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여행을 마치고 태국 푸껫 공항으로 향하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동경 인근 오나가와 핵발전소에서 불이 났다는 것이다. 해일이 오나가와 핵발전소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덮쳤다고 했다. 순간 2007년 가시와자키가리와 핵발전소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과 그로 인한 핵발전소 가동 중지 사고가 떠올랐다.
2007년 당시 가시와자키가리와 핵발전소에서는 화재가 발생하고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 그런데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소식을 들여다보니 그보다 더 심각했다. 후쿠시마 10기의 원전 중 가동 중이던 3기가 자동정지됐지만 핵 연료봉의 온도를 내리는 냉각재의 수위가 내려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와 함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될 가능성이 있으니 3km 지역 내 주민들에게 피난 요청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핵연료봉을 식혀야 할 냉각재의 수위가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냉각재가 공급되지 못한다면 핵연료봉이 있는 원자로의 노심이 녹아내리면서 폭발할 수 있다. 다음날인 12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은 11일부터 사태 파악을 위해 노력했지만 상황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정확한 일본 원전의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기에, 가시와자키가리와 발전소 사고 정도를 고려, 우선 핵 발전소의 안전이 우려된다는 간단한 논평을 내보낸다고 했다.
나는 집에 도착해서 TV를 틀었다. 한국의 핵공학자들이 출연해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가동이 자동 정지됐으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 발전소 내 각종 안전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후쿠시마 원전 1호기 건물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나고 원전 주변에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순간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제2의 체르노빌이 되는 게 아닌가?
편서풍대라서 안전? 그럼 체르노빌 사고 때 유럽은 왜...일본 원전사고 이후 계속해서 TV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건물이 폭발하는 동영상을 반복해서 방영했다. 사람들은 불안해 했지만 아무도 감히 '제2의 체르노빌 가능성'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 수소폭발사고가 발생하고 2, 3호기도 냉각수위가 내려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환경운동연합은 제 2의 체르노빌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다. 그리고 사고에 대비, 긴급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는 긴급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기상청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우리는 편서풍대(위도 30~60도의 편서풍이 부는 지역)에 있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까지 오지 않을 것이라며 안전하다고 장담했다. 한편, 핵공학자들은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지진 발생확률이 낮고 일본 원전과 다른 형태의 원전이라며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는 전문가와 전문기관의 입을 빌려 불안해 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편서풍대라고? 그러면 왜 같은 편서풍대에 있는 유럽에서는 체르노빌 서쪽에 있는 독일, 오스트리아를 넘어 영국까지 방사능 낙진이 발생했을까. 25년 전 발생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인류가 겪은 가장 참혹한 사고로 아직도 반경 30km 지역은 방사성 물질 오염으로 접근이 통제돼 있다.
체르노빌로부터 1000km 안팎으로 떨어진 유럽의 각국은 방사능 낙진 피해를 입었다. 토양이 오염되고 식품 중 특히, 우유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면서 폐기가 잇따랐다. 유럽은 지금도 잔존하는 방사성 물질에 의해 체외와 체내 피폭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나라는 일본 후쿠시마에서 1000km 가량 떨어져 있는 곳이다. 최악의 상황일 경우 우리도 유럽의 여러 국가와 같은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우리나라 원전은 안전하다고? 지난 2천 년간 규모 6~7을 넘는 지진이 발생한 경주 인근의 핵발전소는 내진설계가 6.5 기준이다. 엄밀히 말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지진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세계 최강 내진설계를 자랑하는 일본 원전 건물은 지진에 끄떡없다. 지진 이후 들이닥친 해일때문에 원전 내 비상전원과 비상노심냉각장치 모두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생긴 사고다.
핵발전은 가동이 중지되더라도 수력이나 화력 발전처럼 그냥 멈추는 게 아니다. (핵발전은) 핵분열로 발생한 수백 종의 인공방사성 물질들이 핵붕괴하면서 높은 열과 방사선을 내뿜기 때문에 최소한 일주일이라도 냉각재를 돌려가며 핵연료봉을 식혀야 한다. 핵연료봉은 원자로에서 꺼낸 뒤에도 최소 30년 이상 물로 식혀줘야 한다. 그리고 수십만 년을 보관해야 하는 게 핵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다.
더구나 우리나라 원전은 지진에 오히려 취약한 증기발생기를 가지고 있다. 핵연료봉이 있는 원자로의 냉각재가 직접 끓어서 증기를 발생시키는 일본의 비등수로(Boiling Water Reactor)와 달리 우리나라의 가압경수로(Pressurized Water Reactor)는 핵연료봉을 돌고 있는 냉각재는 150기압의 고압과 300도씨의 높은 온도지만 물이 끓지 않도록 증기발생기를 설치, 증기는 다른 곳에서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 냉각재가 증기발생기를 지나가면서 직경 2.6cm 가량의 길이 20m의 가느다란 세관을 지난다. 이 세관은 원전 1기에 5000~8000개가 있는데 지진이 없는 평소에도 고온고압과 냉각재의 화학적 성분으로 인해 부식과 균열이 발생해서 관을 막아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지난 2002년에는 가동한 지 2년이 갓 넘은 새 핵발전소(울진 4호기)의 증기발생기 세관들 중 하나가 부식·균열 상황을 견디다 못해 잘려나가면서 45톤의 냉각재가 일시에 빠져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당시에는 가동이 중단된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라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진이 발생하면 이 수천 개의 세관들 중 어느 것이 잘려나가 대규모 냉각재 누출사고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일부 핵발전소 찬양론자들은 해일에도 안전하다고 강변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나라 앞바다에서는 대규모 지진과 해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최대 해일 높이를 3m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대기 중 방사성 물질 누출량은 계속 증가일본 원선사고 이후에도 낙관적이었던 핵공학자들의 예상은 후쿠시마 원전 3호기와 2호기의 이어진 수소폭발로 빗나갔다. 격납용기까지 손상된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바닷물로 핵연료봉을 식히는 작업을 이어갔고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방사성 증기는 공기 중으로 계속 누출되고 있다.
