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에레기… 어머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화도 없냐, 이 무심한 놈아!"
"아… 엄마, 좀 바빴어요… 죄송해요, 다음 주에나 한번 갈게요."

지척에 두고도 1년에 기껏해야 몇 번 찾아뵈는 버르장머리 없는 장남의 싹수(?)를 보다 못한 어머니가 어김없이 먼저 전화를 건다. 그렇다, 난 불효자다. 20여 년 전 논산훈련소 훈련병 시절 난생 처음 어머니께 편지를 쓰면서 그동안 불효했던 게 생각나 울며 "전화도, 편지도 자주하는 진짜 착한 아들이 되겠다"던 굳고 빛나던 다짐은 왜 했던가.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참 불효를 많이도 했다. 불황기 핑계로 잘 나가던 회사도 때려치우고, 나이 30이 넘도록 번듯한 직장도 없이 여기저기 옮겨 다닌 것도 부족해 빚더미에 올라 한시도 부모 마음 편할 날 없게 만든 전형적인 불효자였다.

부모님 걱정만 덜어 드려도 효자라는데…  바로 10년 전의 사건은 어머니에게 가장 큰 불효를 안겨 드린 일이었다.

2001년 여름, 아내는 둘째를 임신하고 항상 '좋은 생각'에 '좋은 것'들만 보며 태교를 시작했다. 그런데, 임신 3개월쯤 되었을까, 이때도 정기적인 산전검진을 위해 다니던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담당의사는 보통 때처럼 초음파사진을 이리저리 짚어가며 아기의 상태와 모양 등을 설명하다가, 문득 아기의 한 부분에서 시선이 멈췄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참 관찰하던 의사는 조심스레 "어느 부위인지는 구분이 가지 않으나 분명히 일반적인 장기 기관에 비해 무척 비대하다"고 말을 꺼냈다.

한두 달 더 지켜보자던 담당의사는 결국 지방 대학병원의 태아초음파분야 교수에게 전원소견서를 써주며 정밀검사를 권유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칼라입체초음파 등 최신기기를 이용하여 몇 시간 동안이나 관찰한 후 내린 소견은 "알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대학병원의 교수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단 말인가? 참으로 암담했다. 담당교수가 의료서적 등을 펼쳐놓고 전공의들과 회의 끝에 얻은 결론은 "양수검사를 포함한 가능한 한 모든 검사를 모두 시행하여 검사를 해본 후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임신 8~9개월쯤이라도 인공유산이 가능하니 그렇게 해보자"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이후 소견서를 들고 용하다는 전국의 수많은 병원을 헤맸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태어난 후 문제가 있을 것은 확실하다" 등의 애매모호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아,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질병으로 아프거나 비참한 경우를 당했을 때 부모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데, 정말로 떠오르는 사람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부모님 밖에 없었다.

아기의 이상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슬픔과 걱정,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셨으리라.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마음고생 할 것을 생각하니 뼛속까지 얼마나 아프셨을까. 부랴부랴 병원은 찾은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보이시고 말았다.

"어이구, 내 아들. 불쌍한 내 새끼… 마음고생이 많아서 어째야쓰꺼나. 더 고생하지 말고 애기가 자꾸 크고 있으니 얼른 지워부러라. 지금이라도 안늦었응께, 애를 지우고 새로 시작하그라."

떡두꺼비 같은 손자는 고사하고, 내 어머니였기에 그 슬픔과 고통은 더했으리라. 하지만 애를 지우라는 어머니의 말이 야속하게만 들려왔던 나는 모질게 쏘아부쳤다.

"엄마! 이제 이렇게 꼬물 꼬물거리는 걸, 어떻게 지워! 지금 그런 말이 나와!"
"……."
"엄마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말이면 다인가!"
"나중에 너도 너 같은 자식 한번 키워봐라, 내 속 알 것이니…."

어머니의 말을 애써 외면한 채 그 길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정말 미웠다. 자식의 아픈 마음도 몰라주는 어머니의 그 말에 속이 상해 몇날 며칠을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결국 둘째는 선천성 장기 이상으로 태어나 장루술-장기분리술-복원수술 등 4번의 대수술을 거쳤다(보통 3번이면 끝나는 수술이지만, 처음 수술을 담당한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경험미숙과 불충분한 검사로 가장 중요한 장기분리수술을 거치지 않고 수술을 시행하여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처음부터 다시 수술을 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이제 10년, 다행히 둘째는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말썽을 피울 때마다 내가 10년 전 부모에게 했던 행동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부모에게 불효하며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바보 같은 생각이 없다는데…. 나의 철없는 투정 때문에 어머니는 상처받고 서운했을 텐데,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렇게 투정만 부리던 마냥 철없는 아들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마음 고생할 생각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그게 어디 일부러 하는 말이었을까? 자식이 마음고생 할 것을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파 당신 스스로 당신의 마음에 채찍질을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그것이 차라리 나에게 하는 역정이었으면 좋으련만….

부모 가슴에 못을 박았으니 그만한 불효가 어디 있을까?

어머님, 이제는 자식을 낳고 길러보니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식 마음고생 할 것을 생각하며 피눈물을 흘리셨을 어머니…. 나 혼자 세상고통 다 짊어진 양 모질게 대들었던 세상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왜 그렇게 나를 위해 마음 고생하셨는지, 왜 눈물을 흘리셨는지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이제는 어머님의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드리고 싶습니다.

요즘도 장사하시느라 언제나 잠이 부족하신 어머님을 볼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프답니다. 그리고 아픔을 가지고 세상의 빛을 본 둘째, 더욱 잘 키울게요. 어머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불효자 공모글입니다.



#불효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존 언론들이 다루지 않는 독자적인 시각에서 누구나 공감하고 웃을수 있게 재미있게 써보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사, 저에게 맡겨주세요~^^ '10만인클럽'으로 오마이뉴스를 응원해주세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