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든 나라가 부채를 줄이고 있는데 오직 한국만이 계속 부채를 증가시키고 있어요. 이게 이명박 정부 3년입니다. 금리가 0인 상태에서 계속 돈을 풀어놓는 정책을 양적 완화정책이라고 하는데요, 올해 6월 말이면 미국의 2차 양적 완화정책이 끝납니다. 미국이 올해 6월 말로 '돈 쏟아붓기'를 끝내고 금리를 올리고 재정지출을 줄이는 출구전략을 본격화할 거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만 부채 규모를 늘린다는 게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하고 있습니다."정부는 경제가 좋아졌다고 하는데 왜 생활 물가는 점점 생활하기 어려운 수준인 걸까? 주가는 2000포인트를 훌쩍 넘었지만 주식을 갖고 있는 국민들 중에는 이익 본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들 문제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는 국민경제의 거시적 순환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거시적 순환구조는 경제 관료들이나 전문가들에게 일임하고 손 놓고 있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12일과 19일, 두 번에 걸쳐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한국경제의 거시적 순환구조'라는 주제로 강의를 가졌다. 그는 이날 강의에서 국민소득, 국제수지 등의 한국 경제의 거시적 순환구조 특징과 물가, 금리, 환율 등의 안정화정책, 경제 통계 보는 법 등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김 교수는 "한국은행이 물가관리에 실패하면서 최근 높은 물가 때문에 임금노동자와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의 가장 잘못된 정책이 김중수 총재를 한국은행 총재에 임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한국 경제 공부하려면 한국은행 보도자료로"GDP, 양적 완화, 국제수지, 부채, 금리, 환율… 신문의 경제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들이지만, 이 단어들로 이뤄진 기사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완벽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숫자 속에서 애써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통계자료는 더욱더 이해가 어렵기 마련이다. 김 교수는 "통계란 진리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보다는 진리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며 "경제 통계 역시, 진실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보통 경제 통계자료로 국가 간 비교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통계가 환율 조정을 거치기 때문에 진실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나마 경제통계 중에서 신뢰성을 가지고 국제비교가 가능한 통계가 국민계정체계(System of National Account)입니다. 이것은 동일한 기준에 따라 경제활동을 거래형태와 거래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별로 파악한 것인데 이것 역시 통계가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나라별로 숫자 비교가 불가능한 구간이 존재합니다."그렇다면 경제 통계를 볼 때는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 김 교수는 "경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연구자들이 원자료를 의도에 따라 편집한 2차 자료를 접하는 경우가 많다"며 "2차 자료에는 의식적·무의식적 왜곡이 있을 수 있으니 가급적 1차 자료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통계 속에 내재된 편견에 휘둘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의 현실에 대한 경제공부를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도자료를 보는 겁니다. 한국은행은 대부분의 2차 자료가 가지는 편견에서 그나마 자유롭거든요. 보통 일주일에 하나 정도는 보도자료가 나오는데 내용은 경제 전문가가 아니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걸 자주 보는 것이 한국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길입니다. 원자료가 필요할 때는 한국은행 경제 통계시스템(ECOS)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료일 뿐더러, 한국은행이 만든 통계자료가 거기에 다 있지요."GDP 30% 투자하는데 왜 5%밖에 성장 못하나
한국은행 경제 통계시스템(ECOS)에서는 한국의 국민계정이나 국민수지에 대한 통계들을 확인할 수 있다. 최신 통계인 2009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GDP는 약 1조 달러(1000조 원) 정도. 김 교수는 "미국의 GDP는 14.5조 달러, 일본은 4.5조 달러인데 이는 이 나라들이 각각 한국의 14.5배, 4.5배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GDP통계를 살펴보시면 여러 가지 구성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 현대에 와서 매우 중요하게 된 것이 기술개발이나 디자인 등에 투자하는 '무형고정투자'입니다. '무형고정투자'와 설비투자를 합친 것을 설비투자율이라고 하는데, 지난 40년 동안을 살펴보면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대략 30%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매년 GDP의 30% 이상을 투자에 쓰고 있다는 얘기인데, 이는 한국의 사정에 비춰봤을 때 결코 낮지 않은 수준입니다. 특히 OECD 국가 중에서 건설투자비율은 압도적인 1위지요."김 교수는 "재계에서는 규제 완화를 주장하며 '예전과 같은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투자 활성화와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반복해왔다"며 "정부 역시 '규제를 완화해줄 테니 투자율 높이고 고용 늘리라'고 재계에 주문하지만 사실 투자는 이미 충분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투자만 늘리면 경제가 나아진다는 낡은 사고방식으로는 한국 경제의 발전을 약속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오히려 GDP의 30%를 투자하면서도 5% 성장도 못 하는 이유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며 "투자의 구조, 투자의 질을 바꾸는 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고 말했다. 투자 효과가 사회 전체로 퍼지지 않는 한국 경제의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다.