가동 중이지 않았던 4, 5, 6호기에서도 사용후 핵연료 저장고의 냉각수위가 내려가면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다. 1년 가량의 가동을 마치고 난 뒤 원자로에서 빼낸 사용후 핵연료는 단 20초 만에 주변의 모든 생명을 앗아가는 맹독성 방사선과 열을 내뿜는다. 충분한 물로 식히지 못하면 가동이 끝난 뒤라고 해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기 중의 방사성 물질 누출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상청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편서풍대로 여전히 우리나라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오히려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수돗물, 시금치, 토양, 지하수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었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후쿠시마로부터 240km 북쪽에 위치한 도쿄시민들도 연간 피폭치를 넘어선다는데, 우리는 정말 안전할까.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만 높아지는 꼴이다. 결국 국내가 아닌 프랑스의 기상관측연구소가 방사성 물질의 국내 유입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는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열흘 만에 방사성 물질 제논이 한반도에 상륙했는데도 4일이 지나서야 발표했다.
제논 검출 전까지 국내 방사성 물질 측정소는 일주일에 한 번꼴밖에 측정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국민들의 불안과는 너무 대비되는 안일한 정부의 대처였다. 더구나 전국 12개 방사성 물질 측정소는 기체 방사성요오드를 제대로 검출할 수 없는 종이필터만을 사용하고 있어 실제보다 최대 6배나 다른 측정 결과를 낸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방사능비... "아니다" "맞다" "아니다" "괜찮다"4월 7일에는 일본에서 직접 방사능 바람이 한반도를 불어왔고 방사능비가 내렸다. 이 역시 독일, 노르웨이 연구소들의 발표가 먼저였고 우리나라는 부정하다가 인정하다가 다시 부정하는 오락가락한 태도를 보였다. 며칠 뒤 검사 결과 내린 비는 방사능비였고 이 비를 맞은 남쪽의 시금치 등 일부 채소에서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한 달간 방사능비를 우산 없이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우리나라의 방사선방호를 책임지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의 입에서 나왔다.
안전 규제 책임자가 핵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국민 건강을 의학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이다. 방사성 물질 오염에 의한 피해는 기준치가 따로 없다. 적은 양은 적은 확률, 많은 양에는 많은 확률로 암과 각종 유전질환을 유발한다는 게 의학계의 정설이다.
특히 방사성 물질 오염은 공기, 물, 토양, 지하수, 농수축산식품과 제품 등 다양한 경로로 우리 건강을 위협할 것이며, 성인보다 방사성 물질 오염 피해에 취약한 계층, 다른 발암물질에 복합적으로 노출된 집단 등이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무책임 무대책 정부, 국민이 알아서 오염 피하는 수밖에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고 불과 한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우리가 배운 것은 너무나도 많다. 일반인은 접하기 어려운 방사능, 방사선, 방사성 물질, 요오드, 세슘, 제논, 플루토늄에 이어 최근 스트론튬까지···. 방사선 계측기는 어떤 것이고 '멜트다운'이 '노심이 녹아내린다'는 의미인 것도 알았다.
바다가 곧 일본이 방출한 방사능수에 오염될 것이라는 공포가 퍼지면서 재고 천일염까지 바닥났다. 아이를 가진 부모들과 보육교사들은 기상예보를 주의해서 들어야 하고 공기의 흐름은 어떤지 확인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체르노빌 참사 단계로 격상되었다. 방사성 증기는 계속 나오고 있고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투입하고 있는 바닷물에 의해 오염된 방사능수는 다시 바다로 방출될 것이다. 원자로 폭발로 방사성 물질이 지속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번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 때보다 더 많은 방사성 물질을 내보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몇 달이나 갈까?
방사능비에 젖지 않고 방사성 물질을 흡입하지 않으며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지 않은 식품을 구입하는 등 방사성 물질의 피해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당장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무책임한 정부는 여전히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으니 민간 차원에서라도 방사능 오염 상황을 주시하고 적은 양이라도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011년 3월 어느 날 옆 나라에서 생긴 사고로 우리의 생활이 이렇게 바뀔 줄 상상이나 했을까. 이 좁은 국토에 21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라고, 그중 수명을 다한 핵발전소가 수백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 옆에서 여전히 위험을 안은 채 가동중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핵이 얼마나 위험한지, 정부가 얼마나 안일하고 무기력한지 우리는 새삼 깨달았다. 지난 한 달 동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양이원영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국장입니다. 이 기사는 <민중의소리>와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