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대체 : 24일 오후 21시 33분]
"대화 단절된 남북간에 긴장을 줄이고자 방북한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일행의 동북아 '평화' 투어가 시작됐다.
카터 전 대통령과 마르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 그로 부룬트란트 전 노르웨이 총리,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등 '엘더스(the Elders) 그룹 회원들이 23일 밤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엘더스 그룹은 24일 저녁 공식 홈페이지(www.theelders.org)에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대화 부족으로 악화된 남북한간의 긴장과 불신, 그리고 북한의 인도주의적 문제들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고 방북목적을 밝혔다.
카터 전 대통령도 "(남한과) 북한과의 공식 대화가 단절된 시기에 우리는 긴장을 줄이고, 비핵화와 같은 중요한 이슈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같이 방북하는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은 "남북한 간에는 분명히 크나 큰 수준의 불신과 의심이 존재한다"며 "이런 대치상태를 지속하게 하는 것은 위험성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엘더스 그룹(the Elders)은 지난 2007년 자신의 89세 생일을 맞은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결성한 단체이며, 세계평화 구축과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직 정부 수반이나 전직 국제기구 대표 등 10명의 원로 지도자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으며, 넬슨 만델라와 버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는 명예회원이다.
이들은 창립 이후 버마와 스리랑카의 평화정착과 인권 개선, 수단의 국민투표와 평화 협정 이행, 중동 평화의 인도주의적 접근, 짐바부웨에서의 민주주의 진행 촉진 등 평화 정착 사업에 힘써왔으며, 양성평등과 전세계적인 인권 향상에 관심을 두어왔다.
전직 수반 4명... 김정일 위원장 만날까
이들은 중국방문에 이어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북한을 방문하고 곧바로 서울도 방문할 예정이다. 이들이 북 체류 중 누굴 만날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4명 모두 전직 국가 수반급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엘더스 그룹의 방북이 큰 주목을 받는 이유는 남북대화와 6자회담이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데다가 이들을 이끌고 있는 카터 전 대통령이 지난 94년 개인적으로 방북해 김일성 전 주석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을 주선하는 등 당시 전쟁 직전까지 갔던 위기 국면을 극적으로 해소시켰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카터는 지난 94년과 2010년에 이어 세 번째 방북이다.
최근 북한-중국, 한국-미국 등 6자회담 당사국들은 제안을 주고 받으며 '남북비핵화회담 -> 북미대화 -> 6자회담 재개' 등의 3단계 프로세스 진행에 의견을 같이 한 바 있으나, 아직 북한측의 회담 제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카터 일행은 북한을 방문하기 전 들른 중국에서 양제츠 외교부장과 우다웨이 한반도사무 특별대표 등을 만나는데, 이 자리에서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측은 엘더스 그룹이 조속한 시일내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도록 촉매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우다웨이 특별대표는 카터가 북한에 가는 26일 한국을 방문해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과 만난다.
일각에서는 카터 일행이 과거 94년 때처럼 교착된 남북 관계에 물꼬를 틀 수 있는 '선물'을 들고 올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에 사과,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등 남북대화 재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조건들을 우회하거나 이들을 일거에 뛰어넘을 수 있는 북의 제안을 가지고 올 지도 모른다는 기대이다.
이와 관련 엘더스 그룹은 24일 문답식 보도자료에서 '왜 북한 정부와 만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커뮤니케이션 없이 문제나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다"며 "남북한 정부의 입장을 직접 듣고 상황을 봄으로써 신뢰를 회복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룹은 또 북한에 지원될 식량의 배급문제에 대해 "북한에서 일하고 있는 세계식량계획(WFP) 등 단체들이 어렵고도 복잡한 환경속에서도 전세계에서 수년간 이런 일을 해왔고, 배급의 투명성이 개선될 것이라는데 의심하지 않는다"며 식량지원에 긍정적인 뉘앙스의 대답을 했다.
정부 차가운 시선 "개인 차원 방북... 큰 기대 말라"
그러나 카터 일행의 방북을 보는 정부의 시선은 차갑다. 미국 정부의 위임 없이 개인적 차원의 방북에서 특별한 성과가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방한한 엘더스 그룹 관계자들에게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의 책임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정부는 오히려 다음주 동시에 예정된 카터 일행의 방북과 우다웨이 대표의 방한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관심을 우려하고 있다. 그야말로 우연히 일어나는 두 개의 이벤트일 뿐이라는 것이다.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카터 일행의 방북과 우다웨이 대표의 방한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으며, 두 개의 이벤트를 가지고 그 움직임이 하나의 방향으로 가는 추세라고 봐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큰 기대를 말라"는 것이다.
그는 또 두 개의 이벤트를 통해 북에서 올지도 모르는 제안 때문에 정부가 수세에 몰리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런 생각은 있을 수 없다"며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내놓고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우연'이지만 26일 미국 워싱틴DC에서는 한국와 미국의 외교-국방 차관보급 회의(2+2)가 열려 대북정책 및 한미동맹과 관련해 협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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