어진 것이다.

그 달이 가고 또 다음 달 추석이 지나고, 구월의 중양절이 지난 어느 날 방물장수 아낙의 주검이 삼개나루에 떠오른 것이다. 객줏집에 잡놈들이 모여 장안 풍설을 안주 삼아 낄낄대며 막걸리 잔을 기울일 때 잡소리 주절대던 배가(裵哥)가 강가로 몸을 튼 채 시원하게 오줌줄기를 뽑아내다 넉장을 쳤다.

"오메, 저게 뭣이여!"

물 속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건 껍질을 벗긴 백 돼지를 닮은 여인의 사체였다. 이틀 전 날씨가 얼마나 사나웠는지를 알 수 있을 만큼 곳곳에 멍이 들고 걸친 옷가지도 찢어진 채 너덜거렸다. 어찌 보면 물짐승이 떠밀러 온 것으로 착각할 만큼 퉁퉁 물에 불어 흉측하게 그지없었다.

연락을 받은 정약용이 현장에 도착해 강둑으로 올려놓은 사체의 검안을 시작했다. 멍 자국과 치사의 원인이 될만한 곳에 관주를 친 후, 몸을 뒤적이자 치마 안에 입은 속옷에서 어음 용지가 발견됐다. 그것은 쌀 서른 가마에 상당하는 것이었는데 발행인은 그 다지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박초시였다.

"흐음, 방물장수가 박초시 어음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적지않은 쌀 서른 가마라···. 이게 무슨 일인가!"

정약용은 아래턱을 감아쥔 채 생각에 젖어들었다.

[주]
∎습첩(拾妾) ; 첩을 줍는다는 뜻.
∎오석산(五石散) ; 한식산이라고도 함. 행산이라고도 함


#추리, 명탐정,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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