이러한 한국 경제의 구조는 국제수지 통계를 보면 좀 더 자세해진다. 국제수지표는 일정 기간 동안 한 나라의 거주자와 비 거주자 사이에 발생한 상품·서비스, 자본 등의 모든 경제적 거래를 복식부기 원리에 따라 기록한 통계표를 말한다. 김 교수는 "한국은 중국이나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에 비해 내수시장이 위축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수출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국제수지 품목별 수출입 통계를 보면 총 수출액이 3245억 불입니다. 그 중 전기전자 제품이 약 960억 불. 반도체(삼성전자, LG전자, 하이닉스)만으로도 300억 불을 넘습니다. 그리고 자동차(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GM대우)가 300억 불. 이 중 100억 불 가까이는 자동차 관련 부품이지요. 또 철강이 270억 불, 석유화학 283억 불, 선박이 214억 불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들 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기업은 몇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수출구조이자 산업구조의 특징입니다. 특정산업에 굉장히 집중되어 있고 그 산업은 소수의 기업에 의해 과점 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주가는 2천 포인트가 넘었지만 국민 중에 그로 인한 이익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은 지역별 경상수지 통계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김 교수는 "1998년 이후 한국은 미국, 중국, EU, 동남아 모든 나라에 대해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오직 일본에 대해서만 적자"라며 "이는 한국 무역구조의 특징이자 국제 분업구조에서 한국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경제에서 한국은 일본에서 원자재를 수입해서 중간재 생산이나 완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 경제는 태생적으로 금리와 달러 가격, 원유 가격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편"이라며 "세 가지 품목이 내려가면 호황을 누리고 올라가면 불황에 빠져들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국 경제의 '잘 나가고' 있는 이유도 정부 당국이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원자재를 수입해서 '중간 가격의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기 때문에 고환율이 유지되면 그만큼 수출 가격에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국, 고환율 위주 거시정책 다시 생각해야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수출이 잘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고환율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재의 낮은 금리를 유지해야 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높은 물가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물가가 상승하면 부동산이나 금 같은 실물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게 된다"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임금 노동자와 저소득층"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1997년 12월에 한국은행법을 개정하면서 금리조절을 통해 물가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첫 번째 목표는 물가 안정이고, 금융통화위원회라는 기구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회의를 열어서 금리를 조절하지요. 이 기구가 얼마나 중요하냐면, 현대 정책당국이 한 달에 한 번이라는 빈도로 탄력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정책이 금리정책입니다. 그래서 금리정책은 반드시 시장에 선제적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한국은행은 김중수 총재 이후 한 번도 선제적으로 시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명박 정부의 가장 잘못된 정책이 김중수 총재를 한국은행 총재에 임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존재 목표를 망각한 이러한 한국은행의 태도는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부채를 증가시키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과도 연결된다. 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추세는 부채를 줄이는 것인데 현 정부에서는 전반적으로 위기를 키우고 있다"며 "올해 6월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재정지출을 줄이는 출구전략이 본격화될 텐데 한국만 부채규모를 늘리고 있는 상황에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세계 모든 나라가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고 법을 바꾸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취지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거시정책적인 오류를 반복한다면 예기치 않은 외부의 충격이 왔을 때 한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